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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입견·두려움에 배척… 정치 성향 관계 없이 분노 표출 [한국형 외국인 혐오 보고서]

관련이슈 한국형 외국인 혐오 보고서

입력 : 2020-03-23 06:00:00 수정 : 2020-08-05 15:4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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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방·욕설 올린 아이디 7개 댓글 1만2000개 분석 / 이슬람 극단주의 테러 기사 자주 노출 / 中·日과 역사적인 관계도 큰 영향 미쳐 / 무슬림 테러분자, 중국인은 하류집단 / 한번 찍힌 낙인에 맥락없는 비난 반복 / 후진국·선진국 따라 혐오에도 등급 둬 / 中·日 모두 비난하면서도 온도엔 차이 / 美·유럽선 극우·보수 진형서 주도 반면 / 국내는 이념적 쏠림 현상 뚜렷하지 않아

이름 석 자가 아이디로 바뀌면, 우리는 가면을 쓴 ‘괴물’이 된다. 아이디 뒤에 정체를 숨기고 거침없이 속엣말을 쏟아낸다. 인터넷 기사 댓글에 혐오와 욕설, 비방이 넘치는 이유다. 그렇다면 누가, 왜 그토록 외국인과 귀화인을 혐오하는 걸까. 세계일보는 외국인 혐오의 민낯을 보다 자세히 들여다보기 위해 혐오 댓글을 올리는 아이디를 추적, 분석했다. 이들이 인터넷에 남긴 흔적 속에서 혐오의 실체를 찾아내기 위해서다. 이를 위해 △제주 예멘난민 심사 시작(2018년 6월25일) △외국인 노동자 최저임금 차등화 논란(2019년 6월19일) △코로나 19 국내 첫 증상자 발생(1월8일)과 관련해 댓글이 가장 많이 달린 기사를 우선 골랐다. 난민, 외국인 노동자, 중국인(조선족 포함)을 향한 비하·욕설 댓글 중 가장 많은 추천을 받은 아이디 7개를 뽑아낸 뒤, 이들이 2015년부터 최근까지 남긴 댓글 1만1900여개를 전수조사했다.

이들은 항상 외국인을 비속어로 등치시켰고, 여성, 노인, 특정 지역에도 곧잘 혐오와 적대를 드러냈다. 정치 성향 면에서도 보수, 진보 가릴 것 없이 외국인을 ‘척결 대상’으로 봤다.

◆혐오에도 레벨이 있다

혐오는 선입견에서 출발한다. 이들에게 예멘 난민은 언제 총구를 들이댈지 모르는 ‘테러리스트’이며, 외국인 노동자는 ‘잠재적 범죄자’, 중국인과 중국 동포는 ‘지역사회 물 흐리는 하류집단’이다.

한 번 찍힌 낙인은 상황과 맥락과 관계없이 반복적으로 등장했다. ‘판교에 중정형 단독주택이 늘고 있다’는 기사에 “짱X가 늘어서 짱X들 건축방식이 늘어난 것”(ㄱ**)이라거나 ‘배우 정우성의 예능 프로그램 출연’ 기사에 “어떻게 공인이 돼서 테러리스트를 옹호하느냐”(가**)고 하는 식이다. 미얀마 군부의 로힝야족(무슬림) 박해나 뉴질랜드에서 백인이 무슬림에 총기 난사를 한 사건에서도 “무슬림 박멸, 배워야 한다” 같은 댓글을 남겼다.

 

7개 아이디 모두 외국인에 강한 혐오를 드러냈지만, 눈여겨볼 점은 혐오에도 ‘등급’이 있다는 것이다. 아이디 ‘옥******’은 중국인과 일본인을 모두 비난하면서도 ‘일본은 글로벌 시대에 반일 불매운동으로 이길 수 없는 나라’로, 중국에 대해서는 ‘나라 크고 경제력 좀 있다고 해봐야 한국인 10% 수준의 이성을 가진 나라’로 묘사했다.

다문화학생의 학교 부적응 문제를 짚은 기사에 ‘후진국에서 돈 보고 온 놈들이나 힘들다 징징하지 선진국 애들은 저런 걸로 불편 느끼는 걸 본 적도 없다’(ㄱ**)고 한 경우도 있다. 아이디 hu******은 사드로 불거진 중국의 ‘한한령(限韓令)’으로 명동 상권이 휘청였을 때 “짱X 없으니 너무 좋다, 더러운 중국 돈 필요없다”고 반중 감정을 드러내면서도, 중국의 무슬림 소수민족 차별 기사에서는 “이건 중국이 잘 한 일”이라고 했다.

