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사용금지 계도 종료 앞두고
“자영업 비용 부담 덜자” 규제 철회
식당·카페 종이컵 ‘자발적 금지’
플라스틱 빨대·비닐봉투도 유예
4년 추진한 감축, 대안 없이 폐기
환경단체 “사실상 규제포기” 비판
작은 포장마차에서 붕어빵과 어묵을 팔고 있는 A씨는 이번 겨울부터 어묵을 팔지 않을 예정이다. 24일부터 종이컵에 어묵 국물을 담아 판매하면 과태료가 부과되기 때문이다. 포장마차에서 다회용컵을 세척할 여력이 안 되는 A씨는 어묵 장사는 포기하고 붕어빵만 판매할 생각이다.
카페를 운영하는 B씨는 플라스틱 빨대를 종이 빨대로 바꾼 뒤부터 고객들의 항의를 받고 있다. 빨대 때문에 음료 맛이 이상해졌다는 이유에서다. B씨는 환경보호를 위해 플라스틱 빨대 사용을 금지하는 취지는 이해하지만, 고객 불만이 크고 가격도 비싼 종이 빨대를 사용하는 게 부담이다.
하지만 A씨와 B씨 모두 이러한 부담을 덜게 됐다. 정부가 종이컵과 플라스틱 빨대 사용 금지 조처 철회 방침을 밝혀서다. 자영업자·소상공인들은 정부의 이번 조치로 “한시름 덜었다”며 환영 입장을 나타냈지만 정부가 그간의 “일회용품 사용량 감축 기조를 뒤집었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나온다. 내년 4월 총선용 선심성 정책이라는 지적도 있다.
환경부는 7일 식당, 카페 등 식품접객업과 집단급식소에서 운영해 온 일회용 종이컵 사용 규제를 철회한다고 밝혔다. 이로써 플라스틱 빨대와 비닐봉투 사용 금지 조처의 계도기간을 사실상 무기한 연장했다.
종이컵과 플라스틱 빨대 사용은 지난해 11월24일 시행된 일회용품 추가 규제 중 하나로 1년의 계도기간이 부여됐다. 그러나 환경부가 계도기간 만료를 앞두고 기존 규제 철회 방침을 발표한 것이다.
임상준 환경부 차관은 이날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브리핑에서 “고물가·고금리 등 어려운 경제 상황으로 고통을 겪고 있는 소상공인과 자영업자에게 규제로 무거운 짐을 지우는 건 정부의 도리가 아니다”라며 “과태료 부과보다는 (일회용품 줄이기를) 생활문화로 정착시키는 데 주력하겠다”고 밝혔다.
환경부는 종이컵 사용 금지 규제를 철회하는 대신 다회용컵 사용 권고와 재활용에 집중하겠다는 입장이다. 일회용품 줄이기에 동참하는 매장에는 다회용컵, 식기세척기 등 필요한 비용을 지원할 방침이다. 임 차관은 “종이컵 사용 금지로 매장에선 다회용컵을 세척할 인력을 추가로 고용하거나 세척 시설을 설치해야 하는 부담이 늘었다”며 “종이컵을 규제하는 나라는 우리나라가 유일하다”고 설명했다.
플라스틱 빨대 사용 규제는 연기됐다. 플라스틱 빨대 사용이 금지된 이후 커피전문점 등을 운영하는 사업자 측은 종이 빨대 같은 대체품을 사용했지만 음료 맛을 떨어뜨려 소비자 불편을 키웠다고 토로해 왔다. 이에 환경부는 대체품 품질이 개선되고 가격이 안정될 수 있도록 계도기간을 연장한다고 전했다.
반면 비닐봉투는 편의점 등에서 일회용 비닐봉투를 거의 쓰지 않았다며 계도기간을 연장했다. 2023년 상반기 사용된 봉투 중 70%가 생분해성 봉투였기에 단속보다는 대체품 사용 생활문화 정착에 주력한다는 것이다.
정부의 이러한 방침에 소상공인연합회는 환영 입장을 밝혔다. 소공연은 이날 입장문에서 “소상공인 부담을 덜어 줄 바람직한 결정”이라며 “소상공인도 환경보호와 지속 가능한 발전을 중요하게 생각하지만 현시점에서 일회용품 규제는 필요 기반이 전혀 구축돼 있지 않아 소상공인의 애로가 컸다”고 환영했다.
하지만 환경부가 일회용품 규제를 사실상 포기했다는 비판도 나온다. 환경부는 2019년 11월부터 식당 내 종이컵 사용 금지 등 일회용품 규제 방침을 밝혔는데 지난 4년 동안 구체적인 대안 제시 없이 ‘규제 완화’ 방침만 밝혔기 때문이다. 실제 환경부는 종이컵 재활용률을 높이기 위해 ‘정교한 시스템’을 마련한다고 했지만 구체적인 방법은 제시하지 않았다. 내년 4월 총선을 고려한 선심성 정책이라는 지적도 있다. 내년에 있을 총선을 생각해 소상공인 부담을 줄이는 내용을 발표한 것 아니냐는 것이다.
김나라 그린피스 캠페이너는 “종이컵은 플라스틱 코팅이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고 빨대와 비닐봉투에 대해서도 무한 계도기간을 줘 사실상 플라스틱 규제를 포기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환경부가 지난 1년 동안 소상공인을 지원해 제도를 안착시키는 대신 일회용품 규제를 사실상 포기하는 쉬운 방법을 택했다”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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