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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속'을 채우자] 1부 통합의 지혜 ② 남남 갈등의 진앙 이념갈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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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3-02-19 18:29:31 수정 : 2013-02-19 18:29: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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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혁간 선의의 경쟁 대신 선악대결… 중도층 확대가 해법
양분된 이념에 사회전반 충돌…갈등 비용 GDP의 27% 달해
분단상황 맞물려 서로 적대적…소양교육 통해 균형 잡아가야
#회사원 이모(38)씨는 상식에 기반한 ‘중도 사회’를 지향한다. 굳이 이념적 성향이 ‘진보냐 보수냐’라는 질문을 받으면 진보에 가깝다고 답한다. 그는 새누리당 박근혜 후보의 승리로 끝난 지난해 대선 직후 곤욕을 치렀다. 대학 선후배와 친구 등 가까운 주변 사람 상당수한테서 “(꼴통)보수도 아닌데 왜 박근혜를 찍었냐”는 힐난이 쏟아져서다. 이씨는 “총선 때와 전혀 달라진 게 없이 야권단일화에 매달리고 ‘정권심판’만 외치는 민주통합당과 문재인 후보에 대한 실망감이 커 박 후보를 찍었을 뿐”이라며 “나름대로 고심한 선택을 이념적으로 재단하고 적대시하는 모습들이 안타까웠다”고 했다.

#삼성경제연구소는 2009년 말 낯설면서도 흥미로운 연구결과를 발표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7개 회원국을 대상으로 ‘사회갈등지수’를 산출한 것인데 우리나라는 0.71로 터키와 폴란드, 슬로바키아에 이어 네 번째로 높았다.

OECD 평균은 0.44였고, 지수가 가장 낮은 덴마크는 0.24로 한국의 3분의 1에 그쳤다. 연구소에 따르면 반대 집단에 대한 배려와 관용이 부족한 사회, 갈등을 조정하기보다 양산하는 정치 등으로 우리나라의 사회갈등 비용은 해마다 국내총생산(GDP)의 27%에 달한다. 매년 300조원에 가까운 돈이 낭비되고 있다는 얘기다.

흔히 ‘보수’와 ‘진보’로 갈린 우리 사회의 이념 갈등은 사회갈등의 핵심 원인으로 꼽힌다. 극단적인 이념대결 양상이 세대·지역차이 등과 엮이며 ‘남남갈등’의 전선을 넓히고 있기 때문이다. 양분된 이념이 북한관련 문제뿐 아니라 선거를 비롯한 정치와 경제·복지·환경정책, 한·미관계 등 다양한 영역에서 충돌하는 양상이다. 전문가들은 ‘선의의 경쟁’보다 ‘선악 대결’로 치닫기 일쑤인 보·혁갈등을 치유하지 못하면 사회통합은 요원하다고 입을 모은다. 

◆이념갈등은 남남갈등의 ‘진앙’


이념 자체는 이성적 차원에서 한 사회의 미래 가치에 대한 방향성을 정하는 데 매우 중요하다. 일반적으로 보수는 ‘작은 정부와 성장’을 중시하며 국가 개입의 최소화를 주장한다. 따라서 헌법에 기반한 법치주의와 개인의 책임을 강조한다. 반면 진보는 사회적 약자 보호를 위한 국가 개입과 공동 이익 추구를 위해 ‘큰 정부와 분배’를 선호한다. 특히 자유민주주의와 다원주의가 성숙한 사회일수록 보수, 진보를 비롯해 다양한 이념이 혼재하고 부딪치면서 발전, 성장해가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해방 전후 극심한 좌·우파 대립과 6·25전쟁, 남북분단 상황을 겪으며 이념에 대한 인식이 뒤틀려졌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19일 통화에서 “건강한 사회일수록 이념적 스펙트럼이 다양하고 이념논쟁을 활발하게 벌인다”며 “하지만 우리의 경우 분단 상황이라는 특수성과 맞물려 이념을 감성화하고 이념성향이 다른 상대를 적대적으로 보는 게 문제”라고 지적했다. 한국 사회에서는 이념 차이가 합리적이고 생산적인 논쟁의 장을 만들지 못한 채 ‘편과 적’을 가르는 기준으로 변질됐다는 것이다. 여기에 정략적 이해까지 개입하면서 보혁갈등은 남남갈등의 진앙이 됐다.