◆혐오의 또 다른 이름 ‘두려움, 억울함’

7개의 아이디가 남긴 혐오의 감정을 따라가다 보면 두려움, 억울함, 피해의식 등과 마주하게 된다. 예멘 난민 수용 여부를 놓고 갈등이 빚어졌던 2018년 댓글에는 유독 프랑스 파리 샤를리 에브도 편집국 총격 테러(2015년), 독일 열차 도끼 만행(2016년), 미국 뉴욕 지하철 자폭테러(2017년), 벨기에 브뤼셀 중앙역 폭발테러(2017년) 같은 사건이 자주 등장했다. 이슬람국가(IS) 같은 극단주의 테러조직 기사에 자주 노출돼 ‘무슬림=테러리스트’로 각인됐음을 짐작할 수 있다.

아이디 ‘hu******’은 2017년 크리스마스를 앞두고 독일에서 시리아 난민이 테러모의한 기사를 11차례나 링크를 걸며 ‘기레기(기자)가 전하지 않는 팩트’라고 위기감을 나타냈다. 자녀가 있는 40대 여성이라고 밝힌 ‘가**’도 “내 자식과 우리 국민의 안전이 걸린 문제”라며 ‘무슬림 포비아(공포증)’ 수준의 부정적 감정을 드러냈다.

중국인과 일본인에 대한 반감은 조선시대와 일제강점기 때 두 나라에 억눌렸던 사실과 맞닿아 있을 때가 많았다. 이들은 중국의 사드 보복이나 일본의 수출규제 때 “이게 바로 국권을 빼앗긴 조선 말기와 뭐가 다르냐”, “더 이상 독립국가가 아니다”, ‘속국’ 같은 표현으로 분한 마음을 표출했고, ‘더러운 짱X’, ‘야비한 쪽XX’로 이어졌다.

◆분노는 대상을 가리지 않는다

혐오는 외국인에만 머무르지 않았다. 혐오의 불씨는 정치권, 지역, 젠더, 세대 등으로 옮겨붙으며 화력을 키웠다. 아이디 ‘에*’은 아시아 여성을 비하한 독일 광고 기사 댓글란에 “백인이면 사족을 못 쓰는 XX(한국 여성)”, “허접한 외국놈 추파에 생글생글 미소 짓는다”고 비하했다. 또 다른 댓글에서는 “강간천국 인도를 혼자 여행하는 한심한 한국 여성”, “이탈리아 명품관광하는 골빈 무리”라는 표현도 나온다.

미국이나 유럽에서는 외국인 혐오가 주로 극우 내지는 보수성향과 궤를 같이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이 정도로 이념 지형이 뚜렷하지는 않다. 지난해 말 발간된 ‘외국인정책 시행계획 평가 및 추진과제 발굴 연구’ 보고서를 위해 국민 2000여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에도 이 같은 현상이 나타난다. 당시 설문을 진행한 전대성 전주대 교수(행정학)는 “처음에는 진보와 보수 간 외국인에 대한 인식이 다를 것이라 생각했는데 큰 차이는 없었다”고 말했다.

혐오댓글을 단 7명도 이념적 쏠림은 보이지 않았다. 아이디 ‘겨***’는 최근 5년간 남긴 5000여개 댓글의 약 10%(488건)에서 보수 야당을 원색적으로 비방했다. 하지만 그에 못잖게 중국인과 일본인도 ‘짱X’, ‘원숭이’ 같은 표현을 써가며 비하했다. 보수 진영과 경상도에 혐오 댓글을 단 ‘ㄱ**’는 아예 “무슬림 난민을 받아들이는 순간 난 민주당 지지 철회를 심각하게 고민할 것”이라는 댓글을 남겼다. 보수 성향의 댓글을 주로 쓴 아이디도 “자국민 먼저 챙기는 트럼프와 아베를 좀 본받아라”(가**)거나 “선비질하는 인권타령 그만하라”(에*)며 반감을 표했다.

이와 관련, 설동훈 전북대 교수(사회학)는 “우리나라 주류 정당은 중도 보수와 중도 진보로 스펙트럼이 크지 않다”며 “하지만 우리나라도 극우성향 종교단체나 일베 같은 곳에서 외국인 혐오를 노골화하고 있기 때문에 더 극단적으로 가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고 전했다.

 

특별기획취재팀=안용성·윤지로·배민영 기자 ysah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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