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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완식의미술살롱] ‘색의 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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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01-30 21:16:50 수정 : 2015-01-30 21:38: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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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은 다른 색을 통해 더 빛나는 색깔 보여
자기색만 고집하는 정치권 생각해 볼 만
종종 원로작가들의 작업실을 찾게 된다. 오랜 세월 터득한 나름의 노하우를 듣기 위해서다. 그럴 때마다 빠지지 않고 묻는 것이 색에 대한 것이다. 색을 어떻게 쓰는 것이 좋겠냐는 원론적인 질문에 대부분 난감해 하는 경우가 많다. 가장 기본적인 것이기에 그렇기도 하지만 사실 이 질문에 답을 찾기란 그리 쉬운 일이 아니다.

작가들이 색을 사용하는 것쯤이야 식은 죽 먹기가 아니냐고 생각하기 쉽다. 언뜻 보면 별것 아닌 것 같아도 실제로 해보면 여간 어려운 것이 아니다. 자신의 감각과 반복적인 작업을 통해 겨우 터득하는 성질이 강하기 때문이다. 나름의 색깔 있는 그림은 그렇게 만들어지는 법이다.

대부분 작가들은 색이 어렵다고 말한다. 이들은 너무 많은 색을 산만하게 사용하고 있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어지러운 입간판들이 즐비한 도심 속 빌딩 같은 모습이다. 부분 부분은 어떨지 모르지만 잡다하기 그지없다. 중심 색을 기준으로 색을 한정하는 것만으로도 문제는 해결되게 마련이다.

편완식 미술전문기자
어떤 색을 중심 색으로 드러나게 하고 싶으면 다른 색을 통해야 한다. 특정 색만 많이 쓰면 실패하게 된다. 색의 가장 기초적인 기준인 보색관계를 이용하는 것도 하나의 예라 할 수 있다. 색은 쪼개면 쪼갤수록, 섞으면 섞을수록 다양해진다. 일반적으로 색은 따듯한 계열과 차가운 계열로 나뉜다. 초록 파랑 같은 차가운 계열이 있고, 빨강 노랑 등의 따듯한 계열이 있다. 이들은 나란히 놓으면 서로 뚜렷하게 보이는 보색관계에 놓이게 된다. 몬드리안이 즐겨 쓴 기법이다.

단일 계열의 색만 쓰면 탁해지기 쉽다. 색은 혼합을 통해서 탁해지기도 하고 맑아지기도 하는 천의 얼굴을 가지고 있다. 빨간 집에 파란 창틀을 하면 보색관계로 빨간 집이 더 빨갛고 화려하게 보이게 된다. 맛있는 빨간 사과를 그릴 때도 마찬가지다. 파란색과 녹색을 넣으면 사과가 탁해질 것 같지만 실제로는 더 먹음직스러운 빨간 사과가 된다. 맛있는 사과를 그리기 위해서는 빨간색뿐만 아니라 파란색과 녹색의 전혀 다른 계열의 색이 필요한 것이다. 빨강을 더 빨갛게 해주는 것이 빨간색이 아니라 대비되는 색이라는 점이다.

주의할 점은 서로 색이 뭉개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탁한 색이 된다. 명도의 대비로 선명하게 하는 방법도 있다. 감칠맛 나는 조연을 거느리면 주연이 빛이 나는 이치다.

한 원로작가는 작가들이 색을 사용하는 것을 정치인의 정치행위에 비유하곤 한다. 요즘 우리 정치권을 색의 관점에서 들여다보면 실감이 난다. 최고 통수권자를 비롯해 주변인들은 왜 자신들의 진정성을 몰라주냐고 아우성만 치는 모습이다. 자신들의 색이 선명하게 부각되지 못하는 것에만 불만이 크다. 그런데도 국민들은 등을 돌리고 있다. 국민의 색만이 자신들의 색을 부각시킬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지금은 짐이 곧 국가인 군주시대가 아니다. 군주가 모든 가치를 독점하는 시대가 아니라는 점을 명심해야 한다. 국가만을 위해 모든 것을 바치고 있는데 왜 그러냐는 식은 곤란하다. 선명성도, 애국도 독점의 대상이 아니라 국민과 나눠야 할 대상이다. 불통은 가치독점 의식에서 나온다. 색은 다른 색을 통해서만 빛난다는 사실을 깊게 새길 필요가 있다.

국민들은 여전히 자신들만의 색으로 철옹성을 쌓는 구중궁궐의 모습에 싸늘한 시선을 보내고 있다. 같은 색, 그것도 뭉개지면 더욱 탁하게 비쳐진다는 점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한 가지 색으로 캔버스를 종횡무진 떡칠을 한다면 지루하고 볼품없는 화폭이 될 것이다. 보는 재미는 사라지고 짜증만 배가되는 작품이 될 것이다.

색의 중심을 잡아주는 것은 작가의 몫이다. 이를 위해서는 다른 계열의 색과 더 잘 놀 수 있어야 한다. 이 지점에서 노자의 도덕경에 나오는 구절 ‘도가도 비상도(道可道 非常道)’를 떠올려 본다. ‘색가색 비상색(色可色 非常色)’이란 조어도 성립될 듯싶다. 자신의 색만을 색이라 할 때 그 색은 더 이상 유의미한 색이 아니다. 그것이 천도다.

편완식 미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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