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인구가 지난해 역사상 처음으로 감소하며 저출산으로 인한 ‘인구 절벽’이 현실화한 가운데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이하 저출산위)가 2019년부터 저출산 해소의 핵심 과제로 꼽히는 사교육비 부담, 청년고용률 등을 챙기지 않고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교육부 등 관련 부처가 자신들의 업무라며 핵심 과제들을 가져가 저출산위의 평가 항목에서 제외된 탓이다. 대신 저출산위는 영유아 수당, 남성 육아휴직자수 증가와 같이 주로 단기적인 경제적 지원 과제에만 집중하고 있다. 이런 기조는 올해부터 향후 5년 간 적용되는 저출산 관련 장기계획에도 적용됐다.
전문가들은 이제라도 저출산 대책의 국가 컨트롤타워인 저출산위가 사교육비 절감을 위한 공교육 정상화, 청년고용과 같은 문제 해결에 적극 관여해야 할 때라고 지적한다.
4일 세계일보 취재를 종합하면 저출산위는 지난달 ‘2019년 중앙행정기관 시행계획 성과평가 결과’를 통해 저출산 관련 핵심성과지표 7개 중 4개만 평가했다. 대통령을 위원장으로 하는 저출산위는 보건복지부 등 7개 부처 장관, 민간위원 17명이 참여하는 대통령 직속 독립기구로 저출산과 고령사회 등 인구 대책을 총괄한다.
성과평가 결과를 보면, 저출산위는 △신혼부부 임대주택 수혜율 △전체 휴직자 중 남성비율 △국공립 등 믿고 맡길 수 있는 어린이집 이용아동 비율 △근로자 1인당 연간 근로시간 등 4가지는 평가하면서 사교육비 부담과 청년고용률(15~29세), 임신유지율은 평가 대상에서 제외했다. 사교육비 부담과 청년고용률 지표는 부처자율과제로 분류됐고, 임신유지율은 적절성 검토에서 탈락했다는 점을 이유로 들었다.
하지만 사교육비 부담과 청년고용률은 출산을 결정할 때 고려하는 직접적인 요소라는 점에서 저출산위가 이런 과제를 집중 관리하지 않는다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비판이 나온다. 관련 부처에서 개별 관리하는 수준으로는 저출산 총괄 대응과 대책 마련에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실제 서울시의회가 2019년 12월 리서치디앤에이(1000명 대상)에 의뢰해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출산이 어려운 이유로 응답자의 49.3%가 ‘교육에 소요되는 높은 비용 부담 때문’이라고 말했고, 44.4%는 ‘임신 출산 육아에 소요되는 높은 비용 부담’을 꼽았다. 사교육 및 등록금 등 교육비에 대한 부담과 안정적인 직장에 대한 불투명한 전망 탓에 출산을 포기하고 있는 셈이다.
사교육비 부담이 늘고 청년고용률이 악화하는 동안 출산율은 급감했다. 사교육비 부담액을 보면 2016년 18조1000억원, 2017년 18조7000억원으로 증가하다 2018년 19조5000억원으로 껑충 뛰었다. 저출산위가 2015년에 제3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을 내놓을 당시 정한 목표(17조원)를 훨씬 초과한 것이다.
청년고용률 역시 2016년 41.7%, 2017년 42.1%, 2018년 42.7%로 소폭 상승하는 데 그쳤다. 2020년 목표치가 48%인 것을 감안하면 청년고용률 역시 달성하기 힘든 셈이다.
이 기간 출생아수는 2016년 40만6000여명에서 2018년 32만6000여명으로 감소했고, 급기야 지난해에는 출생아가 사망자보다 적은 ‘데드크로스’ 현상이 발생했다.
저출산위 관계자는 “2018년부터 저출산 기본계획을 재구조화하면서 해당 과제들을 부처자율과제로 넘긴 것”이라며 “사교육비 같은 경우에는 저출산하고 관련은 있지만 간접적으로 관련이 있는데다 지표 관리도 쉽지 않아 각 부처로 업무가 넘어간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
문제는 사교육비 부담과 청년고용률과 같은 핵심과제들이 정부의 ‘제4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에도 반영되지 않았다는 점이다. 2021년부터 5년 간 적용되는 이 기본계획안을 보면 미래형 교육체계 기반 마련, 청년의 기회 보장을 추상적으로 강조할 뿐 사교육비 부담 경감이나 청년고용률 재고를 위한 구체적인 방안은 포함되지 않았다. 대신 2022년부터 영아수당 지원, 생후 12개월내 부모 모두 3개월 휴직 시 각각 최대 월 300만원 지원과 같이 유아기 양육 부담을 덜어주는 지원책이 주로 담겼다.
전문가들은 임신, 출산과 육아와 관련한 경제적 지원책도 중요하지만 이제는 저출산위가 보다 거시적인 시각에서 각 부처를 총괄해 사교육비 절감이나 청년고용과 같은 과제에서 성과를 내야 한다고 지적한다. 자잘한 단기 지원책이 아니라 교육 경쟁 스트레스를 낮추고, 고용 안정을 위한 복지 체계를 정비하는 등 긴 호흡에서 저출산을 타개할 수 있는 ‘방향’을 제시해야 한다는 것이다.
인구학 전문가인 서울대 보건대학원 조영태 교수는 “저출산 기본계획에 많은 대책이 망라돼 있지만 궁극적으로는 양육과 보육이라는 한 측면만 강조해왔던 것 같다”며 “그런 부분은 보건복지부에서 하게 놔두고 좀 더 큰 틀에서 저출산위가 방향을 잡아주는 게 맞다”고 말했다. 조 교수는 이어 “사람들이 서울과 수도권에 너무 집중돼 있어 아파트 값도 올라가는 등 제한된 자원을 더 많이 나눠 써야 하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다”며 “이런 집중도를 완화하는 정책도 궁극적으로 정부의 저출산 정책이 추구해야 할 방향 중 하나다”고 말했다.
이희경 기자 hjhk38@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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