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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규의후마니타스에세이] 마루야마 마사오의 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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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01-03 20:57:57 수정 : 2014-01-04 00:3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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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시 아시아의 배반자 되지 말아야”
일본은 그의 말에 귀기울여야 한다
일본은 모른다. 그들이 제국주의 시절 아시아 각지에서 욱일승천기를 흔들고 “천황의 통치시대는 천년 만년 이어지리라”는 기미가요를 부르면서 저지른 일 말이다. 아예 알려고 하지 않는다. 과거사에 대해 책임 회피가 아니라 무책임으로 일관한다. 전후 일본 학계에서 ‘마루야마 덴노(天皇)’로 추앙받던 정치학자 마루야마 마사오(丸山眞男·1914∼1996)는 저서 ‘일본의 사상’에서 이를 “천황제에서의 무책임 체계”라고 했다. 천황제 메커니즘에서 신민(臣民)의 무한책임이라는 엄중한 윤리가 거대한 무책임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는 저서 ‘현대정치의 사상과 행동’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일본의 경우는 그 정도의 큰 전쟁을 일으키면서도 나야말로 전쟁을 일으켰노라는 의식이 지금까지는 그 어디에도 보이지 않는 것이다. 왠지 모르게 무엇인가에 짓눌리면서, 국가 전체를 온통 전쟁의 와중으로 몰아넣었다는 이 같은 놀라운 사태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일본의 불행은 과두세력에 의해서 국정이 좌우되고 있었다는 것만이 아니라 과두세력이 그야말로 사태에 대한 의식이나 자각을 가지고 있지 못했다는 점에서 두 배로 늘어났던 것이다.”

그는 이처럼 일본 군국주의와 파시즘을 정면으로 다루면서 전후 일본 정치학계가 직면한 ‘왜 우리는 이런 실수를 범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을 이끌었다. 그는 “근대 군국주의는 대중국가와 민주주의의 갭(gap)에서 생겨난 기형아에 다름 아니다”고 일갈했다. “일반적으로 국민 사이에 기술적 지식의 보급과 정치의식의 성장 곡선이 평행을 이루지 못하고 오히려 틈새가 벌어지고 있는 그런 곳일수록 군국주의가 성장하기 쉽다”는 것이다. 

박완규 취재담당 부국장
일본인으로는 드물게 전쟁에 관해 올바른 문제의식을 지녔다. 하지만 일본에서는 소수 의견이다. 전쟁이 끝난 지 반세기 이상 지난 지금도 그렇다. 작가 시오노 나나미는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영화 ‘8월의 광시곡’을 다룬 에세이에서 일본 전후세대의 과거 외면 현상을 지적한다. 그는 “실제로 일본의 어른들은 과연 무엇을 해왔는가. 제2차 세계대전을 총괄하지 않고 도망만 쳐왔다”면서 “덕분에 우리는 아직도 그 문제를 다루는 관점을 갖지 못한 상태”라고 한다. “반성이란 말의 의미는 자신을 돌아본다는 것 말고도 자기 행위 또는 의식에 대해 판단을 내릴 필요성을 가지고 세심하게 관찰한다는 뜻도 포함되어 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후자의 반성이다. 그리고 그것을 하나로 정리하여 세계에 던져야 한다.”

하지만 일본은 반성할 조짐조차 보이지 않고, 되레 군국주의 부활 움직임만 감지된다. 아베 신조 일본 총리가 지난달 26일 2차 대전 전범들이 안치된 군국주의 상징 야스쿠니 신사를 공식 참배한 데 이어 새해 첫날에는 신도 요시타카 총무상이 ‘사적으로’ 참배했다. 과거 무력으로 짓밟은 이웃나라들의 상처를 헤집는, 말 그대로 도발이다. 이 정도면 단순한 돌발 행위가 아니라 그들의 기본 철학을 실행에 옮긴 것으로 볼 수 있다.

일본은 상식으로 이해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섰다. 마치 치매에 걸린 노인처럼 행동한다. 아베 정권은 어디로 튈지 모르는 권력이다.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강력히 추진하는 아베 정권의 향후 움직임에 경계심을 품게 되는 이유다. 일본인들은 마루야마의 말에 귀기울여야 한다. 그는 1951년 시사월간지 ‘세카이(世界)’ 기고문에서 이렇게 말했다. “일본 비극의 원인은 아시아의 희망에서 아시아의 배반자로 급속하게 변모한 데 배태되어 있었다. 패전에서 메이지 초년의 출발점으로 다시 돌아온 일본은 아시아의 배반자로 데뷔하려고 하는 것인가. 나는 그 방향의 끝을 차마 예상할 수가 없다.” 그 방향의 끝은 지금 욱일승천기가 나부끼는 일본 곳곳에서 뚜렷이 보인다. 오늘날 일본 상황을 보면 무덤 속 마루야마가 편히 쉬지 못할 것이다. 아베 정권은 나라를 위험으로 몰아넣고 있는데, 이에 대한 일본 내 비판은 울림이 없다.

박완규 취재담당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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