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년간 베일에 가려졌던 ‘화성(이춘재) 연쇄살인 사건’을 재수사한 경찰은 “이춘재는 피해자의 아픔을 공감하지 못하는 전형적인 자기중심적 사이코패스”라고 밝혔다. 감정상태에 따라 상대방을 살해하거나 범행 원인을 피해자에게 전가하는 등 이중적 모습을 보였다는 설명이다.
경기남부경찰청은 2일 오전 재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내성적 성격의 이춘재는 군 전역 이후 무료하고 단조로운 생활로 스트레스가 가중된 욕구불만 상태였다”며 “상실된 주도권을 표출하기 위해 범죄를 저지르기 시작했다”고 공개했다.
◆ 사이코패스 검사 ‘상위 65∼85%’…“범행 원인 피해자에게 전가, 건강 걱정”
경찰은 당시 사건에서 이춘재가 보여준 여러 가학적 형태의 연쇄 범행과 프로파일러의 면담, 심리검사, 진술 분석, 사이코패스 평가 등을 종합해 이처럼 결론 내렸다.
경찰 관계자는 “이춘재는 사이코패스 검사에서 상위 65~85% 사이의 성향을 보였다”며 “수사 초기 ‘피해자들에게 미안하다’면서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으나 범행 원인을 피해자에게 전가하고, 자신의 건강과 교도소 생활만 걱정하는 등 이중적이고 자기중심적인 모습을 드러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또 “(독방에 있던) 이춘재가 예전의 생활로 돌아가고 싶다”며 “(연쇄살인) 범행이 드러나기 전 다른 재소자들과 함께 지내던 교도소 생활을 그리워했다”고 전했다.
아울러 이춘재는 피해자나 유족은 물론 자신으로 인해 손가락질을 받게 된 가족의 고통에 대해서도 공감하지 못했다. 자신의 범행과 존재감을 계속해 과시하고 언론의 관심을 받으려 했다는 것이다. 경찰에 따르면 이춘재와 면담한 프로파일러들은 어린 시절 물놀이 도중 사망한 남동생에 대한 죄책감이 성격 형성에 큰 영향을 끼친 것으로 파악했다. 또 평소 내성적 성격인 이춘재가 기갑부대에서 군 복무를 하면서 처음으로 성취감과 주체적인 역할을 경험한 게 이후 범행에 간접적 영향을 끼쳤다고 확인했다. 군 제대 이후 단조로운 생활로 극심한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사이코패스의 성향이 폭발했다는 것이다.
◆ “고통·죄책감 못 느껴…군 제대 후 사이코패스 성향 폭발”
경찰 관계자는 “범행 수법에서 특별한 공통점은 없었고 (해가 진 뒤) 거리를 배회하다 감정상태에 따라 살해하거나 성폭행 등을 저질렀다”며 “죄책감이 없어 수법이 점차 잔혹하고 가학적 형태로 진화했다”고 밝혔다.
이춘재에 대한 감정 평가에는 2009년 연쇄살인범 강호순의 심리분석을 맡아 자백을 끌어낸 공은경(41·여) 경위를 비롯한 프로파일러들이 참여했다. 다만 정신과 전문의는 이번 평가에서 배제된 것으로 확인됐다.
이날 발표에서 경찰은 이춘재가 경기 화성군과 충북 충주시 일대에서 1986년부터 1991년까지 저지른 살인사건은 모두 14건이라고 확인했다. 1986년 9월 당시 태안읍 목초지에서 71세 여성을 살해한 것으로 시작으로 1986년 10월 태안읍 진안리 농수로 살인사건, 1987년 12월 수원 여고생 살인사건, 1989년 7월 화성 초등학생 실종사건, 1991년 1월 청주 여고생 살인사건 등을 저질렀다.
당시 화성군 태안읍 사무소 인근 읍·면에서만 여성 10명이 살해당했다.
◆ 정신감정에 정신과 전문의 배제…성폭행 25건은 미제로 남아
경찰은 당시 35건의 성폭행 사건 중 9건도 이춘재의 소행으로 밝혔지만 나머지 25건은 진술의 구체성이 떨어지고, 피해신고가 되지 않거나 일부 피해자들이 진술을 거부해 밝혀내지 못했다.
1994년 1월 처제를 살해한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받고 부산교도소에서 수감 중이던 이춘재는 지난해 9월 부산교도소에서 프로파일러 등과 4번째 면담을 갖던 중 화성 연쇄살인 사건의 범행 전체를 자백했다. 앞서 경찰이 지난해 7월 사건 현장 증거물에서 채취한 DNA가 이춘재의 DNA와 일치하는 것을 확인하고 재수사를 시작한 뒤였다.
수원=오상도 기자 sdoh@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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