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사회에서 종교가 이토록 많이, 그리고 부정적으로 언급된 적이 또 있었을까. 유례를 찾기 힘든 거대 역병에서 비롯된 대면 예배 논란은 나아가 ‘종교란 무엇인가’란 해묵은 질문을 새삼 끄집어 내었고, 동시에 그에 대한 성찰을 강제하고 있다.
최근 출간된 ‘만들어진 종교’(호시노 세이지 지음, 이예안·이한정 옮김, 글항아리)는 이와 관련한 직접적인 답까진 아니더라도 사유의 실마리를 제공해 준다.
종교 자체를 부정하던 리처드 도킨스의 ‘만들어진 신’(2006)을 연상케 하는 제목과 달리, 이 책은 일본 메이지(明治) 시대를 배경으로 종교가 어떤 경로를 거쳐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했는지를 천착해 나간다. 종교의 본질이나 진위를 다루는 것이 아니다. 거칠게 요약해 ‘종교란 개념이 원래부터 있었던 게 아니다’란 것이 핵심이다.
◆“기독교는 ‘문명의 종교’”
언뜻 들으면 종교가, 그것도 근대에 이르러 만들어졌다는 주장에 고개가 갸웃할 수 있으나 ‘종교(宗敎)’라는 단어 자체가 이를 단적으로 보여준다는 것이 저자의 말이다.
종교가 언제부터 인류와 함께 했는지는 불분명하지만, 적어도 일본에서 이 단어의 기원은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문헌과 사료들은 근대에 이르러 서구 문명의 유입과 함께 들어온 낯선 개념, ‘religion’의 번역어로서 ‘종교’가 등장했음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배경엔 프로테스탄트 기독교를 모델로 한 이해가 있었다. 즉, 기독교와의 접촉에서 현대적 의미의 종교가 비로소 움튼 셈이다.
물론 그 전에도 신도나 불교 등 고유의 전통이 있었고, 이를 설명하는 ‘종지(宗旨)’, ‘종문(宗門)’, ‘법교(法敎)’, ‘교문(敎門)’ 같은 말이 산발적으로 쓰였으나 이는 지금의 종교 개념과 사뭇 다른 것이었다. 종지와 종문 등이 권력과 밀접한 성격의 비언어적 관습행위였다면, 종교는 “서구의 정교분리, 신앙의 자유라는 과제를 받아들여 정치권력과의 거리를 함의한 말”이자 ‘언어에 의해 개념화된 신념 체계’쯤으로 이해됐다.
이때의 종교, 더 구체적으로 기독교는 ‘문명’ 혹은 ‘개화’의 동의어나 다름 없는 것이었다. 전 세계를 호령하는 서구인들의 정신세계를 지배하는 종교라는 인식에 당대의 지식인들은 기독교를 ‘개화의 도구’로 받아들이곤 했다.
여기에 19세기 선교사들의 시각, 이른바 ‘시계의 비유(복잡한 시계가 저절로 만들어질 수 없듯 복잡한 유기체들도 그들을 만들어낸 존재(신)가 있어야 한다는 논리)’ 역시 과학과 기독교를 서로 상충되지 않고 동일선상에서 이해하게 한 배경으로 작용했다.
◆각축전이 빚어낸 ‘종교’ 개념
이처럼 기독교를 문명과 동일시하는 인식은 당연하게도 기존 종교들의 반발을 부를 수밖에 없었다.
19세기 후반 일본에서 나타난 ‘불교 연설’은 이에 대한 일종의 반동이었다. “강의와 설교의 중간”인 그것은 불교 전통에 그다지 관심이 없었던 이들을 포섭하려는 성격이 짙었다. 이는 ‘불교는 몽매한 자를 위한 것’ 따위의 비판에 대한 대항 논리가 대중에 도달하지 못했다는 내부적 위기감이 빚어낸 현상이기도 했다.
비슷한 시기 소개된 다윈의 진화론과 불가지론 역시 기독교가 풀어야할 숙제였다. ‘기독교=문명’, ‘기독교=과학’의 공식이 깨졌기 때문인데, 이때 불교 진영에선 창조설과 진화론의 모순을 지적하며 ‘학문과 정합적인 불교가 더욱 뛰어난 종교’란 논리를 내놓기도 했다.
유일신 종교인 기독교는 또 ‘현실세계의 신’인 천황과의 관계 설정도 그다지 순조롭지 못했다. 1891년 1월 기독교인 우치무라 간조가 천황의 서명이 담긴 교육칙서에 예를 갖추지 않은, 이른바 ‘우치무라 불경사건’은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 사건은 결국 기독교가 충과 효에 반하며 사회 안녕질서를 어지럽힌다는 비판 여론을 불러일으켜 기독교가 궁지에 몰린 계기가 됐다.
결과적으로 불교와의 국지전, 국가주의와의 충돌은 기독교인들로 하여금 더욱 정교한 논리를 내놓게 했으며, 이는 다시 도덕과 종교의 재배치, 더 나아가 종교 개념을 특징짓는 ‘초월성’의 등장을 추동했다. 아울러 종교들끼리 우위를 다투는 과정에서 특정 종교 전통을 넘어 ‘종교’라는 커다란 일반 개념이 존재한다는 인식이 합의되었는데, 서로간 비교를 위해선 당연하게도 어떤 ‘기준’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말하는 것은
저자의 시선은 바로 이 지점에 머무르고 있다. 근대화 시기 이런 과정과 결과가 하나둘 모여 이전까지 모호하게 느껴지던 ‘종교’라는 개념이 조금씩 정교화되고 구체화됐다는 것이다. 이는 동시에 ‘종교’란 것이 단순히 서양으로부터 수동적으로 이식된 게 아니라 당대의 정치·사회적 맥락 속에서 일본적으로 재구성되었음을 은연중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물론 19세기 종교의 의미는 아무래도 지금의 그것과 다를 수밖에 없고, 일본 종교사를 우리 역사에 그대로 대입하는 것도 무리가 있다. 그럼에도 이 책이 의미를 가지는 것은 종교라는 개념이 원래부터 존재했던 것이 아니라 ‘시대에 따라’ 혹은 ‘사회에 따라’ 만들어질 수 있다는 보편적 통찰을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지금 우리 사회 기독교를 중심으로 벌어지는 각종 갈등과 논란, 대립 역시 하나의 단면, 즉 한국적 종교 개념이 만들어지는 과정으로 이해할 수 있다.
이창수 기자 winteroc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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