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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이터는 당신이 한 일을 알고있다

입력 : 2020-06-13 02:00:00 수정 : 2020-06-12 19:2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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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지털 공간 기업들 개인정보 공유 / 특정인의 행동·취미·기호 파악 / 단 10시간만에 6개월치 행적 추적 / 맞춤형 광고·사기 등 노출 위험 / 인공지능이 신용도 평가 취업·대출 차별 / ‘버추얼 슬럼’ 새 빈곤층 낳을수도 / 개인 사생활 지키며 테크놀러지 발전시켜야

데이터 프라이버시 니혼게이자이신문 데이터경제취재반/전선영/머스트리드북/1만4800원

 

빅데이터 시대, 개인의 안전과 존엄을 생각하는 기술에 관한 탐사기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신문 데이터경제취재반 기자들이 디지털 기술의 발달과 데이터 경제의 진전이 빚어낸 우리 삶의 변화상을 추적하기 위해 21개월간 미국, 중국, 일본, 유럽 등의 기업과 실험실을 심층 취재한 뒤 인공지능(AI) 시대의 개인 보안 취약성, AI 평가에 따른 인간 차별 등에 관한 취재 결과물이다.

 

책에 따르면 현대인은 데이터 기술로 편리한 생활을 누리고 생산성을 높이는 대가로 중요한 개인정보를 기업에 내준다. 이 경우 자기도 모르는 사이 사생활이 침범당할 위험에 노출된다. 그러다 보니 아이디 제휴에서 스코어링, 프로파일링, 딥페이크, 표적형 사이버 공격까지 빠르게 진화하는 기술에 대한 불안이 뒤따른다. 또 데이터의 사용 방법에 따라 새로운 격차 사회가 출현할 수 있다는 문제도 제기된다. 데이터가 가져오는 경제 성장과 편리한 사회를 향한 기대는 좋지만, 개인 생활과 사회를 갉아먹는 부작용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점을 강조한다.

디지털 공간에서 발생하는 문제가 현실 세계에 미치는 영향을 심층 분석한 이 책은 개인의 디지털 자산 권리 보호와 데이터 윤리에 관해 성찰하게 한다. 저자들은 개인의 프라이버시를 지키면서 테크놀로지를 발전시켜가는 것이 데이터의 세기에 필요한 경쟁력을 키우는 첫걸음이라고 강조한다. 게티이미지 뱅크

취재반에서 제시하는 사례는 놀랍기까지 하다. 디지털 공간에서는 10시간 만에 한 개인을 특정해 6개월치 행적까지 알아낼 수 있다. 인터넷상의 데이터를 모아 특정 인물의 행동 패턴부터 취미와 기호, 속마음까지 추정하는 기술이 ‘프로파일링’이다. 흥미를 느낄 만한 대상을 선별하여 광고를 띄우는 맞춤형 광고 등에 자주 쓰이는 기술을 말한다. 인터넷 광고회사는 “광고 전송에는 개인이 누구인지까지 알 필요는 없고, 실제로 특정하지도 않는다”고 강조하나 누군가 작정하고 자료를 모은다면 자신의 이름과 상세한 행적을 알아내는 것도 충분히 가능하다. 개인정보보호법에 따르면 익명의 위치 정보는 법률로 보호해야 하는 개인정보에 해당하지 않는다. 따라서 이름, 주소, 얼굴 데이터 등과 같은 종래의 개인정보만큼 취급을 규제하지 않고, 본인의 동의를 얻지 않더라도 기업끼리 공유할 수 있다. 사생활이 침범당할 위험에 노출돼 있다.

인터넷상에는 스마트폰 위치를 비롯해 온갖 데이터가 넘쳐난다. 취재팀은 그중 손쉽게 얻을 수 있는 공개 정보를 활용해 어디까지 개인에게 접근할 수 있는지 직접 시험했다. 그 결과 안전한 익명 정보에서 출발해 10시간 만에 개인을 특정하고 그 사람의 6개월치 행적까지 상세하게 알아낼 수 있었다. 정작 본인은 데이터를 넘긴 기억이 없더라도 기업끼리 제멋대로 공유하고 사용할 수 있다. 이렇게 알아낸 개인정보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 퍼져 사기나 스토킹 같은 범죄에 악용될 소지도 적지 않다. 데이터를 다루는 기업뿐 아니라 이용자의 경각심이 필요하다.

