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북 청주시에서 747번 버스를 몰던 이모(58)씨가 갑작스런 폭우로 인해 평소 운행 노선이 아닌 흥덕구 오송읍 궁평2지하차도로 우회 진입한 것은 지난 15일 오전 8시30분쯤이었다. 그것이 이씨의 마지막 운전이 됐다. 성실한 직장인이던 그는 일터로 향하는 다른 직장인들의 출근길을 돕던 길이었다.
17일 주변인에 따르면 이씨는 평생을 운전으로 생계를 이어 온 베테랑 운전사였다. 버스기사로 일하기 전에도 화물차나 택시 등을 몰았다. 모범운전으로 수상까지 할 만큼 운전 실력과 성실함을 인정받았다. 사고 당일인 15일에도 궂은 날씨에 운전대를 잡았다. 이씨는 기존 노선인 궁평1지하차도가 통제되자 2지하차도로 방향을 틀었다. 지하차도에 들어서 거의 다 빠져나올 때쯤 순식간에 물이 불어났고 일부 승객은 빠져나왔지만 끝내 남은 승객과 이씨는 세찬 물살에 화를 피하지 못했다. 대형버스가 밀려날 정도로 물살은 거셌다. 이씨의 시신은 17일 오전 1시25분쯤 발견됐다.
이날 청주시 청주의료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이씨 빈소는 오전부터 가족과 운수회사 동료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이범석 청주시장과 시 공무원들도 방문했으나 유족 사이에서 언성이 높아지기도 했다.
가까이에서 이씨를 봐 온 이들은 ‘절대 버스를 혼자서는 빠져나오지 않을 사람’이라고 입을 모았다. 이씨와 한동네에서 나고 자라 막역한 사이라는 최모(51)씨는 “구조자 인터뷰 등을 보면 물이 차오르자 창을 깨고 헤엄쳐서라도 나가라고 한 것 같다”며 “지하차도가 웅덩이처럼 가운데가 깊어 평소 다닐 때도 ‘여기 물이 차면 어떡하지’라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주변이 농경지인 궁평2지하차도는 미호강 물이 넘칠 경우 따로 빠질 곳이 없어 상대적으로 낮은 차도 내로 물이 찰 수밖에 없는 구조다. 지하차도가 ‘물 저장고’가 되는 시간은 채 5분도 걸리지 않았다.
최씨는 80대 후반인 이씨 모친이 받을 충격을 우려해 가족들이 사망 소식을 아직 숨기고 있다고 전했다. 이씨 친형은 혹시 모를 희망에 실종 상태였던 전날까지도 이씨 휴대전화로 세 번이나 전화를 걸어 봤다. 최씨는 거듭 “각자 삶을 살던 사람들이 편리성을 위해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한 곳에서 사망했다”며 “각 책임자는 잘못과 책임을 인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앞서 이날 오전 6시20분쯤에는 청주시 하나병원 장례식장에서 이번 사고로 숨진 초등학교 교사 김모(30)씨의 발인이 진행됐다. 또다시 장대비가 내렸지만 유가족 중 10여명은 우산도 쓰지 않고 장례식장을 빠져나왔다. 비슷한 시각 사고 현장에서는 13번째 희생자 최모(23)씨가 발견됐다. 청주시 하나병원 응급실 앞에서 구조 소식을 기다리던 최씨 가족은 오전 7시5분쯤 시신이 이송되자 참았던 눈물을 터뜨렸다. 사흘째 배수 작업과 함께 실종자 수색 작업이 병행됐으나 이날 낮까지 추가 실종자는 발견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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