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섯 가족 1·2·3대 34명 ‘통일체험’
6·25때 부모와 헤어져 한이 맺혀
TV서 전쟁얘기 나오면 채널 돌려
생사 모르는 남편 65년간 기다려
고향땅 가까운 판문점 찾아 절규
애타는 그리움… 사연마다 눈물 절로 #1. 권경자(72)씨의 고향은 금강산이다. 여섯 살 때 할머니집에 놀러갔다 6·25전쟁이 터져 부모님과 헤어졌다. 권씨는 “어머니가 살아 계시다면 95세나 96세쯤 될 것”이라며 “1·4후퇴 때 동해 묵호항으로 피란오며 부모님과 완전히 연락이 끊기고 65년 동안 소식을 기다리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고는 목이 메여 더 이상 말을 잇지 못했다. 금강산관광이 이뤄지던 시절 권씨는 두 차례 ‘관광객’으로 고향인 금강산을 찾았다. 권씨는“2001년 금강산관광을 갔는데 장전항에 배가 닿을 때 같이 있던 우리 이모가 저기가 너희 집터라고 알려주는 순간 어렴풋이 어릴 적 기억이 되살아났다”며 “뒷동산 복숭아나무며 방파제 근처 수산물 공판장이며 금강산의 산천초목은 그대로 남아 있었다”고 말했다. 권씨는 “명절 때마다 바닷가에 나가 엄마·아빠가 보고 싶어 많이 울었다”며 “나이가 들었어도 여전히 엄마·아빠가 보고 싶고 가슴속에 한이 맺혀 있다”고 했다.
#2. 신정숙(69)씨 아버지는 6·25전쟁 당시 집을 떠났다. 울음을 그치지 않는 네 살짜리 딸 손에 돈 100원을 쥐어 주고 노래를 불러줬던 모습이 아버지에 대한 그의 거의 유일한 기억이다. 신씨는 “아버지가 집을 떠나면서 내가 자꾸 우니까 돈 100원을 주고 노래를 불러줬던 기억이 희미하게 남아 있다”며 “당시 교도소에서 근무했던 아버지가 제주도로 죄수를 이송하는 길에 북한군에 끌려갔다고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살아 계시다면 88세인데 생사 확인이라도 했으면 좋겠다”고 간절한 소망을 말했다. 생사는 알 수 없으나 신씨는 아버지가 집을 떠난 날짜에 맞춰 제사를 지낸다고 한다. 남편 이재원(72)씨는 “올해가 각별한 의미가 있는 광복 70주년이니 남북한이 잘해 봤으면 한다”고 말했다.
지난달 25∼26일 경기도 연천에 위치한 한반도통일미래센터에서 ‘제1차 이산가족 통일체험 빌리지’ 행사에 참여한 이산가족들이 통일을 바라는 마음을 담아 만든 가족 티셔츠와 캐릭터 등을 손에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연천=이재문 기자 |
권경자씨는 전쟁통에 헤어진 어머니 대신 자신을 키워 주고 뒷바라지를 해준 이모 김금순(89), 김금자(78)씨와 함께 밤늦은 시각까지 대화의 꽃을 피웠다. 신정숙씨의 손녀딸인 이유경(13)양은 “학교에서 도덕시간에 통일에 대해 배우는데 (이산가족인) 할머니가 계시니까 아무래도 모둠활동을 할 때마다 북한을 주제로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며 “남북통일 포스터 그리기 좀 그만하게 하루빨리 통일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금예(87) 할머니는 생사를 알지 못하는 남편을 아직까지 기다리는 중이다. 아들 김형섭(69)씨는 고향땅과 가장 가까운 판문점을 몇 차례 방문했다고 한다. 이번 행사에서 같은 고향 사람인 이완정(72)씨와 알게 됐으며 두 사람은 서로 고향집 주소와 예전 기억을 더듬어가며 같이 아는 친척이나 친구나 있는지 한참 동안 얘기를 했다. 서로 처음 보는 사이였지만 이산의 아픔이라는 동변상련을 지닌 이들이어서 오랫동안 마음에 담아 뒀던 고향과 헤어진 가족에 대한 그리움을 쏟아내는 데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이산가족끼리 모인 자리는 처음이라는 이들이 많았다. 이들은 이산상봉의 기쁨과 행운을 누리지는 못했지만 이런 자리에서나마 위로를 받았다고 한다.
올해 6월30일 기준 통일부의 이산가족정보통합시스템에 등록한 이산가족 현황에 따르면 1988년부터 올해까지 이산가족으로 등록한 12만9695명 가운데 생존자는 6만6289명이다. 생존한 이들 가운데 80세 이상이 3만5997명으로 전체의 54.3%를 차지한다. 부모·부부·자녀를 찾는 이들이 3만221명(45.6%)으로 가장 많고 형제자매를 기다리는 이들이 2만7512명(41.5%)이다. 생존자 중 고령 비율이 높아지며 사망자도 늘고 있어 이산상봉 행사가 열린다 해도 상봉이 불가능한 경우 역시 많아지고 있다.
연천=김민서 기자 spice7@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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