데이터 알고리즘이 야기하는 사회적 차별과 편견도 간과할 수 없는 문제다. 디지털 세상에서 인간 차별 문제는 제기된 지 오래다. 미국에선 구글 알고리즘이 포토 애플리케이션에서 흑인의 사진 데이터에 ‘사람(human)’이 아닌 ‘유인원(apes)’, ‘동물(animal)’과 같은 단어를 자동 태그한 사실이 알려져 사회적 논란을 야기한 바 있다. 아마존이 개발한 인공지능 채용 시스템은 입사 전형에서 여성 지원자의 데이터를 완전히 배제하는 결과를 도출하면서 결국 폐기됐다. 이런 일들의 연장선상에서 세계적으로 데이터의 편향과 오류에 관한 관심이 촉발된 지 오래다.

요즘은 인공지능이 학력, 직업, 주거지 등 개인정보를 분석해 신용도를 산출하는 스코어링 기술은 대출이나 채용 분야에서 널리 활용되고 있다. 대표적으로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회사 알리바바가 운영하는 대출 서비스 ‘즈마신용’을 들 수 있다. 이 시스템은 이용자의 신용도를 350점부터 시작해 950점 만점으로 평가한다. 점수가 높으면 낮은 금리로 돈을 빌려주고 렌터카를 빌리거나 할 때 보증금을 면제해준다. 반면에 점수가 낮으면 신용카드 발행이나 대출 심사에서 불리한 조건을 부여한다. 이 같은 인공지능으로 개인의 신용도를 평가하는 시스템은 편리함을 가져오지만, 한편으로 ‘버추얼 슬럼(virtual slum)’이라는 새로운 빈곤층을 낳을 수 있다.

 

알고리즘에 의한 데이터 분석으로 낮은 점수를 받으면 취업, 대출, 주택 임대, 결혼 서비스 등 사회의 주요 영역에서 배제된다. 취업에 실패해 낮은 임금을 받고 이런저런 일자리를 전전하다 보면 더욱 점수가 낮아지는 악순환에 빠지게 된다. 인생의 모든 상황에서 불리한 처지에 놓이고 재도전할 기회조차 잃을 수 있다. 딜로이트토마츠컨설팅에 따르면 2030년까지 세계 주요 20개국에서 최대 5억4000만명의 버추얼 슬럼이 생겨날 것으로 추산된다. 15세에서 64세의 생산연령인구 계층에서 여섯 명 중 한 명이 빈곤층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예측이다.

취재팀은 이런 점수가 당연해지는 사회가 이미 가까이 와 있다고 경고한다. 채점자가 ‘GAFA’라고 불리는 구글, 애플, 페이스북, 아마존만 있는 건 아니며, 끊임없이 새로운 기술이 탄생하므로 제자리에 머물러 있어서는 안 된다고 조언한다. 중요한 것은 토대가 되는 사상이다. 긍정적인 면과 부정적인 면을 동시에 갖춘 점수를 어떻게 잘 다루어 삶을 얼마나 풍요롭게 할 것인지를 놓고 고민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우리나라는 어떤가. 코로나19 대응과 관련해 개인의 휴대전화 위치 정보와 카드 사용 내역 등을 전수조사하는 방식을 놓고 우리 사회가 개인정보에 대해 다소 권위주의적, 전체주의적 관점에서 해결책을 찾은 건 아닌지 우려하는 목소리도 나온다. 질병 확산을 최소화하려는 의도에서 불가피하게 시행된 조치이긴 하지만, 개인정보 취급을 둘러싸고 최근 급속도로 엄격해진 세계적 여론 동향과 규칙 정비의 흐름을 따라가지 못한 면도 있다는 의견이다. 데이터 기술의 혁신으로 인한 성장을 지향하지만 그렇다고 개인의 안전과 존엄이 뒷전으로 밀려서는 안 된다. 사생활 정보를 제공하고 정당한 대가를 받고 있는지에 관한 고민을 던져주고 있다.

 

박태해 선임기자 pth122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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