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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이 희망이다] “일과 공부는 나의 힘… 차별의 시선 바꾸는데 일조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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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3-08-06 19:13:59 수정 : 2013-08-06 19:13: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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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트남 출신의 서울시 공무원 팜튀퀸화씨
팜튀퀸화(33)씨는 이자스민 새누리당 의원과 함께 한국의 다문화 역사를 새롭게 쓰고 있다. 1999년 베트남 하노이 국립대학교 한국어과를 수석 졸업한 그는 2011년 한국의 서울시 공무원이 됐다. 57명이 응시해 4명이 최종합격의 기쁨을 누렸다.

“저는 운이 좋은 사람이었어요. 한국 정부 초청 장학생으로 선발돼 입국했고 계약직 공무원도 될 수 있었으니까요. 열심히 활동해서 이주민에 대한 시선을 바꾸는 데 보탬이 되고 싶어요.”

운이 좋았다고 하지만 그 바탕에는 실력이 있었다. 하노이 국립대를 졸업한 그는 동대학교에서 한국어 강사로 활동했다. 한국에 들어와서는 서울대 사범대 국어교육과에서 석사 과정을 밟았다. “공부할 때가 가장 행복하다”는 그는 출산·육아 때문에 접었던 대학원 과정에 다시 도전할 계획이다.

그의 배경은 ‘베트남 신부’에 대한 세간의 편견을 깼다. 4남매 중 셋째로 태어난 그는 “하고 싶은 일을 하려면 배워야 한다”고 강조한 부모님 슬하에서 자랐다. 덕분에 남매 모두 대학에 진학했다.

“베트남은 한국보다 못 살지만 교육열은 여기만큼 높아요. 집 팔고 땅 팔아서 가르치려는 부모님이 많습니다.”

팜씨의 부모님은 애지중지 키운 딸이 한국 남자와 결혼한다고 했을 때 격렬하게 반대했다. 한국 뉴스를 챙겨보며 한국인 남편의 이주여성 살해·폭행 이야기가 들려올 때마다 국제 전화로 안부를 물었다. 한국은 경제 발전은 이뤄졌어도 정서적으로는 불안한 나라였다.

지난해 서울시 계약직 공무원이 된 팜튀퀸화씨는 “열심히 활동해서 이주민에 대한 시선을 바꾸는 데 보탬이 되고 싶다”고 말했다.
팜씨가 한국과 인연을 맺은 건 대학에 진학하면서였다. 동방학부에 입학한 그는 한국·중국·일본·인도네시아어 중 한국어를 선택했다. 한국 기업의 베트남 진출이 활발해지면서 한국어과 졸업생의 취업률이 100%에 이르렀던 시기였다. 그는 북한에서 한국말을 익힌 강사에게 처음으로 한국어를 배웠다.

“대학 3학년 때 통역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만난 한국 사람들이 하나같이 물었어요. ‘북한에 유학 다녀왔냐’고요. 첫 선생님 말투를 따라하면서 북한 사투리를 익혔던 거예요. 말투 바꾸느라 혼이 났습니다.”

팜씨는 한국어를 더 배우기 위해 펜팔을 하다가 현재 남편을 만났다. 월간지 ‘좋은 생각’을 통해 29명과 편지를 주고받았지만 1년 이상 지속한 사람은 남편뿐이었다. 남편은 휴가 때마다 베트남에 놀러왔고, 2005년 팜씨가 한국 정부 초청 장학생으로 입국하면서 백년가약을 맺었다.

이런 그도 한국 생활은 쉽지 않았다. 문화 차이로 인한 오해와 이주민을 바라보는 차가운 시선은 팜씨를 움츠러들게 할 때가 많았다. 다행히 그에게는 마음을 털어놓을 수 있는 대학 동창이 있었다. 지난해 베트남 이주여성 최초로 경찰이 된 피티옥란씨는 학창 시절을 함께 한 하노이 국립대 99학번 동기다. 또 다른 대학 친구는 한국의 일반 회사에서 근무하고 있다.

공직 생활을 하게 된 팜씨의 입장은 다른 이주여성과는 조금 달랐다. 그는 다문화 관련 시설의 수요자가 아닌 암행어사로 활동하며 시설을 이용했다. 일반 다문화 여성처럼 시설에 드나들며 문제점, 불편 사항 등을 꼼꼼히 확인했다.

“영어·중국어·일어 외에 소수 언어를 할 수 있는 다문화가족지원센터 직원이 없는 점이 눈에 띄었어요. 일종의 감찰이었는데 보고서를 써서 올렸죠. 티 나지 않게 관찰하려면 저 같은 다문화 출신 여성이 필요했습니다.”

팜씨는 현재 서울의 초·중·고교에서 세계 각국의 문화를 가르치는 ‘청소년 글로벌 마인드 함양 교육’ 프로그램을 총괄하고 있다. 2008년부터 서울시에서 추진해온 사업이다. 지난 5년간 1500여개 학교가 이 프로그램을 유치해 학생들을 가르쳤다. 34개국에서 온 37명의 원어민 강사는 강의뿐만 아니라 해당 국가의 전통 음식을 만들고 의상을 입어보는 등 체험 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현장에서 인기가 높다고 한다.

“학생들의 체험기를 보면 부탄과 관련해서 ‘부탄 가스’밖에 몰랐다는 아이들이 이 프로그램을 통해 해당 나라를 알게 됐다고 해요. ‘나도 외국인 강사처럼 해외에서 자랑스럽게 한국을 소개하고 싶다’는 학생들도 많아요. 현장에 갈 때마다 제가 하는 일의 보람을 느끼게 됩니다.”

팜씨는 출산·육아 때문에 바쁘게 생활하며 석사 과정을 수료했다. 앞으로 졸업 논문을 제출하고 박사 과정을 이어가는 게 그의 목표다. 더 큰 포부도 있다.

“서울시 경력을 더 쌓고 한국 국적을 취득하게 되면 중앙부처 공무원 시험에 도전할 생각이에요. 베트남 여성은 전반적으로 의욕이 넘치고 활동적이에요. 이주여성에 대한 사람들의 인식이 긍정적으로 바뀌길 희망합니다.”

부모·형제·모국에 대한 그리움으로 국적을 포기할 수 없었던 그는 베트남 정부에서 지난해부터 이중 국적을 허용하면서 한국 국적을 신청한 상태다.

글·사진=이현미 기자 engin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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