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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이 희망이다] ② 절망 딛고 희망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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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3-12-25 19:19:40 수정 : 2013-12-26 07: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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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움직일 손만 있어도 봉사하겠다는 소원… 아내와 함께 이뤄” “오른손만이라도 움직일 수 있다면, 절뚝거려도 좋으니 걸을 수만 있다면, 봉사하며 살겠다고 빌었는데 그 소원이 이뤄졌습니다.”

서울 은평구 역촌동의 한 골목에 위치한 이레지역아동센터(이하 센터) 하태림(50) 대표는 1급 장애인이다. 양손 모두 자유롭게 쓸 수 없고 다리는 목발에 의지한다. 오른쪽 얼굴에는 떨어져 나간 피부를 이식한 자국이 선명한 하 대표는 지난 17년간 생사를 넘나드는 환자 1000여명을 찾아가 위로하고 고통을 함께 나눴다. 또 가정형편이 어려운 35명의 초·중·고생들에게 배움의 기회를 주기 위해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다. 23일 만난 하 대표는 “지하철을 타도 사람들이 장애인석을 양보해주지 않는데 참 고맙다”면서 “25년 전 식물인간 판정을 받았던 내가 이제 멀쩡해 보인다는 뜻 아니겠느냐”며 환하게 웃었다. 

◆“절망 속에서 들려온 따뜻한 위로”

건설회사에 다니던 하 대표의 인생이 180도 달라진 것은 1988년부터다. 술을 마시고 밤늦게 귀가하다가 경기도 부천의 한 공사장에서 발을 헛디뎌 추락했다. 혼수 상태에 빠져 며칠 만에 눈을 떠 보니 온 몸에 붕대가 칭칭 감겨져 있고 침대에는 각종 의료 기기와 링거들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그때 아내가 “얼마나 회복될 수 있을 것 같아요”라고 물었다.

“망치로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것 같았어요.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하면서 막연히 ‘낫겠지’ 했다가 현실을 깨달은 거죠.”

의사는 아무 말도 해주지 않다가 열흘쯤 지나서야 “준비됐어”라고 물었다. “그렇다”는 눈짓을 보내자 “경추, 중추, 요추 중요한 척추 세 마디가 다 부서져서 혼자 돌아눕지도 못한다. 휠체어도 못 탄다”는 대답이 돌아왔다.

4개월이 지난 뒤 하 대표는 둘째를 임신 중이었던 아내에게 “아이는 낳아 입양 보내고 내 곁을 떠나달라”고 부탁했다. 아내는 두 돌이 채 안 된 첫째 딸만 형제들에게 맡기고 떠났다.

“그땐 정말 삶을 정리하려고 했습니다. 이렇게 회복될 줄 알았다면 그런 바보같은 짓은 절대 하지 않았을 텐데….”

손가락 하나 마음대로 움직이지 못하는 그에게는 스스로 삶을 마무리하는 것조차 허락되지 않았다. 그는 죽지 못해 살았다고 회상한다. 매일 어떻게 죽을지 고민만 하던 어느 날 병실 복도에서 들려온 노래 한 곡을 듣고 마음을 열기 시작했다.

“무슨 노래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노래 부르는 사람들의 위로가 마음으로 전해졌어요. 나도 한 손이라도 움직이고, 절뚝거리더라도 걷기만 한다면 저들처럼 봉사하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얼마 후부터 마비됐던 몸에서 통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는 회복하고 있다는 증거라고 믿고 재활운동에 매진, 입원 2년여 만에 퇴원할 수 있었다.

◆“받은 것을 돌려줄 뿐”

목발에 의지해야 했지만 하 대표는 곧 ‘약속’ 이행에 나섰다. 1990년 7월부터 고려대 부속병원을 일주일에 두 번씩 찾아가 환자들을 위로했다. 그가 내민 손을 잡은 환자들은 대부분 전신 혹은 하반신이 마비된 사람들이었다. 그는 자신이 병원에서 받았던 진단서를 주머니에 넣고 다니며 환자들에게 보여줬다.

“병원에서 식물인간이 될 거라고 했던 내가 이렇게 걸어다니는 것을 보며 희망을 갖게 하고 싶었거든요.”

그렇게 병원으로 출퇴근하면서 만난 환자가 무려 1000명이 훨씬 넘는다. 노래를 함께 부르는 사람이 40여명으로 늘었고, 그들과 일일 찻집, 작은 음악회 등을 열었다. 음악회를 열 때마다 200만∼300만원의 후원금이 모였고, 그 돈으로 치료비가 모자란 환자의 병원비를 댔다. 지금의 아내도 일일찻집에 봉사하러 왔다가 만났다.

“폐결핵 치료를 받아야 하는 환자가 수술비가 없어 포기하려고 하자 아내가 결혼 예물과 자식들 돌반지까지 모두 내놓더군요. 아내가 아니었다면 할 수 없었던 일입니다.”

23일 서울 은평구 이레지역아동센터에서 하태림 대표가 부인 강명옥씨와 함께 센터를 이용하는 아이들에게 줄 크리스마스 선물을 포장하고 있다. 병상의 환자들에게 자신의 투병 이야기를 들려주며 희망을 심어주던 하 대표는 2010년부터 지역 아동·청소년들에게 공부방과 식사를 제공하고 있다.
이제원 기자
하 대표는 자신을 치료해줬던 부평 세림병원과 서울대병원 등에도 어려운 환자들의 처지를 알려 무료 치료를 받도록 돕기도 했다.

2000년 목사 안수를 받은 그는 목회활동을 하다가 2010년 교회건물 2층에 이레지역아동센터를 열었다.

“놀이터를 지나가는데 한겨울에 양말도, 점퍼도 입지 않은 아이들이 많더라고요. 끼니도 못 챙기는 것 같아 하나 둘 집으로 불러 먹이고, 공부도 시키게 됐죠.”

이혼가정, 조손가정의 아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밥이 전부가 아니었다. 공부하는 습관도 없고, TV와 게임에 중독된 아이들에게는 자존감과 희망을 되찾는 것이 더 시급했다. 하 대표의 딸과 사위가 먼저 아이들에게 수학과 영어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차츰 재능 기부자들이 늘면서 연세대 로타렉트 동아리와 신학과, 하나고등학교 학생들이 매주 1∼2회 센터에 와 아이들에게 공부지도를 해주고 있다. 서울시 등에서는 영어, 음악 선생님을 보내줬다. 피아노, 바이올린, 기타 등의 악기들을 몇 년째 외상으로 내주는 낙원상가 사장도 물심양면으로 도와주는 사람 중 한 명이다.

하 대표는 ‘전교 1등을 하는 고등학생, 전과목 백점을 받아온 초등학생, 학교 밴드에서 보컬을 맡은 중학생’ 등 아이들 칭찬에 시간 가는 줄 몰랐다.

“제가 다른 분들께 받은 것을 돌려드리듯 이 아이들도 커서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는 것이 가장 큰 바람입니다.”

김수미 기자 leolo@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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