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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08-29 03:00:00 수정 : 2015-08-29 03: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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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사적 지평으로 본 문선명 총재] <상> 천명(天命)과 생애노정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창시자인 문선명 총재의 성화 3주년을 맞아 생애와 업적을 회고·정리하는 기획으로 ‘세계사적 지평으로 본 문선명 총재’를 2회에 걸쳐 싣는다. 이번 특집으로 문 총재의 생애 의미가 세계사적 입장에서 새롭게 많은 사람들에게 이해되기를 기대한다. 천명(天命)을 어떻게 부르고 그 천명에 따라 어떻게 생애노정을 걸었는지를 일별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한다.


문선명 총재가 1976년 9월18일 미국 워싱턴 광장에서 열린 집회에서 환호하는 군중에게 두 팔을 들어 답례하고 있다. 이 집회에는 30만명이 참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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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교의 탄생과 성장


문 총재는 1935년(16살) 부활절 아침 정주군 묘두산(猫頭山)에서 영적으로 예수님을 만나 특별계시를 받게 된다. “고통받는 인류 때문에 하나님이 너무 슬퍼하고 계시니라. 지상에서 하늘의 역사에 대한 특별한 사명을 맡아라.”

통일교에서는 이 계시적 사건을 천명(天命)이라고 한다. 천명은 기독교뿐만 아니라 동양철학에서도 쓰는 명칭이다. 문 총재는 ‘천명’을 받을 당시 심정을 ‘영광의 왕관’(Crown of Glory)이라는 시를 통해 읊었다. “…배신한 자들을 사랑했을 때/나는 승리를 쟁취했습니다./만일 당신도 나와 같은 사랑을 한다면/나는 그대에게 ‘영광의 면류관’을 드리오리다.”

문 총재는 동족상잔의 6·25전쟁 피란 중에, 부산 범냇골 토담집에서 통일교의 근본원리인 ‘원리원본(原理原本)’(1952년 5월 10일)을 탈고한다. 부산 범일동에서 선교를 시작한 통일교는 여러 섭리적 과정을 거친 끝에 1954년 5월 1일 북학동(서울시 성동구 북학동 391-6호)에서 정식으로 세계기독교통일신령협회를 창립한다.

통일교는 창도 이후 여러 차례 종교탄압을 받았다. 그중 소위 ‘이대연대 사건’은 창립 이후 최대 위기였다. 문 총재는 1955년 7월4일부터 10월4일까지 서대문형무소에 수감되었다. 죄목은 ‘병역기피’였지만 결국 무죄로 출감했다. ‘이대연대 사건’으로 이화여대생 14명과 연대생 2명이 이단 신앙을 이유로 퇴학당했으며, 이에 앞서 연세대 교수 1명과 이화여대 교수 5명이 퇴직당하는 사태가 있었다.

통일교가 본격적인 교세확장에 들어간 것은 1960년 4월11일(음력 3월16일) 문 총재와 한학자 총재의 성혼식 이후이다. 인간 시조의 타락으로 잃어버린 선한 부모의 자리를 되찾음으로써 안정적인 기반 위에서 발전하게 된다.

통일교는 그 후 일본 선교(1958년)를 통해 해외선교의 발판을 마련한 뒤 미국 진출(1959년)로 세계종교로서의 면모를 갖추게 된다. 미국 선교 승패의 갈림길은 뉴욕 매디슨스퀘어가든 대집회였다. 1974년 9월18일 제4차 세계 순회강연 중 미국 8대 도시 순회강연회의 하나로 열린 ‘희망의 날’ 뉴욕 대강연회장에는 2만5000여명의 인파가 몰려들었다. 이 자리에서 문 총재는 메시아의 강림과 그 재림의 목적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하였다.

통일교는 미국 선교 과정에서 한국에서의 ‘이대연대 사건’에 버금가는 탄압을 받게 된다. 바로 ‘댄버리 교도소’ 사건이다. 1984년 5월30일 문 총재에 대해 미연방대법원의 투옥이 결정됐고, 세계는 항의시위집회(워싱턴 로즈회관)에 들어갔다. ‘댄버리 사건’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길’에 비유된다. 1984년 7월20일 밤 11시(한국시간 21일 정오), 문 총재는 18개월간의 복역에 들어갔다. 원고는 미합중국, 피고는 문선명이었다.

