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강행실도 효행편, 수많은 사례
혼란한 시대, 가정 바로 세웠으면
부모 공경·자식 사랑 조화 이뤄야 최근 젊은이들에게 부모에 대한 기대를 물어 보았더니 ‘사랑과 관심이 아니라 물질이라는 응답이 높게 나왔다’는 설문조사를 읽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물질만능 풍조로 부모와 자식 간에도 돈이 앞서는 현실이 답답하기만 하다. 그러나 사실 새삼 놀라운 일이 아닐 수도 있다. 그동안 신문지상에 자식이 부모를 폭행하고 유기하는 사건이 비일비재하게 등장했기 때문이다.
예로부터 우리나라는 동방예의지국이라 했고, 효심이 강한 나라였다. 나라를 지키는 힘도, 사회질서를 유지하는 힘도 충효 정신이 바탕이 됐다. 원광법사가 화랑들에게 준 세속오계에서도 사군이충(事君以忠·임금에게 충성), 사친이효(事親以孝·어버이에게 효도)라 하여 충효사상이 으뜸인 정신이었다.
이배용 전 이화여대 총장·영산대 석좌교수 |
부모에 대한 효사상은 불교나 유교나 다르지 않다. 유교를 국시로 삼은 조선시대에는 효가 더욱 강조됐다. 사회질서가 가족중심의 단위로 편성되면서 가부장권이 강화되는 시점에서 어느 때는 효를 충보다도 더욱 중요하게 실천하기도 했다.
일례로 세종대왕 때 편찬된 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 효행편을 보면 효를 통한 사회교화적인 수많은 사례가 수록돼 있다. 세종 10년(1428년)에 지방에서 아들이 아버지를 때려죽인 사건이 발생했다. 세종대왕은 이러한 끔찍한 패륜 범죄는 당연히 극형에 처해야 하지만 법으로만 다스려서 재발되지 않으리라는 보장이 있겠느냐며, 신하 설순에게 명해 중국과 우리나라의 효행의 사례를 뽑아서 삼강행실도 중 효행편을 편찬한 것이다. 그중에 민손단의(閔損單衣) 편이 있는데 민손은 공자의 제자로 어려서 어머니를 잃고 계모가 들어왔는데 전실 아들이라고 구박이 심해 옷도 남루하게 입혀 주었다. 아버지가 이를 알고 괘씸해 계모를 내쫓으려 하자 오히려 민손이 아버지께 여쭙기를 “어미가 있으면 한 아들이 추우면 되지만 어미가 없으면 세 아들이 추우리니 내쫓지 말아 달라”고 간곡히 호소했다. 아비가 이를 옳게 여겨 내쫓지 않았더니 어미가 뉘우치고 함께 사랑하며 행복하게 살았다는 이야기이다. 아들이 자기를 구박한 계모와 이복동생을 생각하고 용서한 것이다.
세종의 이러한 마음은 노인 공경의 가치 실천으로 이어졌다. 100세 이상의 노인들에게는 주기적으로 곡식, 고기, 술 등을 내려주었다. 또한 국가에서 노인들이 절대적으로 필요로 하는 의복, 의약품 등의 물품을 지급했으며 90세 이상의 노인에게 작위를 주어서 노인을 공경하는 뜻을 보이고자 했다. 그리고 국왕, 왕비, 동궁 등이 주체가 돼 80세 이상의 노인을 위한 양로연(養老宴)을 궁궐에서 베풀었다. 이때는 신분의 귀천에 상관없이 노인이라면 누구나 참여해 혜택을 받을 수 있게 했다. 이는 고령화 시대인 지금도 귀담아들을 역사의 지혜이자 교훈이다.
요즘처럼 사회 질서가 혼란하고 미풍양속이 사라진 각박한 시대에 가정부터 바로 세워서 부모에 대한 공경과 자식에 대한 사랑이 조화를 이루어 함께한다면 신뢰받고 품격 있는 나라를 만들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배용 전 이화여대 총장·영산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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