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권 신규택지개발 후보지 급부상… 지역주민 “그린벨트 훼손” 부정적 입장
軍내부선 “박정희 잔재 지우기” 해석도… 육사 부지 연계개발 방안까지 나돌아
성우회 “국군이 태동한 성지” 강력 반발… 성남골프장 대체 부지 활용 거의 합의
◆논란의 태릉골프장
1966년 개장한 태릉골프장은 원래 9홀이었다가 1970년 18홀 정규 코스로 확장했다. 경기도 고양의 한양CC(64년)와 비슷한 시기에 건설된 최초의 군 골프장이다. 지난해 김포공항에 ‘인서울 27’ 골프장이 들어서기 전까지 서울에 있는 유일한 골프장이었다.
태릉골프장은 원래 육군사관학교가 생도 훈련장으로 쓰던 뒷산을 개발한 곳이다. 박정희 전 대통령 지시로 각 사단에서 차출된 공병대가 한 홀씩 공사를 맡았다고 한다. 그래서 각 홀 표식으로 사단마크가 새겨져 있다. 박 전 대통령은 개장식 때 시타를 했고 자주 라운딩을 즐겼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권양숙 여사와 더러 이곳을 찾았다고 한다. 청와대에서 가깝고 군 시설이라 경호가 쉬웠기 때문이다.
클럽하우스 2층에는 박 전 대통령의 개장기념 시타 사진(1966. 11. 5)과 ‘넉넉하고 아름다운 터에서 한시름을 털고 갑니다’라는 노 전 대통령의 방명록이 나란히 전시돼 있다. 한국 현대사를 관통하고 있는 골프장인 셈이다. 사실 태릉골프장은 육사가 처음 생겼을 때 생도 1, 2기가 교육받다가 불암산 일대 전투에 참여했던 6·25전쟁 전적지이기도 하다. 관련 기록과 문화재도 다수 존재한다. 무엇보다 지난 70년 군의 애환이 자리한 곳이다.
이런 태릉골프장이 세간에 화제가 된 것은 지난 20일. 문재인 대통령이 정세균 국무총리와 주례회동 자리에서 국·공립시설을 활용한 수도권 주택공급 확대와 함께 태릉골프장 부지를 언급하면서다. 정부는 2년 전인 2018년에도 태릉골프장을 택지로 조성하는 방안을 검토했지만 서울시와 국방부의 반대로 포기했다. 당시 서울시는 “그린벨트가 미래세대를 위한 최후의 보루다. 태릉골프장도 그린벨트”라며 반대했다.
다만 이번에는 대통령이 콕 집어 태릉골프장을 거론해 그때처럼 강력 반발할 가능성은 낮아 보였다. 아니나다를까 서울시와 국방부는 반발이 아닌 협의 쪽으로 방향을 틀었다.
이후 태릉 주변 지역은 아파트 호가가 1억원이 뛰었다는 보도가 나오는 등 들뜬 분위기다. 육사까지 연계해 2만가구의 부동산 개발이 가시화될 것이라는 성급한 전망마저 이어졌다.
하지만 태릉은 부동산 수요가 집중된 강남과는 거리가 있다. 법적으로는 그린벨트 지역이다. 그린벨트를 훼손하지 않겠다는 정부의 이중성을 드러낸 격이라 지역주민 반발도 작지 않다.
한 주민은 지난 21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태릉골프장 부지 주택공급은 전형적인 탁상행정이라고 꼬집었다. 이 주민은 “(태릉골프장 주택공급은) 지역 발전은커녕 전형적인 베드타운으로 남아 교통체증과 녹지 파괴로 환경오염만 가중할 뿐”이라고 주장했다.
군 내부에선 정권이 박정희 잔재를 없애고 싶어한다고 해석하는 시각도 없지 않다. 한 예비역 육군 장성은 “정권이 6·25전쟁 영웅 백선엽을 뭉갰듯이 골프장을 박정희 대통령이 만들었으니까 묻어버리고 싶은 것 아니겠냐”고 말했다.
◆유치전까지 등장한 육사 이전설
태릉골프장과 연계한 육사 이전설이 나돌자 정세균 총리는 23일 “태릉골프장을 청년, 신혼부부 등을 위한 주택공급에 활용하지만 육사 부지에 대해서는 계획이 없다”고 선을 그었다. 그렇더라도 태릉골프장과 육사를 따로 분리해 생각하기가 쉽지 않다. 군 안팎에서는 육사 이전에 따른 거부감 등을 고려, 먼저 태릉골프장 카드를 꺼내든 것으로 보고 있다.
