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교서열화 VS 하향 평준화’.
자율형사립고(자사고)를 보는 두 개의 시선이다. 언제나 논쟁적인 교육 이슈에서 진보와 보수를 가르는 기준선이기도 하다. 보수와 진보 정부를 거치며 자사고는 떴다가 쇠락하는 롤러코스터 신세였다. 1980년대 이후 전교조 출범과 해직, 교육행정정보시스템(NEIS) 도입을 둘러싼 찬반, 교원평가 실시와 반대, 학업성취도 평가 찬반 등을 거치며 첨예하게 갈린 진영이 자사고로 정면충돌하고 있다.
9일 오전 11시 서울 13개 자사고의 운명을 가를 운영성과평가(재지정평가) 결과가 열린다. 어떤 결과가 나오든 거센 후폭풍은 불가피하다.
교육당국과 학계의 연구결과를 살펴보면 자사고는 2007년 대선 당시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의 공약에서 출발한다. ‘학교만족 두 배, 사교육 절반’이라는 제목의 교육 공약 내용을 보면 자사고는 “국가의 획일적 통제에서 벗어나 교육과정, 교원 인사, 학사운영 등을 학교가 자유롭게 운영하고, 그 책무성을 학생과 학부모의 선택에 의해 평가를 받게 하는 사립고교 운영모형”으로 등장한다. 자사고 설립요건을 지방의 조례로 정하고, 부합하면 자율형으로 전환하는 준칙주의를 적용하기로 한다. 파급 효과로 연간 2500억원 수준(100개교 전환시)의 교육재정(사학결손보조금) 절감을 노리고 있었다. 이를 다른 낙후지역과 저소득층 학생지원 재원으로 활용할 수 있다는 계산이 깔려 있었다.
이명박 후보가 대통령으로 당선된 직후 대통령직 인수위에서 내용이 보다 구체화한다.
제17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인수위백서인 ‘성공 그리고 나눔’에 따르면 이명박정부는 학교에 대한 획일적인 규제를 대폭 철폐하고 학교의 제도와 운영을 다양화해 학교 교육의 내실화를 선도하기 위해 ‘고교 다양화 300 프로젝트’를 추진키로 한다. 기숙형 공립고 150개, 마이스터고 50개, 자율형 사립고 100개 등 300개의 다양화된 고교를 만들어 학생들의 학교 선택권을 확대하고, 동시에 농어촌 지역의 고교를 활성화하며, 전문계 고교의 발전 모습을 보여주겠다는 것이다. 이주호 당시 한나라당의원(이후 교육부 장관)이 주도했다.
이후 교육과학기술부는 2008년 3월 20일 대통령 업무보고에서 자사고 도입으로 학생 선택권을 확대하고, 교육과정 운영, 교직원 채용, 학교재정운영 등의 자율성 확대를 위해 자율형 사립고 운영 법적 근거를 마련하겠다고 보고했다.
한국교육학회 고교체제개편 연구팀이 2008년 10월에 발표한 <자율형 사립고등학교의 추진 방안 및 과제>제목의 보고서에는 당시 자사고의 장단점이 드러난다.
자사고의 긍정적 키워드는 다양화와 선택, 자율성 등이다.
보고서는 “고교 다양화를 통한 학생 및 학부모의 학교 선택 기회 확대, 사학의 자율성 제고 요구 충족 등을 위해 학교운영 자율권을 가진 사립고를 확대함으로써, 학생 및 학부모들이 원하는 교육을 자유롭게 실현 할 수 있는 학교 탄생에 대한 교육 수요를 적정 공급”이라고 적고 있다.
이에 반해 자사고의 부정적 키워드는 격차와 사교육, 귀족학교, 서열화 등이다.
보고서는 “기존 자립형사립고가 학교간 격차 유발, 고교 서열화 증가, 입학 준비를 위한 사교육 증대, 귀족 학교 등의 문제 지적을 받아 왔기 때문에 이들에 대한 비판적 시각을 얼마나 개선시킬 수 있는가가 한계로 작용”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최준렬 공주대 교수는 2010년 ‘이명박정부의 자율형 사립고 정책에 대한 평가’라는 논문에서 이미 자사고의 긍정적·부정적 평가를 소개하고 있다. 최 교수에 따르면 학생과 학부모의 선택권이 확대되고 사학의 자율성이 증가하며 교육과정을 다양하게 운영할 수 있다는 점은 긍정적이다. 이에 반해 평준화가 해체되며 귀족학교가 출현해 교육의 불평등이 심화되고 학생과 학부모의 사교육비 부담이 크게 증가할 것이라는 점이다.
이런 논란은 이후에도 지속됐다. 자사고의 문제점에 대한 진보진영의 공격이 쏟아졌다.
