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A씨는 오래전 사업을 하는 대학 후배에게서 비트코인 300개를 받았다. “비트코인이 뭔지 개념 조차 없던 시절”이었다. “정확히는 모르겠고 2010년 전후일 것”이라고 A씨는 기억했다. 지금껏 보관하고 있다면 16일 오전 국내 가격기준(1개당 1130만원)으로 대략 34억원 어치다. 그러나 찾을 수가 없다. A씨는 “뭔지도 모른 채 받아뒀는데, 이 걸 어디에 보관했는지 통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A씨 경우처럼 초기에 채굴된 비트코인 상당량이 사라진 것으로 추정된다. 미국인 제임스 하웰스는 2009년 비트코인을 채굴한 후 암호를 컴퓨터 하드 드라이브에 저장했다. 그러나 이를 잊고 2013년 쓰레기장에 하드 드라이브를 버렸다. 당시 하웰스가 채굴한 비트코인은 7500개였다. 경제·투자 분석회사 몰딘이코노믹스 패트릭 왓슨 선임 애널리스트는 지난달 29일(현지시각) 포브스에 기고한 글에서 “이처럼 비트코인이 분실된 사례가 수도 없이 많다”고 주장했다. 비트코인을 채굴하거나 샀던 사람들은 많지만 이미 수년 전 일이라서 접근할 방법을 잊어버렸다는 것이다.
심지어 비트코인 창시자, 사토시 나카모토가 채굴한 최초의 비트코인 100만개(약 11조원)도 행방이 묘연하다. 최초의 비트코인 100만개가 채굴된 사실은 블록체인 장부에 기록돼 있지만 사토시 나카모토가 살아있는지, 100만개의 비트코인에 접근 권한이 있는지, 아니면 다른 사람들에게 접근권을 넘겼는지 불확실한 상태라고 왓슨은 지적했다.
사토시 나카모토는 2140년까지 2100만개의 비트코인이 채굴될 수 있도록 설계해 놓았고, 현재까지 전체의 80%인 1700만개가 채굴된 상태다. 비트코인 매매 동향을 분석하는 체이널리시스(Chainalysis)의 작년 조사에 따르면 사라진 비트코인은 278만~379만개에 이른다. 채굴된 1700만개중 최대 22%가 사라졌다는 말이다. 왓슨은 “분실된 것까지 감안하면 실제 유통되는 비트코인은 1700만개가 아니라 최소 1321만개에 그칠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처럼 애초 채굴 총량이 2100만개에 불과한 터에 그나마 채굴된 것중 상당량이 분실 상태로 유통되지 않는다면 그 희소성은 한층 커질 수밖에 없다. 이미 암호화폐(가상화폐) 시장에서 기축통화격인 비트코인은 ‘디지털 골드’로 인식되기도 한다. ‘최후의 결제수단’으로 여전히 그 가치를 인정받고 있는 금과 같은 성격을 갖고 있다는 것이다. 반대로 유통량이 줄어들면 암호화폐 시장의 경쟁에서 밀려나는 역효과도 있지 않을까. 김진화 한국블록체인협회 이사는 “누차 말했듯 비트코인이나 이더리움같은 암호화폐가 일반 소비자 지급결제수단으로 직접 쓰이지는 않을 것”이라며 “비트코인의 희소성이 커진다고 역효과를 가져오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류순열 선임기자 ryoos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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