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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이 희망이다] 〈3부〉 위기의 가정을 살리자 ② 따뜻한 보금자리가 필요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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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3-09-17 17:23:33 수정 : 2013-09-18 11:4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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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컨테이너 소녀’ 은비 이야기 일곱 살 은비는 6년 간 경기도 남양주시의 한 컨테이너에서 살았다. 세상에 태어나 일곱 해 중 여섯 해를 고속도로 옆 공터의 컨테이너에서 보낸 것이다. 겨울에는 컨테이너를 지탱하는 쇳대가 손에 쩍 달라붙을 정도로 추웠다. 여름에는 푹푹 찌는 더위와 싸워야 하는 그곳에서 은비는 기어다니고 걸음마를 뗐다. 친구도 놀이터도 없었지만 고맙게도 은비는 밝게 자랐다.

“은비가 태어났을 때는 지하창고에서 살았는데, 습기가 차고 곰팡이가 심해 병을 달고 살았어요. 컨테이너로 옮기면서 좀 나아지긴 했지만 감기는 떨어지지 않더라고요.”

은비가 아플 때가 가장 힘들었다는 아버지 한종구(가명·53) 씨. 택시도 오지 않는 외진 공터에서 딸을 들쳐 업고 뛰는데 만성 관절염 때문에 몸이 따라주지 않아 눈물을 삼킨적이 많았다. 그래도 은비와 한씨에게 컨테이너는 소중한 보금자리였다.

하지만 지난 6월 부녀는 거리로 내몰릴 뻔 했다. 그동안 공터 주인이 무상으로 모퉁이 자리를 내줬지만 재건축 부지로 선정돼 6월 말부터 공사가 시작된다는 통보가 왔던 것이다. 
한종구(가명)씨와 딸 은비가 6년간 살았던 경기도 남양주시 한 공터의 컨테이너. 은비는 태어나 지금까지 대부분의 시간을 이 곳에서 보내며 감기가 떨어진 적이 없었다고 한다.
사진=강영호 작가 재능기부
컨테이너를 벗어나다


“은비와 노숙자가 되는 줄 알고 잠도 못자고 얼마나 걱정했는지 몰라요. 컨테이너를 옮길 수 있는 작은 땅을 찾는게 소원이었어요.”

때마침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에서 은비네의 딱한 사정을 듣고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다. 긴급 모금운동을 벌여 인근에 두칸 짜리 지하 월세방을 구해줬다. 33㎡(10평) 남짓한 지하방이지만 한 씨는 “이것도 감지덕지하다”는 말을 반복했다.

컨테이너에서 지붕이 있는 집으로 이사온 소감을 묻자 은비는 이렇게 말하며 초롱초롱한 눈을 깜빡였다. 세상에 의지할 혈육이라곤 아버지밖에 없던 은비에게 주인집 손녀딸 민이(4)는 첫 친구이자 친동생 같은 존재다. 처음 본 기자에게도 생글생글 웃으며 아끼는 백설공주 스티커를 손등에 붙여줄 정도로 밝은 은비는 동네에서 만나는 할머니와 할아버지도 모두 친조부모로 여긴다. 엄마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이모 엄마’라고 부르는 사람이 있어요. 구리에 사는 가정주부인데, 우리 집 사정을 듣고 은비가 어렸을 때부터 가끔 와서 빨래도 해주고, 은비 속옷이랑 치마도 사주고 그래요. 내가 잘 몰라서 못챙기니까. 그 분을 엄마라고 믿어서 그런지 친엄마를 따로 찾지는 않아요.”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의 도움으로 지난 6월 새 보금자리를 얻게 된 한종구(가명)씨와 딸 은비가 이야기를 나누며 웃고 있다. 지하 월세방이지만 한씨는 “노숙자가 될 줄 알았는데 집을 얻게돼 너무 기쁘다”며 만족해 했다.
김범준 기자
“일해서 딸을 돌보고 싶어요”


친엄마는 은비를 낳고 한 달만에 집을 나갔다. 한씨는 전처와 이혼한 뒤 은비 엄마를 만나 1년여를 같이 살았지만 고향도, 가족 연락처도 몰라 찾을 길이 없었다.

당시 오래된 목 디스크와 무릎 관절염, 고혈압으로 일을 할 수 없었던 한씨는 갓 태어난 늦둥이 딸을 혼자서 돌봐야 했다. 생후 6개월후 은비를 어린이집에 보내고서야 한시름 놨다. 하지만 계단 오르내리기도 버거운 그가 할 수 있는 일은 동네 사람들 잔심부름을 해서 하루 3000원, 5000원 정도 버는 것이었다.

지난해에는 목 디스크와 무릎 관절염이 악화돼 수술까지 받았지만 상태는 되레 나빠졌다.

몇 년째 제대로 된 일을 하지 못하는 데도 기초생활보장 급여도 받지 못했다. 전처와 낳은 딸이 있다는 이유에서다. 이혼 후 10년 넘게 소식이 끊긴 딸과 사위가 부양의무자로 올라가 그의 생계지원이 가로막힌 것이다.

수 차례 동사무소를 찾아가 사정을 얘기해봤지만 소용 없었다. 결국 수소문 끝에 첫째 딸(30)에게서 경제적 지원을 받고 있지 않다는 확인을 받고 지난해부터 기초생활수급자로 인정받았다. 하지만 딸과 사위가 수입이 있다는 이유로 그나마도 급여 일부가 깎여 월 52만원 정도 받는다. 한 달에 한 번씩 푸드마켓에서 쌀과 간장 등의 음식을 타오지만 무럭무럭 자라는 은비를 마음껏 먹여주거나, 장난감을 사줄 엄두는 못낸다. 뭐가 가장 필요한지 물어봐도, 은비에게 제일 해주고 싶은 것을 말해 보라고 해도 한씨는 “지금도 감지덕지하다”고만 말한다. 

“내년에 은비가 학교에 들어가니 필요한 게 많을 것 같은데 그게 뭔지는 모르겠어요. 피아노 같은 거 갖고 싶다고 하지만 꿈 같은 얘기고. 당장 내일 뭐가 필요한지도 닥쳐야 알지, 잘 몰라요. 내가 배운 게 없어서.”

한씨는 글을 모른다. 하지만 은비는 YMCA스포츠단에 다니고 돌봄교실에서 언니 오빠들에게 배워 벌써 제 이름을 쓴다. 한씨는 큰 욕심을 부리지 않는다. 누가 도와주기만을 바라지도 않는다. 전원도 들어오지 않는 컴퓨터, 누군가 내다버린 냉장고 등을 주워와 세간살이를 채우고는 “갑자기 부자가 됐다”며 웃는 그는 “난 돈은 없어도 주변에 좋은 사람은 많은 것 같다”고 한다. 소망이 있다면 앉아서라도 할 수 있는 일자리를 갖는 것이다.

“오래 서 있기가 어려워 공공근로는 할 수 없으니 정부나 시에서 허가해주는 노점상이라도 해보고 싶어요. 그래야 은비 학교도 보내죠.” 옆에서 듣고 있던 은비가 끼어든다. “저는 간호사가 돼서 아빠 병을 고쳐줄거에요.”

남양주=김수미 기자 leol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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