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편완식의미술살롱] 자연 미술관

관련이슈 편완식의 미술살롱

입력 : 2015-07-24 20:23:29 수정 : 2015-07-24 20:23:29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광활한 자연은 최고의 미술관이자 감성 선행학습장
아이들 손잡고 산과 들로 나가 마음의 분진 씻어보자
본격적인 방학철이 돌아왔다. 미술관엔 으레 그랬듯이 방학 숙제와 부모의 성화에 내몰린 아이들이 또다시 몰려들 것이다. 그런 모습을 볼 때마다 안스러운 생각이 든다. 사각의 교실 공간에 갖혀 지낸 아이들, 더군다나 아파트라는 규격화된 주거공간에 움츠러들었던 동심을 다시금 미술관의 화이트 큐브에 가둔다는 미안한 마음에서다. 하지만 미술관들은 올해도 여름방학 프로그램을 쏟아내며 학무모들의 교육열을 자극하고 있다.

이맘때면 아이들에게 어떤 전시를 보여주어야 좋으냐는 질문도 덩달아 쏟아져 들어온다. 그럴 때마다 하는 말이 있다. 자연만큼 좋은 미술관이 없으니 애들 손잡고 인근 산이나 들로 나가 보라고. 산 언덕배기에 올라 아이와 함께 드러누워 하늘을 쳐다보았느냐고 반문한다. 아파트 숲에 갇혀 좁아 보였던 하늘이 아니던가. 장대하게 펼쳐진 ‘하늘 캔버스’를 보여주는 것만으로도 아이들의 가슴속엔 그림이 되기 때문이다. 

편완식 미술전문기자
손잡고 산 정상에 올라 저 멀리 펼쳐진 산세를 바라보게 하는 것도 좋다. 멀리 있는 산들은 청색으로 보이고 점차 윤곽선을 잃어가면서 하늘 색을 띠는 것을 볼 수 있다. 원거리 물체는 본래 색의 밀도를 잃어버리고 그 배경과 유사한 색을 띠게 마련이다. 산도 하늘이라는 광대한 자연환경에 스며들고 있는 것이다. 물론 실제 산은 청색이라기보다 녹색이다. 가을과 겨울엔 갈색과 회색일 것이다. 대기나 안개의 개입으로 일어나는 ‘공기원근법’이라고 일컬어지는 현상이다. 어떤 미술이론이나 명화보다 즉각적으로 다가온다. 이런 눈으로 한 폭의 산수화를 감상하게 한다면 여느 평론가 못지않을 것이다.

숲 속과 강가를 거닐면서 오붓한 공간에 한두 시간 아이와 머물러 보는 것도 권한다. 아이들은 태양의 위치에 따라 나무와 물 빛이 시시각각 변해가는 모습을 눈으로 담으면서 인상파 화가가 될 것이다.

아이들에게 가장 좋은 감성교육 재료가 빛이 만들어 내는 색이라는 말이 있다. 모든 시각적 인상 중에서 우리에게 가장 강한 감성적 반응을 불러일으키는 것이 색이기에 그렇다. 색은 우리를 기쁘게도 할 수 있고 우울하게 만들 수도 있다. 우리의 감성적 요소들이 색상으로 표현되고,색치료 요법이 각광 받는 이유다.

이런 맥락에서 얼마 전 예술이전당에서 열렸던 ‘마크 로스코’전은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준 전시였다. 혹자는 감흥이 전혀 없었다고 하고, 어떤 이는 작품 앞에서 눈물을 쏟았다고 했다. 여러 번 전시를 본 이들도 많았다. 사실 로스코는 ‘색면 추상’이라 불리는 추상표현주의의 선구자로서 사각의 색면 서너 개로 캔버스를 꾸민 작가였다. 언뜻 보면 이것도 그림인가 할 정도다.

재미있는 현상은 어린 시절 자연 속 추억이 있는 이들에겐 로스코 작품이 각별했다. 어느 순간 가장자리 쪽으로 부드럽게 스며든 색면들이 캔버스 위를 부유하듯 다가왔다. 두둥실 공중에 떠 가는 구름이었다. 어린 시절 고향 하늘에서 본 풍경이다. 세월의 덧없음과 이제 다시 함께할 수 없는 이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일순간 마음속 깊은 곳에 자리했던 감성의 문이 열리면서 서서히 복잡한 감정 속으로 빠져들었다. 눈물이 터지면서 온갖 마음의 분진이 사라졌다. 참선과 명상, 씻김굿 같은 것이었다.

로스코는 색채로 인간의 근본적인 감성을 표현하려 애를 썼다. 극도로 절제된 색면으로 숭고한 정신과 내적 감흥을 불러일으킨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의 작품으로 이뤄진 공간이 채플로 불리는 곳이 있을 정도다.

로스코에게서 자연은 미술 교과서였다. 아니 모든 작가들이 그렇다. 우리는 자연 속에서 감성을 키우고 표현한다. 자연은 우리를 존재하게 하는 환경이기 때문이다. 로스코 작품이 그저 엉성하게 색칠한 모습으로만 비쳤다면 스스로 ‘감성 문맹자’가 아닌지 생각해 볼 일이다.

올 여름방학만큼은 아이들에게 미술관이 아닌 자연에서 놀게 만들자. 적어도 아이들을 미술관으로 어거지로 끌고 가지는 말자. 학기 중 주말에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이 아닌가. 미술, 아니 ‘감성 선행학습’은 자연이라는 교과서만큼 좋은 것이 없다.

편완식 미술전문기자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리센느 메이 '반가운 손인사'
  • 리센느 메이 '반가운 손인사'
  • 아일릿 이로하 '매력적인 미소'
  • 아일릿 민주 '귀여운 토끼상'
  • 임수향 '시크한 매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