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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호의문학노트] 문학진흥법은 유죄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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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03-20 21:13:15 수정 : 2015-03-20 22:16: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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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융성 외치면서 국립문학관 설립에 시큰둥한 공직자들
中·日은 정부서 앞장… 또 예산부족 핑계로 좌초되는 일 없기를
베이징 중국현대문학관 정원에 들어서면 50톤이 넘는 거대한 돌병풍을 마주하게 되는데 그 돌에는 “우리에게는 얼마나 풍부한 문학의 보고(寶庫)가 있는가. 그것은 우리를 지지하고 교육하고 격려하여, 우리를 더욱 선량하고 순결하게 하며, 타인에게 필요한 사람으로 만든다”는 바진(巴金·1904∼2005)의 글귀가 새겨져 있다고 한다. 만 100세에 이르러 사망한 중국 현대문학의 거두 바진이 국립현대문학관을 중국 정부에 제안한 것은 1981년 2월 14일자 홍콩 문보(文報) 기고문에서였다. 중국작가협회는 즉각 회의를 소집하여 중앙정부에 사업 착수를 건의했고, 1985년 3월 26일 성대한 중국현대문학관 개관식이 열렸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중국현대문학관에서는 문학의 정치적 관점이나 예술적 유파에 상관없이 20세기 이래 신문학 자료를 모두 수집하고 있다. 현재 이곳에는 기념품, 서적, 잡지, 각종 신문 자료, 육필원고, 사진, 녹음테이프, 비디오테이프를 비롯한 수십만점의 자료가 보존돼 있다. 이것만으로도 부족해 중국현대문학관 신관을 지어 2000년 5월 개관했다. 이 문학관은 단순한 자료 보존 기능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다양한 학술활동과 국내외 여러 계층과의 광범한 교류를 진행해 문학이 국민 정서에 기여하는 본래적 기능을 충실하게 수행하고 있다.

중국현대문학관은 러시아국가문학박물관은 물론 일본 근대문학관을 모델로 삼았다. 일본은 이미 문단, 학계, 언론계의 중지를 모아 1962년 근대문학관설립준비회를 결성해 1967년 일본 최초의 근대문학관을 도쿄 시내에 개관했다. 메이지 이후의 근·현대문학 관련자료인 도서, 잡지, 신문 외에도 특별자료로 분리되는 원고, 서간, 필묵, 일기, 공책, 유품 등 그 종류가 다양하고 그 수가 125만 점에 이른다. 전시 형태도 최첨단이다. 일본도 중국처럼 해마다 증가하는 자료로 인해 수장 능력이 한계를 보이자 2007년 9월 지바현 나리타 시에 분관을 개관했다.

2015년 3월 현재, 대한민국에 국립문학관 같은 건 없다. 국립 미술관은 과천에 이어 서울시내에도 지었고 수장고까지 지방에 만드는 판이고, 영화제 하나에만 매년 120억원을 투자한다. 각종 문화예술에 관한 진흥법이 많지만 문학은 빠져 있었다. 문인들이 그동안 국가의 지원을 요청하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예술이 숙명적으로 안고 있는 불온성이야말로 바로 문학의 정체성이었다. 시인인 도종환 의원이 ‘문학진흥법안’을 추진해온 맥락은 모든 문화산업의 토대인 문학의 소외를 더 이상 방치할 수 없다는 생각 때문이다. 이 법안의 핵심은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주도로 5년마다 문학진흥기본계획을 수립하고 시행하기 위해 문학진흥정책위원회를 두는 것과 15조에 명기한 ‘국립근대문학관 설립’이다.

문학진흥법이 순조롭게 통과될지는 미지수다. 이미 1997년 논의가 있었지만 구제금융 국면에서 흐지부지된 사례가 있다. 지난 13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열린 전문가 간담회 자리에서 문체부 실무 국장은 공식 입장은 아니라는 전제 아래 재정 부담이 수반되는 국립근대문학관 설립 조항은 정부의 반대에 부딪힐 게 뻔하니 빼고 가야 쉽게 통과될 수 있다고 충고했다. 그는 우선 국립도서관 자료센터를 보강해 천천히 추진하는 방안이 실무자들의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이 말에 참석 문인 중 한 명은 “문학진흥법이 문학에 대한 특별한 지원이라고 생각하는 건 오해”라며 “문학이 무너지고 있는 현상은 한국 전체의 문화 기반이 허물어진다는 차원에서 고민해야 한다”고 애써 흥분을 가라앉힌 목소리로 말했다. 주체적으로 추진을 해도 모자랄 문화 담당 공무원조차 기본 정신을 모르고 소극적 태도로 임한다는 ‘탄식’도 이어졌다.

국립근대문학관 설립 조항을 담은 문학진흥법안은 어제 국회에 최종 제출됐다. 동아시아 3국 중 유일하게 제대로 된 근대문학관 하나 없는 나라에서 모처럼 문학이라는 이름의 정신적 지주 하나 세우자는데 예산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좌초되지는 않을 터이다. 자원 확보라는 명분으로 수조 원을 뿌리고 멀쩡한 강을 헤집어 수십조 원을 쏟아붓는 통 큰 대한민국 아니던가.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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