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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호의문학노트] 충만한 암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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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08-07 21:54:12 수정 : 2015-08-07 21:56: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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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 방해 받지 않는 완벽한 어둠 속에서 우리가 ‘진실’을 보듯
독서란 ‘정적의 텐트’
그 속으로 빠져들어 여름을 ‘망각’해 보자
눈을 감는다고 매번 똑같은 어둠을 만나는 건 아니다. 지금 감아 보라. 주변 조명에 따라 빛은 감은 눈 속으로도 틈입해 희미한 잔영을 만들어낸다. 환한 빛 속에 눈을 감으면 연록 빨강 주황 노랑의 잡다한 띠들이 순일하지 못한 어둠 속을 떠다닌다. 명멸하는 밤의 네온사인 앞에서 눈을 감으면 어둠도 함께 춤을 추며 빛처럼 굴 것이다. 눈을 감았을 때나 떴을 때 똑같은 검은 어둠, 그 완벽한 빛의 무덤에 들어야 우리는 비로소 순일한 암흑에 직면한다. 아직 의식이 남은 상태로 매장을 당했을 때, 구덩이 속으로 흙을 퍼부어 지상의 뚜껑을 닫았을 때 직면할 그런 완벽한 칠흑 어둠 말이다.

‘어둠 속의 대화’라는 특이한 체험을 하기 전까지는 그런 어둠을 한 번도 만나지 못했던 것 같다. 사고로 시력을 잃은 이를 안타까워하던 덴마크의 한 교수가 그들의 입장을 대리 체험하기 위해 시작했다는 이 프로젝트는 세계 160여개 도시에서 진행 중이라고 한다. 한국에도 이미 3년 전에 들어와 서울 신촌에서 진행하다가 최근에는 북촌에 전용관을 지어 운영하고 있다. 처음 어둠 속에 들어서면 숨 막힐 듯한 답답함에 금방 돌아서서 뛰쳐나가고 싶은 충동과 싸워야 한다. 문명의 조명에 시달리는 현대인에게 완벽한 어둠은 한 번도 체험하지 못한 공포이기도 하다. 100분 동안 진행되는 이 체험의 여로에는 모든 빛을 내는 발광체는 빼놓고 동참해야 한다. 휴대전화는 물론이고 안경도 벗어두고 출발한다. 어차피 안경은 쓰나 마나 보이는 건 암흑뿐이므로 구차한 액세서리일 뿐이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어둠 속에서 갈등하고 있을 무렵 ‘로드 마스터’의 목소리가 들린다. 평생 어둠 속에서 살아온 그는 눈이 보이는 것처럼 자상하게 일행의 길을 잡아준다. 목소리만 들리고 어디선가 선선한 바람도 불어오고 배를 타고 흔들리며 물보라까지 맞다 보면, 체험에 동참한 이들은 어둠 속에서 각자 자신만의 풍경을 상상하게 된다. 그곳의 풍경을 두고 아무리 각자 이러저러하다고 우겨본들 어둠 속 세상에서 진실은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각자 생각한 것이 그곳의 진실일 따름이다.

눈을 뜨고 본다고 진실이 하나일 수 있을까. 빛의 작용에 따라, 보는 각도에 따라, 시선의 높낮이에 따라 보이는 게 다른데도 사람들은 자신이 두 눈으로 직접 보았다는 이유만으로 큰 목청으로 자신만의 진실을 앞세운다. 정작 그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준거는 당장 눈앞에 보이는 것보다도 살면서 쌓아온 편견일 가능성이 크다. 편견이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니다. 긴급한 결정이 필요할 때 그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쉽게 동원할 수 있는 잣대로 편리하게 기능해 위험을 신속히 피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여전히, 문제의 핵심은 보이는 것만이 실체의 전부가 아니라는 단순한 사실이다. 어찌 생각을 가꾸느냐에 따라 삶의 수준과 질이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이야말로 부인하기 힘든 진실이다.

에둘러 왔다. 다독가로 소문난 장석주 시인은 최근 펴낸 ‘일요일의 인문학’에서 독서 행위를 이렇게 정리한다. “독서는 정적이라는 텐트를 치고 그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책에 몰입하면 어느 순간 정적이 날개를 접고 내 전 존재를 덮는다. 그때 나는 자연스럽게 망각을 향하여 도약한다. 인생의 도약은 고요 속에서 이루어진다.” 정신의 온전한 어둠, 그 망각과 고요 속에 펼치는 암흑의 스크린! 이 스크린 속으로 스며드는 체험이야말로 영혼을 남모를 기쁨으로 충만하게 이끄는 지복이 아니겠는가.

연일 폭염주의보를 알리는 긴급재난문자 사이렌이 들리는 여름의 정점이다. 에어컨 아래만 있다가는 감기 걸리기 십상이고 바깥에 나서면 숨이 막힌다. 일을 해야만 하는 인부들은 쓰러지고 연로한 이들은 사망에까지 이르는 가혹한 계절의 터널을 통과하는 중이다. 계곡과 바다를 찾는 전형적인 피난이 있긴 하나, 움직이는 동안 지레 무너질 수 있다. 온전한 어둠 속에 자신만의 고요한 스크린을 펼치는, 독서라는 ‘정적의 텐트’ 속으로 가는 피서는 어떠한가.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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