미국 정부가 조그마한 탈세(?)를 빌미로 미국의 기성보수교단의 편을 들어준 셈이었다. 탈세의 내용은 “1973년부터 1975년까지 3년간 통일교회 식구들이 헌금한 160만달러를 뉴욕 체이스맨해튼 은행에 예탁했었는데 여기서 발생한 이자 11만2000달러에 대한 소득세 1000달러(당시 약 70만원)를 신고하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통일교는 여러 섭리적 과정과 우여곡절을 거친 끝에 오늘날 세계 192개국에 선교본부를 둔 세계적인 신흥종교로 우뚝 서게 됐다. 한국 자생종교로서는 처음이었다.

문 총재는 2012년 9월 3일 새벽에 성화하였다. 2012년 9월 15일 오전 10시 청심평화월드센터에서 성화식이 거행됐다. 문 총재는 마지막 기도에서 메시아의 사명을 완수했음을 이렇게 말했다.

“오늘 최종적인/완성의 완결을/아버지 앞에/돌려드렸사오니/지금까지 한 생을/아버지 앞에 바친 줄 알고/있사오니/그 뜻대로 이제는/모든 생을/종료하는 시간을/정성을 드려/종료하는 시간을/갖추어/종족의 메시아가/국가를 대표할 수 있는/이름을 이루어 가지고/그 일을/다 이루었다./다 이루었다./아주!”

문선명 총재(뒷줄 가운데)가 6·25전쟁 발발 후 피란지인 부산 동구 범일동 토담집 앞에서 교인들과 함께 찍은 사진. 문 총재는 이곳에서 원리원본을 집필했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통일교는 자생기독교


19, 20세기는 흔히 자연과학시대라고 말한다. 문화의 중심에 자연과학이 있기 때문이다. 서구중심의 현대문명은 필연적으로 ‘하나님주의’와 ‘인간중심주의’의 갈등에 직면하고 있으며, 새로운 시대정신을 포착하는 역사변증법적 개념을 요구하고 있다. 여기에 가장 혁명적으로 부응한 것이 바로 극동의 작은 나라, 한국에서 자생한 통일교이다.

통일교가 한국에서 태어난 이유는 통일을 가장 필요로 하는 곳이 이 땅이기 때문이다. 일제식민지에서 해방되자마자 이념갈등으로 남북이 갈라졌고, 결국 동족상잔의 6·25전쟁을 치러야 했고, 인간생존의 단말마적 상황에서 통일교는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다.

통일교는 우리 민족뿐만 아니라 세계의 시대적 과제를 ‘통일’로 집약하여 개념화하였다는 점에서 혁명적이다. 서양철학의 집대성자라고 알려진 헤겔은 ‘철학은 시대정신을 개념화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런 점에서 문 총재는 통일교의 창시자일 뿐만 아니라 철학자였으며, ‘원리원본’이라는 신학적 철학을 들고 이 땅에서 선교를 시작했던 인물이다. 지구상에 종교창도자는 많지만 자신의 신학과 철학을 들고 종교운동을 한 인물은 드물다.

통일교는 기독교의 토착화이면서 동시에 전통종교를 기반으로 자생성을 획득한 창조적 기독교로서 ‘세계 기독교의 혁명’이다. 말하자면 마르틴 루터의 종교개혁보다 더 혁명적인 종교이다. 기독교 내의 혁명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기독교 밖에 있는 인류의 대표적인 종교들의 통일과 인류의 평화를 추구하였기 때문이다.

통일교는 성경해석에서의 탁월함과 함께 현재의 과학적 세계관을 포용하는, 종교와 과학이 하나가 되는 세계라는 것을 보여줌으로써 기존 종교의 통합은 물론이고 종교의 미래성을 보장받은 종교이다.

