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김명곤 "대통령이 BTS가 아니라 무명 배우라도 오영수 같은 사람 예우해줘야"

관련이슈 디지털기획

입력 : 2022-06-04 20:00:00 수정 : 2022-06-05 15:16:26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김명곤(70) 전 문화관광부 장관은 천생 문화예술인이다. 1993년 임권택 감독 판소리 영화 ‘서편제’ 각본과 주연을 맡아 유명해진 그는 김대중·노무현정부 시절 민간인 출신 첫 국립극장장(2000.1∼2005.12)과 문화관광부 장관(2006.3∼2007.5)을 지냈다. 이후 전주세계소리축제 조직위원장, 세종문화회관·마포문화재단 이사장 등을 역임했다. 그러면서도 현역 예술인으로 연극·영화·방송 드라마 등 현장에서 연출가와 극작가, 배우로 활동 중이어서 누구보다 문화예술계 속사정에 밝고 그만큼 염려하는 마음도 크다. 얼마 전 인터뷰에서도 “윤석열정부가 문화예술계 통합에 힘써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인터뷰 당시 김 전 장관이 풀어 놓았던 이야기를 정리해 시리즈로 소개한다.<관련기사 “예술은 창조·풍자가 본질… 자기 검열·정치 종속화 막아야” http://www.segye.com/newsView/20220517517483>

 

김명곤 전 문화부장관.  남제현 선임기자

<3회> “트로트나 영화배우 잘 하려고 판소리나 연극하려는 세태 문제” 

 

─지금 한류(문화예술 콘텐츠) 경쟁력은 어떻다고 보나.

 

“뭐랄까, (우리나라가 콘텐츠를 다루는) 기술적인 부분이라든가 표현 기법들은 굉장한 수준에 올랐다. 예술과 기술이란 측면에서 봤을 때 기술적인 부분은 굉장히 선진국형으로 가고 있고, 콘텐츠 예술의 어떤 본질적인 문제에 대해서도 지금 세대가 많이 새로운 예술 흐름을 잡아가고 있는 것은 아주 좋은 일이다. 다만, 우리가 깊이 있게 고민해야 되는 부분은 우리만의 정체성 문제다. 시대(정신)에 관한 문제라든가 약간 좀 거대 담론이라고 할까. 당장은 인기나 돈이 안 되더라도 이런 것을 깊이 파는 예술 흐름도 있어야 되고, 그런 쪽 가치를 인정하면서 지원하는 것도 필요하다.  

 

왜냐하면 TV고 영화고 일단 외국에서 상 받았다고 하면 알아주잖나. 반대로 그러지 못하면 안 알아준다. 연극계도 마찬가지. 예전에는 ‘가난해도 예술을 한다’는 자부심으로 연극 배우들이 평생을 (연극에) 몸담았다. 그러다 영화 (출연)할 기회가 생기면 (동료 배우들에게) ‘죄송합니다’하고 그랬다. 그런데 지금은 연극이 영화(출연)를 하기 위해 거쳐가는 (것처럼 느껴져). 연극하고 있는 사람들은 마치 영화(출연을) 못하는 못난 사람들인 것처럼 (여기고). 이러니까 예술가로서 자부심과 자존심 이런 것들이 깡그리 짓밟히는 실정인 거라. 대중의 인기를 얻거나 어떤 상을 받는다거나 돈을 (많이) 버는 것은 어떤 예술을 추구하는 과정에서 따라 오는 부수적 결과물인데 지금은 (세태가) 이거자체를 (예술을 하는) 본질로 여기는 게 문제다.”

 

김명곤 전 문화부장관 2022.5.12 남제현 선임기자

─실례를 든다면.