벌써부터 지자체들의 육사 유치전이 달아오르고 있다. 사관생도를 포함해 2000여명이 머무는 태릉 육사를 유치하면 지역경제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는 기대감에서다. 강원도와 경기도는 국방개혁에 따른 인구 감소와 접경지역 균형발전을 위해, 충남도와 경북도는 육해공군 본부와 삼국시대 화랑의 본거지임을 내세우고 있다.
골프장 83만㎡ 부지에 육사의 67만㎡를 합치면 150만㎡에 달한다. 골프장 부지만으로는 1만가구에 불과하지만 육사와 2009년 보금자리주택지구로 지정된 인근 구리 갈매지구까지 결합하면 3만가구 규모의 신도시가 가능할 것으로 추정된다. 군침을 흘리지 않을 수 없는 개발 호재인 것이다.
육사 이전은 수십년째 되풀이돼 왔다. 2005년에도 한 차례 논란이 됐다. 당시 정부와 열린우리당은 육사의 지방 이전을 수도권 발전대책의 하나로 논의했다. 대통령 자문기관인 국가균형발전위원회는 국방부에 육사 이전에 대한 입장과 추진계획 제출을 요구하기도 했다. 하지만 육군이 “지방 이전은 실현 가능성이 희박해 수용하기 어렵다”며 반발했고 끝내 무산됐다.
육사는 단순한 군부대가 아니고 교육기관이다. 연구소와 연구자원, 민간대학과의 학술교류 등 다양한 교육 인프라와 연계돼 있다. 군부대, 훈련장 이전과는 다르게 접근해야 하는 이유다. 대체부지와 여건을 갖추기 전까지 이전이 쉽지 않다고 할 수 있다.
육사 출신의 한 영관장교는 “모든 집단이 그렇지만 군도 우수한 인재영입이 중요하다. 그래야 국방개혁도 하고 문민통제에 맞는 전투력 보존과 유지가 가능하다”면서 “하나의 교육기관을 옮기는 문제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군에 들어오는 인재들, 그들의 평가도 달라질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육사 이전은 태릉골프장과는 분명 다른 문제일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태릉골프장 그리고 옆에 있는 육사도 나가면 좋겠네, 이렇게 얘기하면 궁여지책이며 군에 대한 홀대로 비칠 수 있다는 것이 많은 예비역들의 생각”이라면서 “더구나 지금은 육사 출신이 현 정권에서 거의 폐족(廢族)으로 몰리다시피 한 상황이 아니냐. 오해하기 딱 좋다”고 지적했다.
태릉골프장에서 육사까지 연계해 정부가 부동산 개발에 나서려면 거기에 합당한 논리적 근거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이민룡 숙명여대 교수(예비역 준장)는 “국가 발전을 위해서라면 태릉골프장 존속을 고집하지 않는다. 하지만 육사와 세트로 없애는 데는 반대한다. 육사가 위치한 태릉은 호국간성의 요람”이라며 “만약에 미국의 웨스트포인트(육사)를 부동산 문제 때문에 이전한다면 미국 국민들은 어떻게 받아들일까 싶다”고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우회적으로 비판했다.
◆“정치적 문제를 군사적 시각에서 접근하면 안 돼”
예비역 장성 단체인 성우회는 27일 ‘입장문’을 통해 “태릉(골프장) 일대와 화랑대(육사)는 역사적 가치와 국가 전략적 가치가 매우 높은 중요한 지역”이라며 “아파트 몇 채와 바꿔서도 안 되며 훼손되어서도 안 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태릉 일대와 화랑대는 분리될 수 없는 한 몸과 같다. 화랑대는 국군이 태동한 성지이며 군의 정신적 요람 그 자체”라고 강조했다.
앞서 미래통합당 외교안보특위는 지난 22일 성명서를 통해 정부의 군 태릉골프장 개발을 통한 수도권 주택공급 계획과 관련해 “또다시 만만한 군만 건드려 일을 해결하려는 시도를 당장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군 출신인 신원식 통합당 의원은 “잘못된 정치적 결단에서 초래된 이슈다. 군이 군사적 관점에서만 이를 물리라고 강요해서는 국민적 설득력을 얻지 못한다”면서 “태릉골프장과 육사는 그린벨트인 동시에 군사적 사적지이고 향후 군사적 활용 가능성에다 노원구 지역주민들을 위한 녹지공간이란 점을 부각시켜야 한다”고 주문했다.
한편 국방부와 국토교통부는 태릉골프장 대체부지로 경기도 하남 성남골프장을 활용하는 방안에 거의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즉 미군으로부터 성남골프장을 반환받아 국토부에 판매한 뒤 다시 양도받는다는 계획이다. 정경두 국방부 장관은 28일 국회 국방위 전체회의에 출석해 “현역이든 예비역이든 복지혜택을 손상하며 절대 하지는 않겠다”고 군 복지혜택 손실은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병진 군사전문기자 worldp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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