통일교는 단순히 성경을 바탕으로 새로운 해석을 보태는 정도의 종교가 아니다. 성경을 해석하는 데 만족하지 않고 각자의 마음속에 있는 신을 현존적·심정적으로 느끼게 하는 종교이다. 심정은 시공을 넘어가는 세계이며, 통일교는 그래서 ‘심정의 하나님’을 말한다. 말하자면 지금 심정적으로 통하지 않으면 하나님과 일체가 되었다고 말할 수 없다.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창시자인 문선명·한학자 총재는 지구촌 평화운동에 헌신했다. 사진은 문·한 총재가 세계평화를 위해 열린 한 국제행사에서 초에 불을 붙이는 모습.
세계일보 자료사진
◆‘공산주의 종언’ 선언한 메시아


통일교회사적으로 보면 통일교에 의해 메시아는 완성되었고, 구약과 신약에 이어 성약(成約)시대를 열었다. 이로 인해 여성과 사탄과 사물은 해방되었고, 이제 기독교는 새로운 시대를 맞고 있다. 메시아는 과거에 있었던 존재, 미래에 있어야 할 존재가 아니라 과거와 미래의 경계에서 현재적 실존으로 존재하여야 함을 깨닫게 된 것이다.

한국의 신흥종교 가운데 통일교가 중요한 것은 바로 기독교를 기반으로 함으로써 문 총재 당대에 세계화를 달성하였다는 점이다. 현재 미국·일본을 비롯하여 아시아·유럽·남북아메리카·아프리카 등지에 선교지부를 두고 있고, 이런 성과야말로 천지의 기운생동이 뒷받침하지 않으면 실현할 수 없는 일이다.

문 총재는 소련이 해체되기 전인 1985년 8월13일부터 17일까지 스위스의 제네바에서 열린 제2차 세계평화교수협의회 국제회의에서 당시 누구도 믿지 않는 ‘공산주의의 종언’을 선언했으며, 소련은 6년 뒤인 1991년 12월22일 해체됐다. 공산주의의 종언은 공산주의 전문가는 물론이고 소련 스스로도 예측하지 못했던 사실이다.

문 총재는 소련의 공산주의를 붕괴시키는 선봉에 섰으며, 고르바초프로 하여금 소비에트연방 해체의 일이 인류평화를 위해 얼마나 위대한 일을 하는지를 주지시킴으로써 세계로 하여금 평화에 다가서게 했다.

◆‘종의 기독교’에서 ‘주인의 기독교’로

유대인들은 스스로를 선민(選民)이라고 말한다. 선민이라는 말은 ‘하나님의 선택을 받은 민족’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한국인은 스스로를 천손(天孫)이라고 한다. 통일교는 한국의 전통사상을 계승하면서 유불선 기독교 이슬람교를 회통시킨 ‘5교회통’의 종교이다. 5교회통은 공간적으로는 지구촌의 동서(東西), 시간적으로 인류의 고금(古今)을 하나로 소통시킴으로서 시공초월의 면모를 갖추었음을 말한다.

통일교에 대한 국내적 탄압과 이단시는 바로 우리 국민의 사대식민체질과 무관하지 않다. 이는 한국의 기독교가 아직도 ‘주인의 기독교’가 되지 못하고 ‘종의 기독교’에 머문 탓이라고 말할 수 있다. 예수는 ‘종의 기독교’를 지향한 메시아가 아니었다. 한국인과 한국의 종교인들은 문 총재가 이 땅에 태어난 것을 영광스럽게 생각할 때가 올 것이다.

문 총재는 우리나라를 식민지로 지배했던 일본 사람들을 충실한 신자로 만들었으며, 평화의 사도로서 이미 양국을 화해시켰으며, 한국을 아담의 나라, 일본을 해와의 나라로 지칭하며 미래의 역할을 제시했다. 특히 일본 신자로 하여금 식민지지배의 죄를 탕감복귀하게 함으로써 메시아적 권위를 달성했다. 통일교로 인해 한국은 세계적 성지가 되었다.

박정진 문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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