 

“얼마 전 (내가 아는) 국악과 교수가 한탄을 하더라. 판소리 전공을 하러 온 학생이 ‘선생님 이거(판소리) 하면 트로트 잘할 수 있나요’라고 했단다. 요즘 (인기를 끈) 트로트 오디션에 판소리 하는 친구들이 막 나가니까. 판소리도 이제는 트로트 (가수) 하기 위해 거치는 수단이 되고, 연극은 영화(배우)를 하기 위한 수단이 되고 있는데 그렇게 돼선 안 된단 말이다. 판소리 본질을 위해선 판소리 자체의 예술성을 깊이 파고드는 인재가 필요한 거고, 연극·그림(미술)·문학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지금처럼 전부 돈벌이가 되고 인기 있는 것만 다 하면(몰리면) 이런 거(예술의 본질이나 정체성)는 없어진다.”

 

─어떻게 해야 할까.

 

“기초예술에 대한 사회적 인식이 달라져야 하고 어느 정도 예우해주는 문화가 조성돼야 한다. 예를 들면 러시아를 비롯해 루마니아 등 동구(동유럽)는 연극, 무용 같은 기초 공연 예술에 대한 뿌리가 굉장히 깊어서 영화보다 연극 배우에 대한 사회적 예우 기준이 높다. 국립극장장할 때 러시아 볼쇼이 극장 극장장을 만난 적 있다. 볼쇼이 극장장의  자부심이 대단했는데, 주로 연출가나 예술가가 극장장을 맡고 공무원은 ‘제2 행정 극장장’(을 맡는다고). 볼쇼이 극장장이 (당시 러시아) 의전 서열 14위라고 하더라. 

 

김명곤 전 문화부장관 2022.5.12 남제현 선임기자

또 영국 셰익스피어 극장에서 최초로 귀족이 된 분이, 세계적으로 셰익스피어 전문가(연출·배우)로 유명한 로렌스 올리비에(1907∼1989)다. 영국이든 프랑스든 그러니까 문화예술인 중 정말 뛰어난 업적을 가진 사람은 엄청난 예우를 해준다. 우리나라는 겨우 하는 게 인간문화재 정도인데, 그 제도 역시 지금 얼마나 창피한지 모른다. (이 제도를 운영하고 관리하는) 문화재청 관료들이 사람들(예술인들) 알기를 참…비참한 현실이다. (전통·기초)문화예술인에 대한 지위와 사회적 인식이 (당사자들이) 좀 자부심을 가지고 계속 활동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하는데 (우린 그렇지 못해 안타깝다). 영국에선 지금도 셰익스피어 배우다, 국립극단 배우다 하면 어느 세계적 배우, 할리우드 스타에 버금가는 예술적 지위를 주거든.” 

 

─젊은 예술가를 위한 지원사업도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적잖은데.

 

“지원 사업 분야를 보면, 신진 젊은 예술가들의 창의성 제고 등을 위해 광범위하게 지원 하려는 것 같은데 아주 좋다고 본다. 어차피 예술계라는 데가 무슨 돈을 바라고 기업에 취직하는 곳이 아니니 젊은 예술가들도 예술은 고난과 역경 속에서 해야하는 걸 감안해 창의성 가지고 도전해야 한다. 그런 젊은 예술가는 지금도 많이 나오는 것 같은데, (더 신경써줘야 할 사람들은) 수십년 동안 그 험난한 시절을 이겨내고 한 분야에서 꾸준히 예술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에 대해선 정말 국가적으로 예우하는 문화가 필요하다. 예를 들면 대통령이 BTS(방탄소년단) 불러다 막 이러는 게(과찬하고 격려하는 게) 아니라 정말 연극 무대에서 40∼50년가량 꾸준히 해온 배우를 예우해줘야 한다. 오영수 같은 사람은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으로 유명해지지 않았더라도 예우해줘야 된다는 얘기다. 그런 사람은 정말 무명배우라고 해도 대통령이 모셔다가 ‘훌륭하십니다’라고 해줘야 한다.”


이강은 기자 kelee@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조여정, 순백 드레스 자태…과감한 어깨라인
  • 조여정, 순백 드레스 자태…과감한 어깨라인
  • 전혜빈 '매력적인 미소'
  • 혜리 '겨울 여신 등장'
  • 권은비 '매력적인 손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