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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규의 후마니타스에세이] 항해와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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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05-02 21:38:02 수정 : 2014-05-06 14:41: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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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스템의 실패는 정치의 실패
정치의 존재 이유를 묻는다
거친 바다 한가운데서 풍랑에 흔들리는 배를 안전하게 모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배를 몰려면 배의 구조와 선원들의 기능에 대해서 잘 알아야 할 뿐 아니라 별자리를 보고 방향을 알 수 있어야 하고, 기상이나 조류의 변화를 일찍 감지할 수 있어야 한다. 말로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오랫동안 뱃일을 하다보면 자연스레 익히게 되는 기술들이 필요하다. 그래서인지 예로부터 수많은 학자들이 정치를, 바다를 항해하는 일에 비유하곤 했다. 정부 또는 통치를 뜻하는 영어 ‘거번먼트(government)’가 배의 키(rudder)를 뜻하는 중세 라틴어 ‘구베르나쿨룸(gubernaculum)’에서 비롯된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플라톤은 저서 ‘국가’에서 스승 소크라테스의 입을 빌려 이렇게 말한다.

“선원들은 키의 조종과 관련해서 서로 다투고 있네. 저마다 자기가 키를 조종해야만 한다고 생각해서지. 일찍이 그 기술을 배운 적도 없으면서 말일세. … 남들이 원하건 원치 않건 간에, 키를 어떻게 조종할 것인지에 대한 기술을 배우거나 터득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못하네. 배에서 이런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면, 정작 조타술에 능한 사람은 선원들에게는 영락없이 천체 관측자나 수다쟁이, 또는 쓸모없는 사람으로 여겨질 것이라 자네는 생각하지 않는가?”

플라톤은 국가를 배에, 통치술을 조타술에, 대중 정치인을 선원에 비유한다. 조타술에 문외한인 선원이 모는 배는 바다를 정처없이 떠다니는 배로 전락할 것이다. 제멋대로 가다가 암초를 만나 침몰할 수도 있다. 여기서 국가라는 배를 잘 몰 수 있는 기술을 가진 사람이 키를 잡아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영국 철학자 마이클 오크숏은 1951년 런던정경대(LSE) 교수 취임 강연에서 유명한 말을 남겼다.

“정치활동에서는 인간은 한없이 넓고 깊은 바다를 항해한다. 거기에는 피난처도 없고 닻을 내릴 정박지도 없으며, 출발지도 정해진 목적지도 없다. 중요한 일은 바다 위에 안정되게 떠 있는 것이다. 바다는 친구이기도 하고 적이기도 하다. 그리고 항해술은 전통적인 행동방식이라는 자원을 이용해 모든 적대적인 상황을 친구로 만드는 것이다.”

망망대해와 같은 정치세계를 묘사한 말이다. 정치세계는 여러 목소리들, 다양한 신념들로 이루어진다. 바다에서 배를 모는 일, 즉 정치는 우리가 어느 방향으로, 어느 속도로 나아갈지를 놓고 끊임없는 대화를 하는 것이다. 올바른 항해나 올바른 정치는 적절한 기량과 정확한 정보를 갖추고 상황 변화에 기민하게 대처하는 것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박완규 기획·온라인담당 부국장
정치를 항해에 비유하는 게 지금도 유효하다면 세월호 참사는 충격적이다. 사고 원인에서 실종자 구조·수색작업, 정부 대처에 이르기까지 제대로 된 것이 하나 없다. 나라의 시스템이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을 이렇게 참담하게 확인하리라고는 미처 상상하지 못했다. 시스템의 실패는 정치의 실패다.

정치인은 자신이 상상하는 나라만 운영할 수 있다고 한다. 국민은 그동안 많은 문제를 제기해 왔지만 정치권은 이를 외면해왔다. 정치인의 상상력이 국민의 기대에 미치지 못한 것이다. 세월호 참사는 정치인의 상상력 결핍이 낳은 재앙이다. 진도 앞바다에서 세월호와 수백명의 무고한 생명과 함께 우리나라 정치도 가라앉았다. 세월호 참사의 원인과 당국의 어설픈 대처 등은 정치권에 두고두고 숙제로 남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항해의 끝이 아니라, 항해 그 자체다.” 인도 철학자 사르베팔리 라다크리슈난의 말이다. 정치인들은 이 말을 새겨들어 잘못된 제도와 관행을 속히 고쳐 나가야 한다. 시간이 없다. 곳곳에서 물이 스며드는 대한민국호의 침몰을 막고 나라의 미래를 바꾸려면 서둘러 행동에 나서야 한다. 지금 진정한 리더십이 무엇인지를 보여줘야 한다. 정치가 존재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머뭇거릴 때가 아니다. 이제 더 잃을 것도 없지 않은가.

박완규 기획·온라인담당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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