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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규의후마니타스에세이] 똑바로 서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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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4-08-22 21:28:31 수정 : 2014-08-22 21:3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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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황 방한에서 떠올린 아우렐리우스 황제
‘명상록’에서 제시한 경건한 삶의 방식
낡은 가방을 직접 들고 온 그는 우리 사회에 깊은 감동의 여운을 남겼다. 프란치스코 교황 신드롬이다. 낮은 곳을 찾아가는 겸허한 모습이 종교와 세대를 초월해 큰 깨달음을 주었다. 그의 메시지는 평화와 화해다. “삶이란 혼자서는 갈 수 없는 길”이라고 했다. 말은 쉽고 간결하되 직설적이고 강하다. 삭막한 우리 사회를 되돌아보게 한다.

박완규 기획·온라인 담당 부국장
그를 보면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121∼180)를 떠올리게 된다. 영국 역사가 에드워드 기번이 “인류가 가장 행복했고 가장 번영했던 시기”라고 한 로마제국 5현제(賢帝) 시대의 마지막 황제인 그는 그리스어로 쓴 ‘명상록’을 남겼다. 이민족 침입으로 재위 기간 대부분을 전쟁터에서 보낸 황제가 변경지역 군 막사에서 쓴 글이다. ‘통치자가 쓴 최고의 저서’로 꼽힌다.

권력보다 철학을 사랑한 그가 올바른 삶을 찾기 위해 자신에게 들려주는 충고와 반성, 교훈을 담았다. 독백하고 질문하고 꾸짖는다. ‘덕의 실현’을 최고의 삶으로 여긴 스토아 철학자답게 절제·정의·진리·용기의 네 가지 덕목을 내세우면서, 이성적으로 행동하고 자연과 조화를 이루며 살라는 가르침을 되뇐다. 생각을 실천에 옮겼다. 전쟁터에서 허름한 옷을 걸쳤고 소박한 식사를 했으며 딱딱한 침대에서 잤다. 궁전의 식기, 보석, 옷 등을 팔아 전쟁자금을 마련했다.

책은 이렇게 시작한다. “나는 할아버지 베루스 덕분에 순하고 착한 마음씨를 갖게 됐다. 아버지에 대한 평판과 추억 덕분에 겸손과 남자다운 기백을 갖게 됐다. 어머니 덕분에 경건함과 관대함, 그리고 나쁜 행위뿐만 아니라 나쁜 생각도 삼가는 마음과, 나아가 부자들의 생활 태도를 멀리하는 검소한 생활방식을 갖게 됐다.” 이 말에는 스토아학파가 행복한 삶의 방식으로 여기는 것들이 들어 있다.

이런 말도 한다. “늘 소박하고, 선하고, 순수하고, 진지하고, 가식 없고, 정의를 사랑하고, 신을 두려워하고, 자비롭고, 상냥하고, 맡은 바 의무에 대해 용감한 사람이 되도록 하라.” 경건한 성품과 공동체를 위한 행동을 목표로 삼았다. 자연의 섭리에 따라 자신을 엄격하게 다스리면서, 선한 마음으로 로마제국을 이끈 철인(哲人) 황제의 내면을 엿볼 수 있다. 권력을 다른 사람이 아닌 자기 자신에게 행사했다.

그리고, 가슴을 울리는 경구가 곳곳에 있다. “온 마음으로 옳은 것을 행하고 진실을 말하는 데 인생의 구원이 달려 있다.” “누가 너에게 ‘지금 무슨 생각을 하고 있지?’ 하고 갑자기 물어도 ‘이것과 이것’이라고 지체 없이 대답할 수 있는 그런 일들만 생각하는 습관을 길러야 한다.” “네 마음은 네가 자주 떠올리는 생각과 같아질 것이다. 영혼은 생각에 의해 물들기 때문이다.” 지상 최고 권력자가 타락을 경계하면서 열심히 일하도록 자신을 채찍질하는 내용을 보면 감탄이 절로 나온다. 훗날 영국 사상가 존 스튜어트 밀이 이 책을 “고대의 지혜를 최고도로 표현한 윤리적 소산”이라고 평가한 것도 같은 맥락일 것이다.

정치이념으로는 “동등한 법률이 적용되고 평등권과 언론 자유에 기초한 국가, 특히 피지배자들의 자유를 존중하는 왕정”을 지향했다. 오늘날의 것과 흡사하다. 로마가 후세에 제국의 모델로 자주 거론되는 이유다. 견유학파의 창시자 안티스테네스의 말을 빌려 “좋은 일을 하고도 욕을 먹는 것이 군왕답다”고 한 대목에는 현대 정치인들도 공감할 것이다.

철학을 통해 자신을 구원한 그의 사상을 초기 그리스도교 교부(敎父)들이 받아들였고, 그가 중시한 금욕과 인류애는 중세 유럽을 이념적으로 지배했다. 교황에게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를 연상하게 된 계기가 이 지점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똑바로 서라. 아니면 똑바로 세워질 것이다.” 이 말이야말로 ‘명상록’의 메시지라고 생각한다. 교황이 방한 기간에 한 말도 재해석하면 이 뜻을 담은 게 아닐까. 그렇다면, 우리 사회의 어느 한쪽을 집어서 한 말은 아닐 것이다. 나부터 마음에 깊이 새겨야 한다.

박완규 기획·온라인 담당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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