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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규의후마니타스에세이] 퇴계의 정치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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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01-09 21:30:41 수정 : 2015-01-09 21:30: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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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의 근본 제시한 ‘무진육조소’를 보면
권력의 자기통제가 시급함을 깨닫게 돼
“도가 이루어지고 덕이 서게 되는 것이 정치의 근본입니다.”

조선 성리학의 정통성을 확립한 퇴계 이황(1501∼1570)이 남긴 말이다. 퇴계는 도덕을 앞세운 사림이 사회 주도 세력으로 떠오르던 시절에 이(理)의 능동성을 강조한 이기호발설(理氣互發說)을 제기하면서 국가운영 원칙의 이론적 근거를 정립했다. 성리학적 관점에서는 도덕이 정치사회 질서 형성의 중심 과제가 된다. 정치는 이(理)라는 가치기준에 부합하지 못하는 정치사회를 고르고 바르게 교정해 인간 본성이 실현되는 조화와 화합의 도덕적 공동체를 세우는 것을 목표로 한다.

박완규 기획·온라인 담당 부국장
“임금의 마음은 온갖 일이 비롯되는 곳이고 모든 책임이 모이는 곳이며, 모든 욕구가 서로 드러나고 갖가지 간사함이 서로 꿰뚫는 곳입니다. 만약에 조금이라도 태만하고 소홀해 방종이 따르게 되면, 마치 산이 무너지고 해일이 일어나는 것과 같을 것이니 누가 막을 수 있겠습니까.”

말년의 퇴계가 어린 국왕 선조에게 바친 ‘성학십도’의 한 구절이다. ‘성학십도’를 두고 퇴계는 “요체와 근본을 바로잡아 나라를 다스리는 근원이 다 여기에서 나온다”고 단언했다. 그가 평생 쌓아올린 학문을 풀어낸 결정체라는 평가를 받는다.

같은 해에 쓴 6개 항목의 상소문 ‘무진육조소’에서는 정치가 사사로운 일로 변질되면 혼란과 위기가 초래됨을 경계했다.

“임금이 오직 아첨하고 잘 따르는 자를 구해 써서 일을 이루려 한다면, 그 얻은 것이 간사하여 정치를 어지럽히는 사람이거나 반드시 흉악하여 권력을 멋대로 휘두르는 사람이 되고 말 것입니다.”

이 상소문에서 퇴계는 임금이 성리학을 성실히 익혀 정치의 근본을 바로 세울 것을 호소했다. “무릇 천하를 전해주는 것은 천하를 편안하게 하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다스리라는 말보다 더 다급한 것이 없었습니다. … 이를 어찌 학문과 덕을 이루는 바른 다스림의 근본으로 삼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 큰 근본이 서면 천하의 바른 정치는 모두 저절로 나타나게 될 것입니다.”

정치에서 근본적인 것은 “임금이 몸소 행하고 마음으로 터득한 뒤에 백성이 일상생활에서 행할 윤리를 가르치는 것”이다. 이와 관련해 퇴계는 한 나라의 국체(國體)를 사람의 몸에 비유했다.

“임금은 한 나라의 머리요, 대신은 그 배와 가슴이고, 대간(臺諫)은 그 귀와 눈입니다. 이 셋이 서로 받들고 마음을 합해야 비로소 서로가 제 맡은 바 일을 성취할 수 있습니다. 이는 나라가 지니는 떳떳한 모양이요, 천하 고금이 다 아는 것입니다.”

임금은 정부를 통솔해야 하며, 대신들은 임금의 명령을 집행하되, 대간이 실책을 바로잡을 때 국가가 올바르게 기능한다는 뜻이다. 여기서 대간은 감찰·탄핵을 하는 사헌부와 간쟁을 하는 사간원의 관원을 통틀어 일컫는 말로, 언관(言官)이라고 한다. 이러한 정치는 “마음이 정밀하고 한결같이 되어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고 공정하게” 하여 천하를 편안하게 하는 것이다. 정치는 임금 혼자서 하는 게 아니라, 대신·대간들과 함께 해야 하는 것이라는 엄중한 가르침이다.

새해에 퇴계를 돌이켜 본 것은 우리 사회에서 도덕성이 점점 희박해져가기 때문이다. 지금 정치권에는 대통령에게 따가운 충고를 하는 사람이 없다. 그것은 정치 원로나 중진들의 잘못이기도 하고 대통령의 잘못이기도 하다. 후반기를 바라보는 정권의 앞날이 걱정되는 대목이다. 올해 최우선 국정과제는 경제 살리기가 아니라 권력의 자기통제 시스템 확립일지도 모른다. 권력 주변인들의 도덕적 해이를 꼼꼼히 따져보고 인적쇄신의 결단을 내려야 한다. 이런 점에서 평생 벼슬을 사양하거나 물러나는 일을 반복해온 퇴계가 고봉 기대승에게 보낸 편지에서 한 말이 마음에 와 닿는다.

“선비는 정계에 나아가 물러나는 의를 잊어버렸고, 벼슬을 그만두는 예절을 없애 버려 헛된 명예가 끼친 병폐는 더욱더 심해지고, 물러날 길을 찾기는 더욱 어렵게만 되었습니다.”

박완규 기획·온라인 담당 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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