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설치 논의는 김영삼 정부 시절인 1996년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검찰의 정치적 중립성과 검찰 수사의 공정성을 못 믿겠다는 사람들이 권력으로부터 독립한 수사기관 신설을 요구했다. 이후 김대중, 노무현 정부 시절에도 공수처 도입이 비중있게 논의되었으나 입법으로 이어지진 않았다. 보수 성향의 이명박, 박근혜 정부는 ‘검찰이면 충분하다’고 여겼는지 공수처에 부정적인 입장을 확고히 했다. 그러다가 2017년 검찰 개혁을 핵심 공약으로 내세운 문재인 정부가 출범하며 공수처 창설이 가시화했다.
21대 총선을 한 해 앞둔 2019년 여야가 공수처 설치를 놓고 정면 충돌했다.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공수처 신설 입법을 밀어붙였고 야당인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은 결사 저지를 선언했다. 의원들끼리 서로 다투던 중 폭력 사태까지 벌어질 정도였다. 한국당을 제외한 야당 일부가 여당에 동조하며 2019년 12월30일 공수처 법안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분이 덜 풀린 한국당 의원들은 “공수처는 위헌 기관”이라며 헌법재판소에 헌법소원까지 냈다. 2021년 헌재가 “공수처법은 합헌”이라고 결정하며 비로소 논란이 잦아들었다.
우여곡절 끝에 출범한 공수처는 올해 1월로 창립 3주년을 맞았다. 이 기간 수사를 통해 직접 기소한 사건은 3건뿐인데 그중 2건이 1심에서 무죄가 선고됐다. 법원에 청구한 구속영장의 발부율은 0%다. 이 기관을 새로 만들려고 지금의 야당 의원들이 쏟아부은 노력이나 거의 극한에 달했던 여아 정쟁 등을 감안하면 용두사미가 아닐 수 없다. 얼마 전 3년 임기를 마치고 물러난 공수처의 전직 처장과 차장은 퇴직하자마자 변호사 개업을 해 구설에 올랐다. 후임 처장과 차장은 아예 정해지지도 않아 부장검사가 그 대행을 하는 중이다.
좀처럼 존재감이 없던 공수처가 요즘 언론의 조명을 한몸에 받고 있다. 이종섭 주(駐)호주 대사 때문이다. 이 대사는 국방부 장관 시절 해병대 병사의 순직 원인 조사에 외압을 행사했다는 의혹으로 공수처에 고발됐다. 출국금지 상태에서 대사 임명을 받고 출금이 일시 해제된 뒤 현지에 부임한 것이 야당의 공세 빌미가 됐다. 최근 귀국한 이 대사가 “빨리 조사해달라”고 하자 공수처는 22일 “소환조사는 당분간 어렵다”고 밝혔다. 수사 준비가 거의 안 돼 있음을 자인한 셈이다. 커진 존재감에 제대로 부응하지 못하는 공수처가 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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