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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완식의미술살롱] ‘중간색’이 필요한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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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05-01 20:48:58 수정 : 2015-05-01 21:46: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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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된다’ vs ‘된다’ 원색의 깃발 사이에
폭넓은 중간색지대 가꿔 나갈 때
‘국가의 그림’은 더욱 풍성해질 것
화가들이 그림을 그릴 때 가장 신경 쓰는 부분은 중간색의 사용이다. 원색만을 썼을 때 생기는 색들의 충돌을 막고 조화롭게 해주기 때문이다. 다양한 스펙트럼의 중간색들이 원색들의 가교 역할을 할 뿐 아니라 화면에 깊은 맛까지 더해준다. 중간색을 잘 쓰느냐 못 쓰느냐에 따라 그림의 품격이 달라진다는 얘기다. 그러기에 오랜 세월 작업해 온 작가라 하더라도 중간색 사용에 신경을 쓰게 마련이다.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감으로 화폭을 꾸려 나가지만 늘 어려움을 느낀다. 이루어질 수 없는 짝사랑 같다는 말까지 하는 작가들도 있다.

사실상 그림의 시작과 끝은 중간색 사용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간색을 잘 활용한 예는 고려불화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선명도 높은 원색 사이로 절제된 듯한 중간색이 포진하고 있다. 원색 사이사이에 중간색이 효과적으로 삽입되고 있는 형국이다. 화려한 것 같지만 튀지 않고 오묘함을 전해주는 비법이다. 심오한 불법을 형상화하는 데 중간색이 톡톡히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최후의 인상주의 화가’로 일컬어지는 프랑스 화가 피에르 보나르는 중간색의 달인으로 정평이 나 있다. 자신의 아내가 나신으로 욕조에 들어가 있는 모습 등 목욕을 하는 장면을 그린 작품에서 중간색 사용의 전형을 보여준다. 청결 결벽증이 있었던 그의 아내는 늘 씻고 닦았다. 보나르는 그런 아내에 대해 연민과 안타까움을 가지고 있었다. 아내에 대한 복잡 미묘한 감정을 중간색으로 화폭에 풀어냈다. 화면 전체에 보나르의 애잔한 감성이 부유하는 듯하다. 일부에서는 관음증적이라고까지 평가할 정도로 화폭이 사람들의 시선을 강력하게 끌어들인다. 중간색의 힘이다. 폭넓은 감성적 디테일이 중간색을 통해 구현되고 있는 모습이다. 왜 작가들이 중간색을 현실과 본질에 더 다가서게 해주는 색이라고 말하는지 그 이유를 알 것만 같다.

심지어 중간색의 효용은 안경테 색에서도 적용된다. 안경테의 최고 미덕은 사람의 오묘한 미소를 형상화하는 데 있다. 그러기 위해 깊이 있는 중간색을 사용한다. 예를 들어 보랏빛을 띤 와인색이나 은빛이 도는 갈색 등이 여기에 해당된다.

어쨌건 오랜 회화의 역사에서 살펴보면 모든 지역과 장르에서 하나의 평면 위에 색을 다양한 방법(병치, 혼합, 중복)으로 혼합해 사용해 왔다. 바로 중간색의 구현이라 할 수 있다. 이처럼 장황하게 중간색을 이야기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요즘 우리 사회를 보면 중간색은 실종되고 여전히 선명성을 내세우는 원색만 나부끼는 것 같아서다. 일제식민지와 6·25전쟁, 산업화와 민주화 투쟁 시기를 거치면서 우리도 모르는 사이에 단순한 원색의 강박증에 빠져버린 것이 아닌가 반문해 보고 싶을 정도다. 어떤 문제도 예전처럼 ‘맞다’와 ‘틀리다’의 단순 원색으로 가늠할 수 있는 게 하나도 없는 시대가 됐다. 

편완식 미술전문기자
어쩌면 ‘안 된다’와 ‘된다’는 허구의 원색이다. 전쟁에서 이기고 독립과 민주화를 위한 ‘깃발’인 한에서만 유효했었다. 우리가 평소 발을 딛고 사는 세상은 중간색 지대다. 우리 사회 구성원 간의 이해충돌뿐 아니라 남과 북, 한반도에서의 열강의 이해 대립 등 자칫 원색이 나부끼기 쉬운 환경에 다시금 직면해 있다. 이럴 때일수록 원색지대 사이에 존재하는 폭넓은 중간색 지대를 가꿔나갈 때 해법이 생기고 확고한 설 자리가 마련될 것이다.

‘맞다’와 ‘틀리다’의 사이에 존재하는 수많은 중간색을 찾아 나설 때 ‘국가의 그림’이 더욱 풍성해지고 격이 있게 될 것이다.

이제 우리 모두 어떻게 하나의 평면 위에 조화롭고 풍성한 그림을 그려나갈 것인가 고민해 볼 때다. 우선 해야 할 일은 팔레트에 원색을 풀어 중간색을 만드는 일이다. 거기엔 되고, 안 되고가 존재하지 않는다. 다양한 중간색을 붓에 발라 칠해 나가다 보면 어느새 화폭은 풍요로워질 것이다. 원색의 감옥에서 탈출할 때다.

편완식 미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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