교육 시민단체인 ‘사교육걱정없는세상’과 더불어민주당 오영훈 국회의원실은 2017년 전국 17개 시·도 중3 학생 7382명을 희망고교 유형별로, 고1 학생 1만881명을 재학 고교 유형별로 구분해 △사교육비 실태, △사교육 시간, △사교육 참여율 등을 분석했다. 분석결과에 따르면 중3,희망고교 유형별 월평균 100만원 이상 사교육비는 △일반고 8.7%, △광역단위 자사고 43.0%, △전국단위 자사고 40.5%로 나타났다. 광역단위 자사고 진학을 희망하는 학생의 고액 사교육비는 일반고 희망 학생 대비 약 4.9배 차이가 났다. 또 고1,재학고교 유형별 월평균 100만원 이상 고액 사교육비는 일반고 13.7%인데 반해, △광역단위 자사고 35.8%, △전국단위 자사고 22.9%로 일반고와 약 2.6배 차이가 났다.
중3 학생 중 초등학교 시점(또는 이전)부터 고입 사교육을 시작한 비율은 전체 응답자의 31.8%에 달했다. 고입 경쟁의 심화로 인해 사교육 시기가 빨라지고 있는 것이다.
중3 학생의 54.6%는 고입 경쟁으로 인한 진학 스트레스를 받고 있었고, 특히 △전국단위 자사고 희망자의 경우 67.6%가 진학 스트레스를 받고 있다고 응답했다. 주당 14시간 이상 사교육 참여율, 일요일 사교육 참여율, 10시 이후 사교육 마치는 시간을 묻는 모든 항목에서 영재학교/과학고보다 전국단위 자사고 진학 희망자가 가장 비율이 높게 나타난 것으로 분석됐다.
하루 평균 5시간 미만 수면한다고 응답한 비율이 전체 고1 학생의 26.5%에 달해 4명 중 1명꼴에 해당했다. 특히 △광역단위 자사고는 33.2%로 3명 중 1명꼴이어서, 학습 부담이 더욱 컸다. 사걱세는 “자사고의 대거 등장 이후 우리 고교체제는 급속히 수직 서열화되었고 사실상 고교 입시가 부활한 상황”이라며 “고교서열화는 대학서열화의 축소판이며 고교판 SKY인 자사고·특목고는 이제 대학 입학의 1차 관문이 되어 극심한 고입경쟁을 유발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더불어민주당 김해영 의원은 2019년 2월 26일 사걱세와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자리에서 전국단위 자사고의 ‘2018학년도 신입생의 중학교 내신 성적 분석 및 학생 1인당 학부모부담금 실태’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자사고는 학생 선발권한에 따라 전국 단위 선발권을 가진 전국 자사고 10개교와 광역 단위의 36개교로 나뉜다. 부모가 부담하는 부담금(학비)의 경우 전국 자사고 10개교의 연간 평균 학비는 1133만원으로 조사됐다. 이는 일반고의 학비(279만원)의 4.04배에 달하는 금액이다. 광역 자사고의 연간 학비도 720만원으로 일반고보다 2.5배 높았다. 특히 민족사관고등학교는 연간 학생 1인당 학부모부담금(학비)가 2589만 원으로 일반고의 9.3배에 달했다.
자사고와 일반고 신입생간 학력 격차도 큰 것으로 조사됐다. 내신 석차백분율로 분석한 전국단위 자사고 3개교 신입생의 중학교 내신 성적 상위 10% 이상 비율은 최대 94.0%, 평균 88.0%로 서울 일반고 평균 8.5%에 비해 약 10.3배 높은 것으로 집계됐다. 2019년 초에 발표된 ‘2018 초·중고 사교육비 조사’ 결과도 사교육비 폭증 대란을 확인시켰다.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가 29.1만원으로 전년대비 1.9만원이 폭증했다. 정부가 사교육비를 조사해 발표하기 시작한 지난 2007년 이래 가장 큰 폭의 증가다.
문재인정부는 지난 대선 과정에서 복잡한 고교 체제 단순화를 공약으로 내걸었다. 그러면서 외고와 국제고, 자사고를 일반고로 전환하기로 했다. 이에 따라 일반고와 특목고, 자사고의 고교 입시 동시 실시 등을 공약했다. 교육부는 2018년 ‘고입 동시 선발’을 시행, 자사고와 일반고의 모집 시기를 합쳤다. 자사고 지원자의 일반고 중복지원도 금지했다. 이 조치에 반발한 자사고들이 헌법소원을 냈고, 결국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따라 중복지원 금지는 유예하고, 동시선발만 이뤄졌다. 이번 자사고 재지정평가는 이런 큰 흐름 속에서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세종=이천종 기자 skyle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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