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말∼8월 초 국내 여행을 가려고 했던 대기업 직장인 정모(30) 씨는 최근 호텔 예약 사이트에서 가격표를 보고 휴가를 포기했다.
연합뉴스에 따르면 정씨는 "강릉이나 부산에 있는 조금 이름난 리조트나 호텔은 1박에 수십만 원씩 하는데 도저히 감당이 안 될 것 같다"며 "환율 때문에 해외여행도 돈이 많이 들어 포기했는데 국내 여행도 물가가 너무 올라서 마땅히 갈 곳이 없다"고 푸념했다.
정씨 사례처럼 유행에 민감한 '20·30세대'마저 최근 이어진 고물가·고환율·고금리의 '3고' 여파로 올해 휴가철에는 집에 머물기를 택하는 경우가 늘고 있다.
반면 유럽·미국 등지로 향하는 값비싼 해외여행 기세는 꺾이지 않고, 고급 식당은 예약이 일찌감치 마감되는 등 양극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직장인 이유정(30) 씨는 19일 "물가도 비싸고 금리도 올라서 지출을 줄여야 하는데 다시 코로나까지 확산하는 추세를 보니 그냥 휴가를 포기할까 싶은 생각이 든다"며 "코로나 내내 국내 여행만 많이 다녀서 해외로 가고 싶었는데 돈이며 상황적으로 여러모로 그럴 여유가 없다"고 털어놨다.
직장인 김모(26) 씨도 "물가가 너무 올라서 생활비만으로도 돈이 다 나가는데 휴가까지 갈 여유가 없다"며 "가족들과 회의 끝에 여행은 포기하기로 결론을 내렸다"고 했다.
그러면서 "보통 여행을 가면 대부분 지출이 식비에 몰리는데, 여유 없는 상황에서 식비까지 또 대거 지출할 것을 생각하니 가족들이 다들 가지 말자고 하더라"라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치솟는 물가 탓에 휴가를 아예 포기하는 '휴포자'가 속출하는데도 상대적으로 비용이 많이 드는 해외여행 상품 예약률은 별 변화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코로나 이전과 비교해 여행수요 회복 수준이 30% 안팎인 상황에서 비싼 돈을 내고서라도 미주·유럽 노선 등으로 떠나려는 수요는 늘 있다는 게 업계의 설명이다.
국내 한 대형 여행사 관계자는 "예약 현황을 매일 체크하는데 별다른 변동이 없고 회복세가 꺾이거나 하진 않는다"며 "고물가·고환율 등은 이미 예견돼왔던 요소라 별다른 영향은 없다"고 말했다.
고물가·고금리 시대 양극화 현상은 외식 분야에서도 나타난다. 마포구에서 혼자 사는 백모(35) 씨는 가급적 집밥만 해 먹으며 허리띠를 졸라매고 있는데,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젊은 층에서 인기를 끄는 호텔 빙수 사진이 올라오면 허탈함을 느낀다고 했다.
백씨는 "빙수 한 그릇에 8만원이 넘는 돈을 쓰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요즘 힘든 건 나뿐인가 싶다"며 쓴웃음을 지었다. 이 빙수는 지난해보다 2만원 정도 가격이 올랐는데도 매장 대기 시간이 평일에도 1시간이 넘는 일이 비일비재하다는 게 업체 측 설명이다.
유명 셰프가 운영하는 강남구 청담동의 한 스시 오마카세(주방장 특선요리) 전문 식당은 이번 토요일(23일) 예약이 이미 꽉 차 있었다. 이 음식점의 저녁 메뉴 가격은 1인당 20만원에 달한다.
30대 직원 이모 씨는 "주말의 경우엔 1∼2주 전에 연락을 줘야 예약이 가능하다"며 "다음 달 예약을 한 번에 오픈하는데 토요일 예약은 아무래도 빨리 차는 편"이라고 전했다.
1인당 저녁 식사 가격이 19만∼27만원씩 하는 또 다른 청담동의 스시 오마카세도 당장 평일과 주말 예약이 모두 어려운 상황이었다.
직장인 강민지(34) 씨는 "나랑 나이도 비슷한 또래들이 한 끼에 수십만원씩 쓴다는 소릴 들으면 뭐 하는 사람들인지 궁금하다"며 "딴 세상 얘기인 것 같다"고 했다.
일각에선 미래 불확실성이 커지는 가운데 저축보다 당장의 만족을 위한 소비에 집중하며 '욜로'(YOLO)를 외치던 청년들 사이에서도 소비 성향이 분화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이명진 고려대 사회학과 교수는 "경제 상황이 많이 어려워져서 자산이 상당히 있는 사람들 아니고는 힘든 상태"라며 "세대 특성보다도 거시 경제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풀이된다"고 했다.
이은희 인하대 소비자학과 교수는 "젊은 세대가 자산, 임금에 있어 안정되지 않은 상황에서 그동안은 '욜로', '플렉스(felx·소비를 과시하는 것)' 문화에 익숙해져 있었는데, 현재 상황을 계기로 안정적으로 미래를 준비하려는 움직임을 보인다는 점은 긍정적"이라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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