채용 줄고 기존 일자리서도 밀려
2020년 2월부터 고용난 4050 압도
기업 301곳 중 41% “덜 뽑겠다”
입사해도 휴직·권고사직 ‘불안감’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 따른 고용 악화가 모든 연령대를 통틀어 청년층에게 가장 크게 나타나고 있다. 코로나19 여파로 취업 시장 문이 닫히면서 기업들의 신규 채용이 급감하고 기존 일자리에서도 밀려난 영향이다.
지난해 정부가 40대 일자리 대책을 따로 발표할 정도로 전 연령대에서 40대 취업난이 가장 심각했다면 코로나19가 확산하기 시작한 올해 2월부터는 20대 취업난이 40대를 압도한다. 청년층은 취업이 늦어질수록 경력 손실이 커지고, 사회안전망에서도 사각지대에 놓일 가능성이 높지만 정부 대책은 공공부문 단기 일자리나 민간 기업에 취업 지원 장려금 지급 수준에서 맴돈다. 코로나19가 재확산하면서 청년층의 고용 악화 상황이 고착화할 수 있는 만큼 정부의 실효성 있는 맞춤형 대책이 시급하다.
31일 통계청 경제활동인구조사를 분석해 보니 지난 7월 20대 고용률은 56.1%로 같은 달 기준으로 통계 작성을 시작한 1999년 이후 21년 만에 가장 낮았다. 코로나19가 급속도로 확산했던 지난 3월 20대 고용률은 54.5%로 1999년 이후 전월을 통틀어 가장 낮다. 4월에도 54.6%로 전월을 통틀어 역대 두 번째로 낮은 고용률을 기록했다. 30·40·50대는 외환위기 이후나 글로벌 금융위기에 고용률 저점을 찍었는데 20대는 코로나 사태에서 최저다.
지난달 고용률도 1년 전보다 4.4%나 줄어 7월 기준으로 1999년 통계 작성 이후 최대 감소폭을 기록했다. 고용률이 10% 미만인 10대를 제외하면 전 연령대에서 고용률 감소폭이 가장 컸다. 마찬가지로 지난 3월에는 고용률이 1년 전보다 5.2% 줄며 통계 작성 이후 전월을 통틀어 가장 큰 고용률 감소폭을 보였다.
20대의 전년 동월 대비 고용률 감소 정도는 코로나19가 처음 확산한 지난 2월에 1년 전보다 1.4% 감소한 것을 시작으로 매월 -4∼5%대로 30·40·50대의 고용률 감소폭을 크게 웃돌았다.
코로나발 고용 타격에 20대가 가장 취약한 데는 신규 채용 감소 영향이 가장 크다. 고용률 70% 중반대를 유지하는 30·40·50대는 일시휴직 형태로라도 기존 일자리를 유지할 수 있지만 새로 직장을 구해야 하는 20대는 취업 기회 자체가 사라졌다.
고용노동부가 이날 발표한 ‘2020년 상반기 직종별 사업체 노동력 조사’에 따르면 올해 2∼3분기 국내 상용직 5인 이상 사업체의 채용계획 인원은 23만8000명으로, 2009년 1분기(20만8000명) 이후 최소 규모였다. 1분기 기업 구인인원은 79만3000명, 채용인원은 73만4000명으로 지난해보다 각각 3만2000명(3.9%), 1만4000명(1.9%) 줄었다. 대한상공회의소가 이달 초 발표한 ‘코로나 사태로 인한 고용·임금에 대한 인식조사’에서 국내기업 301개사 중 40.7%가 ‘신규 채용 규모는 애초 계획보다 축소했거나 축소를 고민한다’고 응답했다.
◆문 닫힌 취업 시장… 채용 없고, 휴직에 권고사직까지
대학에서 의류학을 전공하고 패션 상품기획자(MD)를 목표로 취업 준비를 하는 A(24·여)씨는 올해 입사 시험을 딱 한 번 치른 게 전부다. A씨는 “가고 싶은 기업의 공채가 없을 것이라는 소문이 돌고 일부 회사는 공채를 진행하지 않는 것으로 확정돼 의욕이 많이 떨어졌다”고 말했다.
방송사 경영부문 입사가 목표인 B(27·여)씨는 올해 취업 상황을 ‘가뭄’이라고 표현했다. 방송사는 물론이고 일반 기업에서도 채용공고가 없어서다. B씨는 “무엇보다 채용 자체가 없는 것이 가장 힘들다”며 “꼭 방송사, 경영 쪽이 아니더라도 관련 채용이 있으면 지원이라도 해볼 텐데 그런 기회조차 박탈당한 느낌”이라고 토로했다.
청년층의 체감실업률을 보여주는 고용보조지표3(확장실업률)은 지난달 25.6%로 통계 작성을 시작한 2015년 이후 7월 기준으로 최대치를 기록했다. 지난 6월에는 26.8%로 전월을 통틀어 최대였다. 구직활동을 하는 청년 4명 중 1명이 실질적인 실업자인 상황에서 채용이 진행되지 않는 셈이다.
기존 일자리를 잃는 경우도 적지 않다. 2015년 국내 저비용항공사 입사해 노선개발 업무를 담당하고 있는 C(30)씨는 현재 무급휴직 상태로 9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 중이다. C씨는 “2015년 메르스(중동호흡기증후군)도 경험해서 코로나19 사태가 몇개월이면 끝날 것이라고 생각했다”면서 “회사 상황이 안 좋고 휴직기간도 길어지면서 경제적으로나 심리적으로 위축이 된다”고 말했다.
