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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리하면 탄핵 얘기를 못 하잖아"… 김명수·임성근 녹취록 공개 파장

입력 : 2021-02-05 06:00:00 수정 : 2021-02-05 08:1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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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수, 탄핵 언급 부인 하루 만에
“불분명한 기억에 의존해 다르게 답변
실망을 드린 모든 분께 깊은 사과”

판사들 “어떤 사법파동보다 더 심각
당장 옷 벗고 물러나야 할 사안” 충격

김종인 “비굴하게 연명 말라” 사퇴 압박
안철수 “후배 목을 권력에 뇌물로 바쳐”
김명수 대법원장이 4일 오후 서울 서초구 대법원에서 퇴근하고 있다. 뉴스1

김명수 대법원장이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의 법관 탄핵 움직임을 이유로 임성근 부산고법 부장판사의 사표를 반려한 정황이 4일 드러나면서 파문이 확산하고 있다. 사법부 수장이 여당의 눈치를 보며 헌법 원칙인 사법부 독립을 스스로 방기했다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여당이 주도한 임 부장판사에 대한 국회 탄핵소추안은 이날 가결됐다.

임 부장판사의 변호인이 공개한 녹취록에 따르면 김 대법원장은 지난해 5월 22일 임 부장판사와의 면담에서 “툭 까놓고 얘기하면 지금 뭐 (여당에서) 탄핵하자고 저렇게 설치고 있는데 내가 ‘사표 수리했다’하면 국회에서 무슨 얘기를 듣겠냐 말이야”라며 임 부장판사의 사표를 반려했다. 이어 김 대법원장은 “탄핵이라는 얘기를 꺼내지도 못하게 오늘 그냥 (사표를) 수리해버리면 탄핵 얘기를 못 하잖아. 그런 비난을 받는 것은 굉장히 적절하지 않아”라며 “나로서는 여러 영향이랄까 뭐 그걸 생각해야 하잖아. 그중에는 정치적인 상황도 살펴야 되고…”라고 말했다.

당시는 더불어민주당에서 판사 출신인 이탄희·이수진 의원을 중심으로 법관 탄핵 필요성이 거론되던 시기다.

대법원은 전날 김 대법원장이 여당의 탄핵 움직임을 이유로 사표를 수리하지 않았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탄핵 문제로 사표를 수리할 수 없다는 취지의 말을 한 사실이 없다’고 국회와 언론에 공식 답변했다. 하지만 이날 녹취록 공개로 김 대법원장의 발언은 허위로 드러났다. 그러자 김 대법원장은 “언론에 공개된 녹음자료를 토대로 기억을 되짚어 보니, 임 부장판사와의 면담 과정에서 ‘정기인사 시점이 아닌 중도에 사직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적절하지 않다’는 판단 하에 녹음자료에서와 같은 내용을 말한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고 해명했다. 이어 “약 9개월 전의 불분명한 기억에 의존해 (사실과) 다르게 답변한 것에 대해 송구하다”고 사과했다.

 

서울지역 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대법원장이 권력 눈치를 보느라 탄핵 가능성까지 언급하며 사표 수리를 거부한 데다 국회와 국민, 법원 구성원들을 상대로 자기는 그런 말 한 적 없다고 거짓말까지 하는 게 말이 되냐”며 “사법부의 신뢰와 권위가 땅에 떨어지게 한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이라고 비판했다. 녹취록 공개로 김 대법원장이 사실상 거짓말을 한 것으로 드러나자 야당을 중심으로 김 대법원장의 사퇴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한편 국회는 이날 임 부장판사의 탄핵소추안을 총 투표 수 288표 중 찬성 179표, 반대 102표, 기권 3표, 무효 4표로 가결 처리했다. 현직 법관 탄핵소추안 의결은 헌정 사상 처음이다. 임 부장판사의 탄핵 여부는 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가 최종 판단한다. 곧바로 민주당 박주민, 이탄희 의원이 제출한 임 부장판사 탄핵소추의결서를 접수한 헌재는 조만간 변론기일을 잡아 임 부장판사 측 의견을 들을 예정이다.

 

임 부장판사 측은 “헌재 탄핵심판 과정에서 탄핵이 될 만한 행위가 없었음을 충분히 설명하겠다”고 덧붙였다.

 

◆리더십 큰 타격… 입지 더욱 좁아져 

 

사법부 수장으로서 김명수 대법원장의 리더십이 위기를 맞고 있다.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할 대법원장이 여당 눈치를 본 듯한 발언이 공개된 데다가 ‘탄핵을 이유로 사표를 반려한 적 없다’고 한 해명이 거짓말로 드러난 것이다.

 

법원 내부에서도 김 대법원장 처신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다. 김 대법원장이 자진사퇴해야 한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정치권의 공세도 격해질 전망이어서 김 대법원장의 앞날은 어둡기만 하다.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모임(한변) 회원들이 4일 오전 서울 서초구 대법원 앞에서 김명수 대법원장의 사퇴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충격받은 현직 법관들 “옷 벗고 물러나야”

 

4일 녹취록이 공개된 뒤 법원 판사들은 그야말로 충격에 휩싸였다. 정치적 중립을 지키지 않는 사법부 수장의 발언에 적잖은 판사들이 놀란 모습이다.

