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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호의문학노트] 다만 씁쓸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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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01-16 21:29:15 수정 : 2015-01-16 21:32: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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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금 우리 사회는 죽음이 앞서는 세상
젊은 작가들 작품에 선명하게 죽음 반영
문학성 평가보다 시대의 그늘에 우울
해마다 정초에 신춘문예 당선작들을 볼 때면 새삼 긴장된다. 문학에 반영된 이즈음 세상은 어떠한지, 그 세상에서 문학에 목을 매는 이들이 숙성시킨 깊이와 감동은 어떨지 설렌다. 2015 신춘문예 단편소설 당선작들에 반영된 작금 우리 사회는 죽음이 앞서는 어두운 세상 같다. 작년에 지나온 끔찍한 죽음의 시간을 생각하면 무리는 아니다.

‘입체적 불일치’(사익찬·경향신문)에는 분열된 가족관계를 배경으로 죽음이 중요한 모티프로 등장한다. 수의사였던 아버지가 불에 타 죽었는데 이복누이가 방화를 저지른 것으로 추정된다. 아버지의 첫 번째 부인이자 이복누나의 어머니였던 여자는 그 누나와 함께 자살을 시도해 자신만 죽었다. 아버지의 두 번째 아내였던 나의 어머니는 두 번 더 결혼을 했고 두 번 또 이혼했지만, 아버지들에게 건네받은 위자료로 이탈리아에서 평화로운 말년을 보내고 계신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수족관’(장성욱·조선일보)에는 죽음이 보다 전면에 부각된다. 죽인 사람의 시체를 트렁크에 싣고 다니며 죄책감을 느끼지 않는 젊은 세대가 주인공이다. 넙치, 개불, 새우로 불리는 남자 셋은 싸우다 우발적으로 매니저를 죽인 뒤 시체를 트렁크에 싣고 매장할 장소를 찾아다닌다. 주검을 싣고 다니면서도 이들이 나누는 대화는 일상적이고 가볍다. 산에 올라가 시신을 묻으려다 등산객 때문에 실패하고 다시 트렁크에 실은 뒤 아침을 맞고 만다. 소설은 “깊은 밤이라는 말과는 다르게, 깊은 아침이란 말이 없는 이유는 이미 감춰야 할 것들을 모두 감췄기 때문”이라고 맺는다.

‘얼룩, 주머니, 수염’(이지·한국일보)은 상대적으로 죽음을 쿨하고 가볍게 대하기는 하지만 그 비중을 무시할 수는 없다. 정신질환자가 아닐까 의심되는 여섯 살 연상의 애인은 죽고 싶다는 말을 자주 한다. 그네의 유일한 가족이었던 고모는 에릭 클랩튼 공연장 화장실에서 목을 매 죽었다. ‘티어스 인 헤븐’을 라이브로 들으면서 죽고 싶었는데 결국 그 가수는 그날 끝까지 그 노래를 라이브로 부르지 않았다. 애인은 고모가 보고 싶어 죽고 싶다.

‘선긋기’(이은희·세계일보)에는 사회적 죽음의 그림자가 보인다. 학생인 화자는 낡은 변두리 아파트로 이사해서 주변을 관찰하는 인물이다. 이 아파트 주민들은 매일 ‘푸릇한 콩이 섞인 밥, 참기름 냄새가 나는 명란젓도 있었고, 고구마튀김, 무생채, 아주 작은 게를 볶은 반찬’처럼 정성으로 만든 음식물을 창밖으로 던지는 주민을 찾기 위해 애를 쓴다. 알고 보니 군에 가서 죽은 아들을 생각하는 어머니의 공양이었다.

아들 생전에는 바빠서 제대로 먹이지 못했다는 어머니의 뒤늦은 대사. “너는 학생이니까 모르겠지만 원래 객지 나간 식구 밥은 항상 따로 해놓는 거다. 그래야 타지 나가서도 밥 잘 얻어먹고 무사하고 그러는 거야. 요즘 사람들은 안 그러지만 옛날 사람들은 다 그렇게 식구 챙겼어.” 차가운 객지에서 숨진 자식들을 떠올릴 세월호 유족이 읽으면 가슴이 미어질 대사다. 이은희씨는 당선 소감에 “참담한 하늘 아래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면 아픔과 슬픔을 느낀다는 사실에 온전히 주목하는 것이라도 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썼다.

문학작품 속 죽음을 분석해 ‘죽음의 얼굴’을 펴낸 최문규 교수는 “끊임없이 기억해야만 하는 점은 절대적인 악(죽음을 알지 못하고 죽음에 대해 더 이상 아무것도 알지 않으려 하는 절대적인 삶)이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이라는 데리다의 글을 인용하면서 “아무런 문제 없는 밝고 건강한 삶이 강조될 때 그것은 모든 위선과 고통을 은폐함으로써 종국에는 죽음을 끊임없이 강요하는 절대악처럼 작동할 수 있다”고 책에 썼다. 넓은 의미에서 문학작품은 그런 위선적인 삶을 의문시하는 방식이라는 얘기다.

죽음을 다루는 문학의 순기능을 부정하는 건 아니다. 당선작마다 문학으로만 보여줄 수 있는 여운도 상당하다. 다만 젊은 문예에 선명하게 반영되는 작금 우리 사회 정서가 씁쓸하고 쓸쓸한 것이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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