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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日협정 당시 식민지배 '애매한 봉합'… 과거사 갈등 되풀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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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06-15 06:00:00 수정 : 2015-06-15 06: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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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수교 50주년] <1> 양국 애증의 반세기
오는 22일은 한·일 기본조약이 체결돼 양국 국교가 정상화된 지 50년을 맞는 날이다. 양국은 우여곡절 속에서 관계를 발전시켜 왔으나 일본군위안부, 일본의 역사교과서 문제 등 해결해야 할 난제가 수두룩하다. 본지는 5회에 걸쳐 한·일 국교 정상화 이후 애증(愛憎)의 반세기를 되짚어 보고 한·일관계의 새로운 50년을 위해 나아갈 방향을 모색해 본다.


“왜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일본군위안부) 피해자가 여기(한국에) 있는데 미국에 갔느냐. 우리에게 직접 사과해야지.”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에 위치한 위안부 할머니 보호시설인 ‘나눔의집’에 있는 이옥선(87) 할머니가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그는 경상남도 울산(현 울산광역시)에서 ‘식모’생활을 하다 15세에 일본군에 강제로 끌려가 3년간 만주 연변에서 참혹한 생활을 했다고 한다.

한·일 관계는 1910년 이후 온갖 풍상을 겪어 왔지만, 경기도 광주시 퇴촌면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 보호시설인 나눔의집에서는 그 파란만장한 시간이 정지돼 있는 느낌이다. 광복 70주년, 한·일 국교정상화 50주년이 얼마 남지 않은 지난 11일 나눔의집에 설치된 돌아가신 피해 할머니 흉상들이 지난한 세월을 회고하듯 말없이 허공을 바라보고 있다.
광주=남제현 기자
지난 11일 찾은 나눔의집에서는 청하(淸夏)의 햇살 사이로 소리 없는 원한이 아우성쳤다. 이옥선 할머니의 고난한 세월이 시작됐던 15세쯤 돼 보일까. 위안부역사관의 앳된 소녀상(像)에 새겨진 글귀가 발목을 잡는다. ‘꽃다운 나이에 일본군에게 끌려가 짓밟혔다. 구천을 떠돌던 슬픈 넋도 이제 승천하게 하자.’

나눔의집은 질곡의 한·일 현대사를 보여주는 역사의 현장이다. 1945년 광복됐다고 하나 빛을 보지 못하는, 65년 정상화됐다고 하나 비정상인 양국 관계의 모순이 응축된 곳이다. 기자가 찾은 이날, 나눔의집에 머물던 김외한(향년 80세), 경북 포항에 있던 김달선(〃91세) 할머니 두 분이 각각 지역 병원에서 조용히 숨을 거뒀다. 위안부 할머니 생존자는 이제 50명이다.

한·일 양국은 65년 국교정상화 후 크고 작은 파동에 휩쓸려 왔다. 1973년 김대중 납치사건, 74년 재일동포 문세광에 의한 박정희 대통령(이하 당시 직책) 저격미수사건(육영수 여사 피격 사망), 82년 제1차 교과서 파동, 91년 위안부 피해 김학순 할머니의 첫 증언으로 본격화된 위안부 갈등, 97년 일본 새역모(새로운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 창설에서 비롯된 제2차 교과서 파동, 2005년 일본 시마네(島根)현의 ‘다케시마(경북 독도의 일본식 명칭)의 날’ 제정, 지난해 고노담화(위안부 동원의 강제성 인정) 검정 파문 등이 대표적이다.

한·일 갈등 대부분이 양국 관계를 정상화했다는 65년 한·일 기본조약과 청구권 협정에서 비롯된다는 것은 역사의 아이러니다. 양국이 65년 체결된 조약과 협정을 통해 식민지배 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 ‘미완의 정상화’ 역사가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세종대 호사카 유지 독도종합연구소장은 “65년 기본조약과 협정 체결 시 이견이 있던 부분이 현재 분출되고 있다”며 “한·일 양국이 각자 입장에서 해석할 수 있도록 애매하게 남겨뒀던 부분이 역사인식에 그대로 반영돼 갈등이 계속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2000년대 중국 굴기(떨쳐 일어남)에 이어 2009년 일본과 중국의 국내총생산(GDP) 규모가 역전되며 한·일 갈등은 더욱 격화되고 있다. 중국의 부상에 대한 불안감과 1992년 한·중 수교 이후 대중(對中) 친화노선을 추구하는 한국에 대한 섭섭함이 결합돼 일본의 대한(對韓) 정책이 신경질적이라 할 정도로 공격적 양상을 띠고 있다.

우여곡절도 적지 않지만 긴 호흡에서 보면 양국 관계는 전반적으로 발전하고 있다 . 양기호 성공회대 일본학과 교수는 “65년 수교 시 한해 양국 교류 인구는 고작 2만명에 불과했으나 지금은 500만명에 달하고 교역규모는 수백 배, 수천 배 늘었다”며 “양국 관계도 과거에는 상하관계이거나 불평등했으나 지금은 균형 잡힌 일종의 라이벌 관계로 발전했다”고 평가했다. 그러면서 특히 “기본적으로 아시아 국가 중 한국과 일본만이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이고 두 나라는 시장경제, 자유민주주의를 공유하고 있다”며 “서로 공감대를 형성하고 연대할 수 있는 한·일 공동 글로벌 리더십을 발휘할 수 있는 이웃”이라고 강조했다.

지리적으로 근접한 양국은 정치적, 경제적으로도 일의대수(一衣帶水·옷의 띠만큼 좁은 강처럼 양국 가까운 양국 관계)이자 순망치한(脣亡齒寒·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의 관계일 수밖에 없다. 한·일관계도 우호적 사례를 찾으면 없지 않다. 그중 하나가 김대중 대통령과 오부치 게이조(小淵惠三) 총리의 노력이다. 두 사람은 1998년 도쿄에서 열린 한·일 정상회담 시 ‘21세기를 향한 새로운 한·일파트너십 공동선언’을 통해 일본 식민지배에 대한 통절한 반성·사죄의 바탕 위에서 미래로 함께 나아가자고 선언했다. 2001년 일본 지하철에서 취객을 구하려다 숨진 고(故) 이수현씨, 경쟁자로 출발해 동반자가 됐던 2002년 월드컵축구대회 공동개최, 2012년 12월 아베 총리 집권 전 일본에 형성됐던 한류도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다.

특히 G2 시대에 양국이 더 적극적으로 미래를 향해 소통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이원덕 국민대 일본학연구소장은 “21세기의 동북아는 미·중이 중심이 되는 질서로 가고 있다”며 “공동운명의 한국과 일본은 협력을 통해 미·소 냉전시대의 서유럽처럼 평화적인 공동번영을 이뤄야 한다”고 말했다.

염유섭 기자 yuseob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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