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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장 청구는 검사만' 55년전 개헌 이유 살펴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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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2-26 10:00:12 수정 : 2017-02-26 13:50: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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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2년 개헌자문委 전문위원 "국민 보호장치는 철저할수록 좋아" / 경찰 수사에 대한 검찰·법원 2단계 통제 … "인권보호에 긍정적"

“체포, 구금, 수색, 압수에는 검찰관의 신청에 의하여 법관의 영장을 발(부)하도록 하여 법관에 대한 영장의 신청은 반드시 검찰관이 행하게 함으로써 사법경찰관에 의한 인권침해를 막으려고 하는 현행 형사소송법의 규정을 헌법에 규정하여 그 효력을 높였다.”

1962년 11월 정부가 펴낸 ‘헌법 개정과 국민투표’라는 책자에 등장한 문구다. 이 책자는 5차 헌법 개정안에 대한 국민투표를 앞두고 정부가 국민들에게 개헌안의 요지를 설명하고자 만든 책자다. 그때까지는 압수수색·체포·구속 등을 위한 영장을 검사가 판사에게 신청한다는 내용이 형사소송법에만 있었는데 이를 헌법 조문으로 끌어올리게 된 취지가 잘 나타나 있다.

◆“인권보호 장치는 철저할수록 좋아”

5차 개헌 때의 헌법개정자문위원회 회의록을 보면 검사에 의한 영장 신청권을 헌법에 둔 이유가 더욱 명확해진다. 당시 자문위 전문위원으로 활동한 이경호(1917∼1987) 전 서울대 법대 교수는 “(검사에 의한 영장 신청 규정이) 지금은 헌법에 없더라도 법률에 있으니 보장되는데, 나중에 사태가 변해 법률이 개정되고 헌법이 없을 때는 어떻게 하느냐”며 “헌법상 신체의 자유 같은 조항에 상세히 규정하는 게 좋다는 의견”이라고 말했다.

이 전 교수는 당대에 가장 권위있는 헌법학자 중 1명이었다. 한마디로 법률은 쉽게 바뀔 수 있으니 아예 개정이 힘든 헌법에 못박음으로써 함부로 건드릴 수 없게 만들자는 뜻이다. 신체의 자유 등 가장 기본적인 국민의 인권 보장을 위한 장치는 철저하면 철저할수록 좋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5차 개헌 때 처음 헌법에 명시된 검사에 의한 영장 신청권은 현행 헌법까지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헌법 12조 3항은 “체포·구속·압수 또는 수색을 할 때에는 적법한 절차에 따라 검사의 신청에 의하여 법관이 발부한 영장을 제시하여야 한다”고 규정해 법원에 영장을 신청할 수 있는 주체로 검사를 적시했다.

1962년 11월 정부가 펴낸 ‘헌법 개정과 국민투표‘ 책자 표지. 검사에 의한 영장 신청권을 헌법 조문에 두기로 한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경찰 수사에 대한 2단계 통제시스템

일각에선 경찰이 신청한 구속영장 등의 기각율이 검찰이 청구한 영장 기각율보다 더 높다는 점을 들어 ‘경찰이 법원에 영장을 직접 신청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실제로 법원 자료를 보면 구속영장 기각율은 검찰이 24.9%, 경찰이 17.2%, 압수수색영장 기각율은 검찰이 3.2%, 경찰이 0.75%, 체포영장 기각율은 검찰이 1.9%, 경찰이 1.3%로 모든 유형의 영장에서 검찰 기각율이 경찰 기각율보다 높다.

하지만 이는 경찰의 모든 영장은 검찰을 거쳐 법원에 접수된다는 점이 반영되지 않은 수치다. 영장 신청권자를 검사로 못박은 헌법 조항 때문에 경찰이 작성한 압수수색·체포·구속영장은 바로 법원으로 가지 못하고 검찰의 1차 심사를 받은 뒤 판사에게 제시된다. 즉 경찰과 판사 사이에서 검사가 ‘팩트체커’ 및 ‘게이트키퍼’의 역할을 하고 있는 셈이다. 경찰 수사를 받는 국민의 입장에선 검찰과 법원의 2단계 통제장치를 기대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검찰 관계자는 25일 “현재는 검사 심사를 거쳐 검사가 기각한 사건을 제외한 나머지 영장만 법원에 청구하고 있다”며 “경찰 영장이 법원에서 잘 발부된다는 것은 검사의 영장심사가 그만큼 실질적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뜻”이라고 말했다.

국회 헌법개정자문위원회 회의록. 이경호 전문위원이 ‘국민의 신체의 자유를 철저히 보장하기 위해 검사에 의한 영장 신청권을 헌법에 둬야 한다’는 취지로 발언한 내용이 기록돼 있다.
◆헌재도 “무분별한 영장 신청 막아야”

검사에 의한 영장 청구권은 헌법의 최종 해석기관인 헌법재판소의 지지도 받고 있다. 헌재는 1997년 선고한 결정문에서 “수사 단계에서 영장 신청을 함에 있어서는 반드시 법률전문가인 검사를 거치도록 함으로써 다른 수사기관의 무분별한 영장 신청을 막아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할 가능성을 줄이고자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외국 사례를 봐도 주요국 대부분이 영장 청구 절차를 헌법에 엄격히 규정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독일은 나치시대 경험을 바탕으로 경찰의 독자적인 구속을 헌법에서 금지하고 있다. 헌법에 아예 ‘경찰은 체포의 익일을 초과하여 구금할 수 없다’고 못박은 것이다. 이탈리아, 스페인, 멕시코 등도 경찰의 체포 관련 업무를 검찰에 종속시키거나 경찰 수사 전반에 대해 검사의 지휘에 따르도록 의무화하는 등 헌법적 통제장치를 두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검사가 영장 기각을 통해 경찰에서 구속하려 한 사람들 중 혹시 억울한 사연이 있을 수도 있는 국민의 구속을 막아주고 있는 측면도 분명히 있다”며 “검사의 영장 청구권 규정은 1962년 이후 50여년의 역사를 통해 입증된 국민의 인권보호를 위한 장치”라고 말했다.

김태훈 기자 af103@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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