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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이 희망이다] ④ 꿈 키우는 장애인 멘토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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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01-22 20:00:28 수정 : 2014-01-22 20:55: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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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같은 아픔 공유… 손 꼭 잡으니 장애 이겨낼 수 있어”
2012년 한창 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8월의 어느 날. 김성규(45)씨는 충남 천안의 집 근처 공원에 바람을 쐬러 나갔다. 김씨는 공원에서 야구를 하고 있던 한 가족을 발견했다. 자세히 보니 공을 던지고 받는 사람이 자신처럼 휠체어를 타고 있는 청소년이었다. 이들에게 다가간 김씨는 느닷없이 ‘보치아’를 해 볼 생각이 없느냐고 물었다. 그는 2010년 광저우장애인아시안게임에서 은메달을 딴 국가대표 보치아 선수였다. 김씨는 평소 자신과 비슷한 처지에 있는 청소년을 만나면 보치아를 권하곤 했다. 야구 선수가 꿈이었던 박승철(17)군은 낯선 사람이 난생처음 들어본 보치아를 권하자 이상하기만 했다. 하지만 승철이는 마치 운명처럼 뭔가에 이끌려 보치아 연습장에 가보게 됐다. 지금은 오재미 공과 비슷한 보치아 공에 자신의 미래를 걸고 있다.



김씨는 초등학교 1학년 무렵부터 근이영양증을 앓고 있는 지체장애 1급의 장애인이다. 역시 지체장애 1급인 승철이도 척수성 근육 위축이라는 김씨와 같은 근육병을 앓고 있다.

그들이 즐기는 보치아 경기는 장애인 스포츠 중의 하나다. 야구공보다 약간 큰 적색과 청색의 공을 흰색의 표적구에 가장 가까이 굴려 넣는 사람이 이기는 경기다. 중증 뇌성마비 장애인과 심한 이동장애를 앓는 휠체어 사용자만이 참가할 수 있다.

김씨와 승철이는 충남중증장애인자립생활센터의 멘토링 프로그램을 통해 더 단단히 묶여졌다. 안정적인 1대1 멘토링을 통해 보다 체계적으로 보치아를 가르칠 수 있게 된 것이다.

“승철이 손놀림이 자유스럽지 못해 처음엔 걱정을 했는데 막상 시켜보니 잘 하더라고요.” 침착한 성격의 승철이는 보치아에 소질을 보였다. 김씨는 보치아에 재미를 붙여 열심히 하는 승철이에게 노하우를 하나하나 전수했다. 승철이의 실력이 날이 갈수록 늘었다. 승철이는 보치아를 시작한 뒤 두 번째로 출전한 전국대회에서 당당히 동메달을 땄다.

김씨가 승철이에게 멘토링을 하며 가장 강조하는 부분은 ‘긍정적인 마인드’다. “승철이가 조급하게 성적에 매달리지 않고 길게 보고 즐기면서 했으면 해요. 경기를 중간에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최선을 다하면 지더라도 마음으로 충족이 되니까요.”

장애인 스포츠 보치아 선수 김성규(45·오른쪽)씨와 박승철(17)군이 충남 천안시장애인종합체육관에서 보치아 훈련을 하며 표적구 쪽으로 공을 던지기 위해 준비하고 있다.
천안=이재문 기자
멘토의 조언 덕분에 승철이는 오택배보치아대회에서 3위에 입상할 때도 3점을 내리 내준 상태에서 극적인 역전승을 거둘 수 있었다. 김씨는 늘 승철이의 경기를 옆에서 지켜보며 격려를 아끼지 않는다.

현실에서 이루기 어려웠던 야구 선수의 꿈 대신 승철이에게는 새로운 목표가 생겼다. 그의 어머니는 “승철이가 예전에는 ‘장애인인데 내가 뭘 할 수 있겠느냐’고 했는데 이제는 보치아 국가대표가 되겠다는 꿈을 갖게 됐다”며 기뻐했다.

김씨가 지난해 8월 세계 최초로 충남에서 창단된 보치아 실업팀에 입단하면서 승철이는 ‘성규형처럼 실업팀에 입단해 돈을 벌겠다’는 또 하나의 희망이 생겼다. 돈을 벌면 신발장 위 검은 봉지 안에 만원짜리를 가득 넣어두고 늘 자신의 휠체어를 미느라 힘든 엄마가 필요할 때마다 꺼내 쓰게 하고 싶다.

당장은 보치아 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올려 장애인 특별전형으로 대학에 들어가는 게 목표다. “친구들이 대학 가기 유리해서 좋겠다며 부러워해요.” 승철이는 환하게 웃으며 말했다.

승철이에게 멘토로서의 역할은 보치아 선배로서만이 아니다.

충남중증장애인자립생활센터 박수진 사무국장은 “같은 장애를 가진 사람들은 ‘피보다 더 애틋하다’고 할 정도로 깊은 공감을 하며 가족에게 말 못하는 얘기까지 서로 나눈다”고 귀띔했다.

김씨는 다음달 동갑내기 보치아 선수와 결혼한다. 신부는 지난해 봄 전남 해남에서 열린 보치아대회에서 만났다. 행복한 가정을 꾸릴 김씨의 모습도 승철이에게 멘토링이 된다.

김씨가 실업팀에 들어가면서 공식적인 멘토·멘티 관계는 끝났지만 둘은 수시로 연락하며 고민을 나누고 있다. 승철이는 김씨가 쓰다가 넘겨 준 때가 꼬질꼬질하게 묻어있는 손목보호대를 보물 1호로 간직한다. 부자연스러운 손놀림을 잡아주기 위해 보호대가 필요한데 김씨가 준 것만큼 승철이에게 잘 맞는 보호대가 없어서다.

승철이가 김씨를 바라보며 수줍게 말을 꺼냈다. “성규 형이 없었으면 보치아라는 걸 시작도 못했을 거고 하더라도 중간에 힘들어 포기했을 거예요. 그날 공원에서 저에게 먼저 다가와 주셔서 정말 감사해요.”

천안=윤지희 기자 phhi@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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