서울 명동의 호텔에서 일하던 D(29·여)씨는 지난달 권고사직을 통보받았다. D씨는 현재 실업급여를 받으면서 세무 자격증 공부를 하고 있다. 그는 “당장 적금이나 고정지출을 하는 데 어려움이 생겼다”면서 “자존감이 떨어지는 것을 느낀다”고 했다. 20대 취업자는 지난 2월 전년 동월 대비 2만5000명이 준 것을 시작으로 3월 17만6000명, 4월 15만9000명, 5월 13만4000명, 6월 15만1000명, 7월 16만5000명이 감소했다. 청년층 취업 비중이 높은 도·소매업과 숙박·음식점업, 교육 서비스업에서 취업자 수 감소가 두드러졌다. 2∼7월 도·소매업은 월평균 취업자 수가 -14만8000명, 숙박·음식점업은 -15만명, 교육 서비스업에선 -8만1000명으로 집계됐다.
정동욱 통계청 고용통계과장은 “20대는 기존 일자리를 잃는 경우보다 신규 유입 자체가 막히면서 비경제활동인구로 이동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쉬었음, 구직단념자도 역대 최대
취업 시장이 얼어붙으면서 취업자도 아니고 구직활동을 하는 실업자에도 속하지 못하는 비경제활동인구가 역대 최대 규모로 늘고 있다.
앞에 소개한 패션 MD를 준비 중인 A씨와 방송사 입사를 준비하는 B씨,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C씨, 세무자격증 시험을 공부하는 중인 D씨 모두 비경제활동인구에 속하거나 비경제활동인구로 전환될 가능성이 높다.
지난 7월 비경제활동인구는 1년 전보다 50만2000명이 는 1655만1000명으로 7월을 기준으로 통계 작성을 시작한 1999년 이후 가장 많았다. 지난 4월에는 비경제활동인구가 1699만1000명으로 전년 동월 대비 83만1000명이 늘었다. 통계 작성 이후 전월을 통틀어 가장 많았고 증가폭도 가장 컸다. 비경제활동인구 증가폭도 20대가 압도적이다. 지난달 20대 비경제활동인구는 245만명으로 1년 전보다 8.4% 증가했다. 15∼64세 비경제활동인구 증가율 3.0%에 두 배를 훌쩍 넘기는 수준이다. 30대 비경제활동인구 증가율이 2.7%, 40대는 5.2%, 50대 4.2%, 60대 이상 3.8% 늘었다. 20대 비경제활동인구 증가율은 지난 3월에는 12.2%, 4월에는 13.5%까지 급격히 치솟기도 했다.
활동상태별로는 지난 4월 전체 ‘쉬었음’ 인구가 1년 전보다 43만7000명이 늘어난 240만8000명으로, 증가폭도 통계 작성을 시작한 1999년 이후 전월을 통틀어 역대 최대 규모였다. 지난달 20대 쉬었음 인구는 1년 전보다 6만8000명이 증가한 40만7000명으로 2월부터 7월까지 전 연령대에서 증가폭이 가장 크다.
‘구직단념자’도 지난달 58만으로 7월 기준으로 2014년 통계 작성 이래 최다를 기록했다. 그중 20대가 19만5000명으로 가장 많았다.
쉬었음 인구는 일할 능력은 있지만 별다른 이유 없이 일하지 않는 사람을, 구직단념자는 최근 1년 이내에 구직활동을 한 경험도 있지만 일자리를 찾지 못해 지난 4주간 구직활동을 하지 않은 이들을 뜻한다. 학교나 학원에 가지 않고, 혼자 집이나 도서실에서 취업을 준비하는 ‘취업준비자’도 지난 4월 83만5000명으로 역대 최대를 기록했다.
◆첫 취업 늦으면 10년 이상 영향… 대책 시급
20대 청년층의 취업난은 취업이 1∼2년 늦어지는 문제로 끝나지 않는다. 임금 손실은 물론 경력 손실, 경력 단절 등으로 이어져 생애주기 전반에 영향을 미친다.
공무원을 준비 중인 C씨 사례가 대표적이다. 항공사 근무 경력 5년이 사실상 없어지는 셈이다. C씨는 “항공업계가 모두 어려워서 관련 업계로 이직도 안 되는 상황이라 공무원 공부를 시작했다”며 “작년에 대리로 승진도 했고, 결혼 준비도 해야 하는 중요한 시기에 다시 처음부터 시작해야 하는 상황이 답답하다”고 말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지난 5월 ‘청년 고용의 현황 및 정책제언’ 보고서에서 첫 취직이 1년 늦을 경우 같은 연령의 근로자에 비해 첫 취직 후 10년 동안의 임금이 연평균 4~8% 낮아진다고 밝혔다.
정부도 20대 일자리 대책을 내놓고 있지만 취업을 준비하는 20대에게는 와 닿지 않는다. 채용공고를 보다 보면 한국판 뉴딜 아르바이트같이 단기 일자리들이 많은데, 그런 걸 볼 때마다 오히려 힘이 빠진다는 의견이 많다.
김상봉 한성대 경제학과 교수는 “단순, 반복작업 위주의 디지털 뉴딜 일자리를 두고 ‘AI(인공지능) 눈알 붙이기’라는 지적이 나온다”며 “정부가 재정을 투입해 노인 일자리를 창출하는 방식으로 청년 일자리 문제에 접근해서는 안 된다”고 꼬집었다. 그는 “정부가 청년들이 경력을 쌓을 수 있는 일자리를 만들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신산업을 발굴하고 대학에서는 시장이 필요로 하는 인재를 만들기 위해 중장기적인 접근이 이뤄져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박영준 기자, 이희진·이동수 기자 yj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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