대북 인도적 지원이 ‘보수정권’인 김영삼 정부 때 본격화했지만 ‘진보정권’인 김대중·노무현 정부에서 남남갈등의 기폭제로 작용한 게 대표적이다. 당시 ‘햇볕정책’을 앞세운 진보정권의 대북포용정책에 대해 한나라당(현 새누리당)과 보수진영은 “대북 퍼주기를 중단하라”며 이를 갈았다. 이우영 북한대학원대 교수는 “이념갈등이 북한이나 분단문제에서 비롯됐지만 우리 내부의 정쟁적 특성도 한몫하고 있다는 예”라며 “(보혁세력이) 북한 이슈를 개입시켜 정치적 이득이나 계급적 이익을 취하려고 하면서 갈등을 양산하는 측면이 있다”고 말했다.

특히 보수 대 진보 구도로 치러진 ‘김대중 대 이회창’, ‘노무현 대 이회창’의 대선과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 등을 거치며 양 진영 간 갈등의 골은 더욱 깊어졌다. 선거 때는 물론이고, 대북 지원 문제를 비롯해 전시작전통제권 전환과 해외 파병,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제주 해군기지 건설, 천안함 폭침, 무상급식 등 주요 국가 현안마다 부딪치기 일쑤였다. 1987년 대통령직선제 개헌 이후 보수·진보진영이 총집결해 맞대결을 펼친 선거로 평가받는 18대 대선의 후유증이 여전한 것도 같은 맥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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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도층 확대와 소양 교육 활성화

전문가들은 이념갈등을 풀 열쇠로 우선 중도층이 많이 늘어나야 한다고 강조한다. 보수와 진보가 소모적인 대결 구도를 지양하고 균형 잡힌 사회로 가려면 어느 한 쪽에 치우치지 않는 중도층의 확대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는 각 진영의 울타리와 기득권에 안주해온 정치권이 지난해 ‘안철수 현상’에 화들짝 놀란 데서 확인된 바 있다. 신 교수는 “중도층은 선거 때 자동으로 보수나 진보세력을 찍지 않고 인물과 정책을 보고 찍는 합리적 경향을 보인다”며 “안철수 현상의 본질도 ‘얼어죽을 이념’에 식상한 중도층의 욕구를 반영한 것”이라고 분석했다.

보수진영 인사이면서 지난 대선 때 민주당 후보 편에 섰던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도 일부 언론 인터뷰에서 국민통합을 위해 중도층의 역할을 주문했다. “이념대결을 하면 타협이 어려워지고 그만큼 국민통합과 국가 운영도 어렵게 된다”며 “보수와 진보가 극한대결로 치닫지 않고 선의의 경쟁을 하도록 만들려면 중도성향의 합리적 판단을 하는 사람들의 역할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근본적으로는 민주주의의 기본인 다양한 의견과 절차를 존중하고 타협과 절충을 모색하는 시민의식이 자리 잡도록 하는 교육을 활성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높다. 우리 사회가 ‘1987년 체제’ 이후 제도적 민주주의는 완성했지만 오랜 권위주의와 반공·분단체제 등의 여파로 의식적·문화적 민주주의에는 미숙하다는 판단에서다. 이로 인해 관용과 배려, 토론보다 증오와 배제, 주장만 난무하고 남남갈등이 치유되기는커녕 심화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교수는 “민주주의가 정착되고 국가보다 민간·시민사회 영역이 확대되면서 다양한 이념과 의견이 충돌하는 것은 정상적인 과정”이라며 “문제는 사회 구성원들이 여기에 잘 대처하고 후유증을 최소화하는 좋은 결과를 도출해낼 수 있느냐다. 어려서부터 각종 교육을 통해 민주시민의 소양을 기르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고 말했다.

이강은 기자 kele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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