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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들’보다 ‘우리’… 집단의 틀에 갇힌 ‘도덕’

입력 : 2017-02-25 03:00:00 수정 : 2017-02-24 19:3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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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슈아 그린 지음/최호영 옮김/시공사/2만7000원
옳고 그름/조슈아 그린 지음/최호영 옮김/시공사/2만7000원


도덕은 인간답게 살 수 있도록 하는 규범으로 알려져 있다. 도덕성에 기반한 인류임에도 끊임없는 반목과 질시, 갈등의 역사를 이어왔다. 이 책 저자인 하버드대 철학 교수 조슈아 그린(Joshua Greene)은 이를 두고 ‘도덕의 비극’이라고 했다. 그에 따르면 20세기는 가장 평화로운 세기였다. 그럼에도 온갖 전쟁과 갈등으로 대략 2억3000만 명이 사망했다. 이 시체들을 한 줄로 눕힐 경우 지구 표면을 일곱 바퀴나 돌 수 있는 거리라니 비극일 수밖에 없다. 21세기에 들어와서도 사망자 수는 늘고 있다. 아직도 지구 인구의 약 7분의 1에 해당하는 10억 명의 사람들은 목숨을 유지하는 것 자체가 버겁다. 극심한 빈곤과 생명 위협 때문이다. 2000만 명 이상의 사람들은 아직 노예 상태이고, 그들 가운데 많은 아이들과 여성들은 매춘으로 내몰린다. 도덕성을 바탕으로 한 인류의 궤적이 참담하다.

역사적으로 인간은 서로 협력하는 방향으로 진화했다. 지구에 생명이 생겨났을 때부터 협력이 진화를 이끄는 원리였다. 개체가 모여 집단이 되면 혼자서는 이룰 수 없는 것들을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들은 서로 협력하여 지구를 지배적인 종이 되었다. 협력의 본성을 키우기까지 수없이 많은 갈등을 겪어야 했다. 이 과정에서 이기심을 억누르고 이타심을 가지는, 즉 ‘우리’의 이익을 위해 ‘나’의 손해를 받아들이는 성향이 발달했다. 이것이 인간의 도덕성의 원천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대다수의 인간들은 도덕적이다. 그런데 왜 서로 싸울 뿐 아니라 죽이고, 분노에 가득 찬 논쟁을 하는가.

저자 조슈아 그린은 인간의 도덕성에 대해 “명석한 철학자들의 수많은 연구와 노력에도 아직 완성하지 못한 숙제”라면서 “절대적인 도덕이 나와야 한다”고 주장한다.
시공사 제공
저자는 이에 대해 “우리의 도덕성은 집단 내에만 한정된다”고 단언한다. 협력의 본성은 집단 내 결속력을 강화시키지만 반대로 다른 집단과의 갈등을 야기시키는 요인이 된다는 것. 결국 인간은 ‘그들’보다 ‘우리’를 앞세운다. 이념, 인종, 성별, 종교를 둘러싼 현대 사회의 갈등은 대부분 우리 집단의 도덕(우리가 옳다고 생각하는 것)과, 그들 집단의 도덕(그들이 옳다고 생각하는 것)이 일치하지 않을 때 발생한다.

미국 오바마케어(Obamacare)의 분쟁은 도덕성의 편파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개인별 가입을 통해서든, 세금을 통해서든 모든 사람이 보험에 가입하도록 한 게 오바마케어다. 자유주의자들은 역사적 한 걸음이라고 찬양했지만, 보수주의자들은 파멸적인 사회주의라고 경멸했다. 공화당과 민주당은 오바마케어를 두고 비난과 야유로 논쟁을 벌였다. 그들은 각자 생각하는 ‘옳은 것’에 따라 행동했다. 다른 편은 도덕적으로 틀렸다고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증오하고 있다.

왜 그럴까. 저자에 따르면 사실 도덕은 대부분 고상하고, 고차원적이며, 인간답게 만드는 어떤 것이다. 하지만 반대로 보면 도덕은 뇌에 설치된 ‘자동 실행 장치’와 같다. 즉 협력을 위해 진화된 도덕성은 인간 뇌에 본능처럼 남아 있다. 본능은 감정의 형태로 표현된다. 누군가의 비도덕적인 행동에 분노가 느껴진다면 그 행동이 실제로 옳지 않아서가 아니다. 나의 도덕성에 맞지 않기 때문이다. 도덕 장치가 분노라는 감정을 내보낸 것이다.

저자는 이것이야말로 현대인들의 핵심적 비극이라고 했다. 따라서 “현대 사회의 도덕적 관점이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런 인간의 특성 때문에 자신의 도덕성만을 주장해서는 안 된다는 것.

각 집단들이 서로의 도덕을 내세우며 대립, 갈등할 때 판결을 내려주는 그 무언가가 있어야 한다. 우리의 도덕보다 한 차원 위에 있을 뿐 아니라 우리 모두가 공감하고 따를 수 있는 도덕, 즉 ‘고차 도덕(metamorality)’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물론 인류는 세계적 차원의 조리 있는 도덕철학을 추구했다. 계몽주의 시대 이래로 도덕사상가들은 이것을 계속 꿈꿨다. 그러나 제대로 완성한 적은 한 번도 없었다.

지구촌이 점점 좁아짐에 따라 우리를 갈라놓는 도덕적 경계선은 점점 더 뚜렷해진다. 집단 간 도덕적 갈등의 해결은 점점 더 어려워진다. 세법 개정부터 동성 결혼, 지구 온난화에 이르기까지 온갖 문제를 둘러싼 분쟁이 끊이질 않고 있다. 과연 인류에게 공통 도덕적 기반이라는 것이 존재하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인류가 하나의 땅 위에 평화롭게 공존하는 것이 정말 가능할까.

저자는 하나의 해법으로, ‘깊은 실용주의(deep pragmatism)’를 제시한다. 이는 공리주의와 연결된다. 저자는 “공리주의는 익숙하고도 좋은 의미에서 실용적”이라면서 “이는 깊은 철학이며, 깊은 실용주의는 원칙에 기초한 타협을 추구한다”고 풀이한다. 저자는 국내에도 잘 알려진 하버드대학의 뛰어난 철학자이자 실험심리학자다.

정승욱 선임기자 jswoo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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