 

재경지법의 한 부장판사는 “(대법원장이) 옷 벗고 물러나야 할 사안”이라며 “큰 병에 걸려 건강문제로 사퇴하겠다는 법관에게 죽으란 얘기를 돌려서 한 것처럼 들린다”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김 대법원장은 취임 이후 사법부 개혁을 제대로 하기는커녕 사법부가 외풍에 흔들리는 것을 방관하고 정부 여당을 지지하는 듯한 인상으로 법원 안팎에 실망감을 많이 안겼다”며 “급기야 아무렇지 않게 거짓말까지 해서 국민의 사법 불신을 부채질한 책임이 크다”고 맹비난했다.

 

다른 부장판사도 “지금까지 본 어떤 사법파동보다 더 심각한 사안”이라며 충격을 감추지 못했다.

 

법조계에서도 김 대법원장이 사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부장판사 출신의 여상원 변호사는 “법관이 사표를 제출하면 법관의 건강 상태, 인원의 적정 배치 등을 고려해 판단하는 것이지 정치적 고려를 가지고 사표 수리 여부를 결정하는 게 말이 안 된다”며 “자진사퇴하는 게 옳다”고 밝혔다.

 

이날 오후 서면으로 “송구하다”고 사과한 김 대법원장은 퇴근길에 취재진과 만나 “이유야 어찌 됐든 임 부장과 실망을 드린 모든 분께 깊은 사과와 죄송하다는 말씀드린다”며 “기억이 희미했고 적지 않은 대화를 나눴기 때문에 제대로 기억하지 못했다”고 해명했다.

 

◆임명 때부터 ‘삐걱’…입지 더욱 좁아져

 

문재인정부 출범 직후인 2017년 9월부터 약 3년5개월째 사법부를 이끌어 온 김 대법원장은 그간 여권과 야권 모두로부터 비판을 받아왔다. 야권은 김 대법원장이 법원 내 대표적 진보 성향 모임으로 평가받는 ‘우리법연구회’ 출신임을 들어 정치적 중립과 거리가 멀다고 지적해 왔다. 여권은 여권대로 김 대법원장이 제대로 된 사법개혁을 추진하지 않는다면서 날을 세웠다.

 

김 대법원장은 지명될 때부터 논란이 많았다. 당시 청와대가 개혁 성향이 강한 박시환 전 대법관을 대법원장 자리에 앉히고 싶어 했다는 얘기가 파다했다. 박 전 대법관에 이어 하마평이 돌았던 전수안 전 대법관마저 고사한 끝에 김 대법원장이 낙점됐다. 당시 그는 대법관이나 고등법원장보다 낮은 춘천지방법원장이었다.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지법원장이 바로 대법원장으로 가서 (법조계 내에) 아쉬움이 많았다”고 전했다. 검찰 출신의 다른 변호사도 “김 원장이 지닌 콘텐츠 자체가 너무 빈약했다”며 “애초 ‘대법원장감’이 아니었다고들 수군거린다”고 비판했다. 이번 사태로 김 대법원장은 더욱 코너로 몰리게 됐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4일 국회 본회의에서 '법관 임성근 탄핵소추안'이 가결되자 "사법장악 규탄한다, 김명수를 탄핵하라"를 외치며 항의하고 있다. 연합뉴스

◆야, “후배를 ‘탄핵 굴’로 떠밀어” 공세 예고

 

국민의힘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도 쓴소리를 퍼부었다. 그는 김 대법원장을 향해 “후배 법관들을 정치적 외풍으로부터 보호해야 될 책임이 있는 대법원장이 취임 후 정권의 하수인 노릇을 하면서 무려 100명 넘는 판사를 검찰 조사로 넘겼고, 사표 수리를 거부하며 후배를 ‘탄핵 굴’로 떠밀기까지 했다”고 비난했다. 이어 “김 대법원장은 비굴한 모습으로 연명하지 말고 스스로 되돌아보며 올바른 선택을 하라”고 사퇴를 촉구했다. 주호영 원내대표도 “김 대법원장은 오욕의 이름을 사법사에 남기지 말고 본인이 얼마나 부끄러운 일인지 되돌아보고 거취를 결정하길 바란다”고 가세했다.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는 “사법부 스스로가 권력의 노예가 되기를 자청한 것이나 다름없다”며 “여당의 탄핵 추진을 염두에 두고 사표를 수리하지 않은 것이 사실이라면 후배의 목을 권력에 뇌물로 바친 것”이라고 비난했다.

 

민주당은 김 대법원장과 관련해 별다른 입장을 내놓지 않았다. 다만 김태년 원내대표가 이날 정책조정회의에서 “민주당은 헌법을 위반한 임 판사에 대한 탄핵 표결로 헌법이 국회에 부여한 책임을 다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희진·배민영·곽은산 기자 heejin@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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