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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규의후마니타스에세이] 역사에 담긴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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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3-12-06 20:54:51 수정 : 2013-12-06 22:3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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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는 상상력의 원천이자
밝은 미래 열어주는 황금빛 열쇠
고려 후기에 보각국사 일연이 쓴 ‘삼국유사(三國遺事)’는 독특한 책이다. 어린 시절부터 이 책에 대해 들었지만 어른이 돼서야 제대로 읽었고, 지금까지 몇 차례 통독할 때마다 느낌이 매번 달랐다. 책 제목도 유별나다. 유사는 ‘잃어버린 사실들’, ‘남겨진 사실들’이란 뜻이다. 다시 말해 ‘기록되지 않은 역사적 사실들’을 말한다. 나라에서 발간한 공식 역사서에는 빠졌지만 사람들이 소중히 여기는 것들을 모아놓은 책이다. 일연이 평생 전국 각지를 다니면서 보고 들은 것을 적어두었다가 말년에 펴냈다. 고려 중기 유학자 김부식이 쓴 ‘삼국사기’와 함께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역사 문헌이다.

‘삼국유사’에는 단군신화와 고대 건국신화가 들어있다. 우리 땅이 몽골인들에게 짓밟히던 시절 백성들에게 자긍심과 민족애를 심어주려는 뜻이 실렸다. 그런데 이 책은 조선시대에는 야사(野史)로 치부돼 주목받지 못하다가 일제 강점기에 육당 최남선이 ‘삼국유사해제’를 펴내면서 재발견됐다. 민족 수난기에 쓰여졌고 600여년 뒤 국권 상실기에 다시 빛을 본 것이다. 최남선은 “일연의 공은 서방의 헤로도투스에도 비할 것”이라고 극찬했다. 지금은 학계에서 주저 없이 우리 고대사 연구의 원천이자 한국 최고의 고전으로 꼽는다.

일연이 ‘삼국유사’를 펴낸 뜻을 가벼이 여겨서는 안 된다. 신화는 오랜 세월에 걸쳐 사람들 사이에 공유되면서 전승된 이야기다. 먼 옛날 나라가 열릴 때에 살던 조상들의 사유 형식이 담겨 있다. 현실의 역사가 아닌 꿈의 역사가 신화로 표현된 것이다. 개인의 꿈이 아니라 집단이 함께 꾼 꿈이다. 그래서 인간집단과 거기에 속한 개인의 정신의 원형을 신화에서 찾아볼 수 있다고 학계에서는 말한다. ‘삼국유사’에 실린 신화의 내용은 현세중심적이고 인간중심적이다. 오늘날 한국 사상의 기본적인 특성으로 간주되는 부분이다. 신화를 읽으면 우리 조상들의 정신을 이해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오늘날 ‘우리는 누구인가’라는 수수께끼를 푸는 열쇠가 된다. ‘삼국유사’가 한국인의 정신적 지도를 그렸다는 학계 평가를 받는 이유다. 

박완규 취재담당 부국장
‘삼국유사’는 신화뿐만 아니라 평화를 가져다주는 피리 ‘만파식적(萬波息笛)’, 용의 아들 처용, 수로부인 설화부터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에 이르기까지 고대를 배경으로 한 많은 이야기의 출처다. 이야기를 전해주는 데서 한발 더 나아가 우리 역사에 대한 상상력을 자극해 새로운 이야깃거리를 제공해준다. 오늘날 우리 고대사를 배경으로 한 소설, 영화, TV 드라마부터 애니메이션과 게임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콘텐츠가 모두 이 책의 덕을 봤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삼국유사’로 인해 우리 문화가 풍요로워진 것이다. 한마디로 말해 꿈과 상상력의 보물창고다. 이 보물창고에 들어서면 새로운 인식을, 새로운 가능성을, 새로운 삶을 여는 계기를 찾을 수 있다.

종교학자 정진홍은 “역사가 쓴 시를 담고 있는 책”인 ‘삼국유사’를 항상 손에 닿는 거리에 둔다. “그저 아무데나 펴서 읽다가 책을 덮고 자면 그만”이라는 것이다. 이상하게도 그렇게 잠이 들면 꿈자리가 편안하다고 한다. 이런 책이 우리에게 있다는 것은 큰 복이다. 정민 한양대 교수는 ‘삼국유사’에 대해 “허튼 말이 하나도 없었다. 해석이 어려운 것은 해독의 코드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라고 했다. 과연 우리가 잃어버린 게 해독의 코드일까. 아니면 꿈일까.

우리 사회를 돌아보자. 언제부터인가 온갖 형태의 갈등과 마찰, 불협화음이 사회 각 부문을 짓누르고 있다. 다들 남의 이야기에는 귀를 닫고 내 이야기만 한다. 꿈이 사라져서 사회 분위기가 강퍅하고 여유가 없는 게 아닐까. 정치인과 기업인 등 우리 사회 리더들에게 ‘삼국유사’의 책장을 넘기면서 일연이 쓰고자 했던 역사가 무엇이었는지 새겨볼 것을 권한다. 그러면 우리 사회가 당면한 여러 문제들을 풀 방법을 찾을 수 있다. 역사에 담긴 꿈에서 말이다. 역사는 지금 여기에 사는 우리들의 이야기이고, 꿈이다. 우리를 밝은 미래로 이끌어주는 길이다.

박완규 취재담당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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