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월 허프포스트 코리아 여론조사에 의하면 ‘한국인의 약 77%가 정치에 대해 불만’이라고 응답했는데, 그 이유로 ‘정치인 간의 다툼(82.3%)’, ‘정치인의 부정부패(77.6%)’, ‘정치인의 막말과 품위 없는 행동(76.8%)’을 꼽았다. 국민에게는 정치인의 항상 싸우는 모습, 부조리, 욕설에 가까운 막말이 눈살을 찌푸리게 한 것이다. 건설적 비판이 아닌 인격 모독 식의 비난은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으며 갈등을 심화시킬 뿐이다.
우리의 일상은 어떠한가. 주변 사람과 얼굴을 붉히거나 상처를 주는 말을 주고받고 있지는 않은가. 가족이라고 예외는 아닐 것이다. 자식이 부모에게 “그러게 언제 제가 낳아달라고 했어요”, 또는 부모가 자식에게 “너도 꼭 너 같은 자식 낳아서 고생해봐야 돼”라고 말한다. 가까운 사이일수록, 서로 더 많이 기대할수록 상처를 주고받기 쉽고 모진 말은 시간이 흘러도 아물지 않는 상처로 남는다.
언젠가 모 방송에서 심하게 다툰 후 수년간 서로 한마디도 하지 않는 아버지와 아들의 모습을 방영한 적이 있다. 아버지는 거실에 있고, 아들은 자기 방에만 있다. 그러다가 아버지가 방으로 들어가면 아들은 거실로 나온다. 서로 투명인간 취급을 하는 부자간의 모습을 보고 ‘창살 없는 감옥’을 보는 것 같아 마음이 무거웠다. 그들도 한때는 서로 애틋하게 아껴주던 때가 있지 않았을까. 우리의 감정에도 여러 가지 층이 존재한다. 서로 비난하면서 싸우면 처음에는 분노의 감정이 생기고, 점차 자책감과 후회감이 밀려오다 마지막엔 우울해진다.
관계를 악화시키는 말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필자는 사람들이 흔히 사용하는 말 중 ‘근데’라는 말에 주목하고자 한다. 주위를 살펴보자. ‘근데’라는 말을 많이 사용하는 사람 가운데 인간관계가 좋은 사람이 있는지. ‘근데’라는 말은 주로 다른 사람의 말허리를 자를 때 사용된다. 원래 ‘근데’는 ‘그런데’라는 ‘전환’ 의미의 줄임말이지만, 속내는 ‘그러나’라는 ‘역접’의 의미를 담고 있기에 상대는 차단되는 느낌을 받아 언짢아지기 쉽다. 여기에 극단적인 낱말인 ‘언제나’, ‘항상’, ‘전혀’, ‘결코’, ‘단 한 번이라도’를 덧붙여 사용하면 관계는 더 나빠진다. 이를테면 “근데, 넌 항상 이런 식으로 날 무시해. 언제 단 한 번이라도 내 말에 진심으로 귀 기울여본 적이 있니”에서 보듯 화가 나면 극단적이 되기 쉽다. 분노를 비난으로 맞받아친 탓이다.
관계가 좋아지려면 ‘그런데’나 ‘그러나’ 대신 ‘그리고’를 사용해 보자. 상대의 말을 우선 경청하고 이해반응을 보이자. 공감되는 부분에는 ‘맞아’, ‘그래’처럼 맞장구치는 것도 좋다. 그다음에 ‘그리고’하며 내 생각을 얘기해 보자.
흔히 방송토론 때 정치인의 말을 들어보면, ‘그리고’의 대화는 거의 찾아볼 수가 없고 ‘근데’의 대화만 난무할 때가 많다. 본질보다는 상대방의 말꼬리를 잡아 비난하거나 자신에게 유리하려고 말을 잘라내 상대가 틀렸음을 입증하려 전력을 다한다. 그러다 보면 고성이 오가고 막말이 더해져 생산적인 대화는 요원하다.
흔히 말은 그 사람의 인격을 반영한다고 한다. 품위있는 ‘그리고’의 대화법이 필요한 이유이다.
이동귀 연세대 교수·심리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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