증세 없는 복지에 재정마저 악화일로
못 믿을 정부에 상실감, 제 살 길 알아서 찾아야 각자도생은 이 시대의 생존 지침으로 굳어지고 있다. 세월호 참사가 가르치고 메르스 사태가 복습시킨 교훈이다. 기울어가는 배 안에서 승객들은 스스로 살 길을 찾았어야 했다. 구멍 뚫린 방역망을 넘어 연기처럼 퍼지는 바이러스도 각자 알아서 피해야 했다. 결정적인 순간에 정부는 존재감을 잃었다. 매번 골든타임을 놓치며 무능을 드러냈다. 각자도생은 국민이 좋아서 선택한 게 아니다. 정부의 무능이 강요한 불가피한 선택일 뿐이다.
재난 대응만이 아니다. 각자도생을 부추기는 무능은 정부 정책 곳곳에 숨어 있다. 박근혜정부 2년반의 경제정책 흐름을 훑어봐도 그 능력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대선공약인 경제민주화는 시늉만 하다 팽개쳤다. 양극화를 해소해 내수기반을 다지고 성장잠재력을 키운다는 장기비전은 뒷전으로 밀려났다. “빚 내서 집 사라”로 요약되는 단기부양책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 그래서 경기가 살아났다면 다행인데 그렇지 않으니 문제다.
류순열 선임기자 |
풀린 돈이 성장을 견인하지 못하면서 저금리의 부작용은 갈수록 두드러지고 있다. 저금리에 기대 연명하는 좀비기업이 효율적 자원 배분을 방해하고 저금리 탓에 치솟는 주거비에 짓눌려 서민들의 삶은 더 팍팍해졌다. 이쯤 되면 누구를 위한 금리 인하였는지 고개를 갸웃거리지 않을 수 없다. 애당초 가계빚에 의존한 경기부양 정책은 모험이었다. 박승 전 한국은행 총재는 “금리 내리고 돈 풀어 경기를 살릴 수 있을 것 같으면 무슨 걱정이냐”며 개탄한 적이 있다. “통화정책은 단기와 장기의 바꿔치기일 뿐”이라는 게 그의 설명인데, 반짝 단기 부양효과를 보는 대신 장기 위험을 키우게 된다는 말이다.
돈 풀어 경기를 부양하는 것 자체가 잘못이라는 게 아니다. 불황으로 민간의 소비여력이 바닥나면 정부가 재정을 확 풀어 총수요를 끌어올리는 것은 마땅한 처방이다. 당장은 나라 곳간이 바닥이 나고 빚이 늘겠지만 경기가 살아나면 세수가 더 걷히면서 곳간은 다시 채워질 것이다. 1929년 대공황 이후 지속된 케인스식 경제위기 해법이다. 문제는 정부가 이런 정공법 대신 손 안 대고 코 풀듯 가계빚을 늘려 경기를 띄우려 했다는 데 있다. 정부 재정이 해야 할 일을 가계 부채에 떠넘긴 셈이다. 정부로서는 국회 승인을 받아야 하는 재정정책보다 한은을 압박해 기준금리를 낮추는 편법이 만만했을 것이다.
그나마 이제 막바지다. 통화·재정정책 모두 ‘실탄’이 거의 떨어졌다. 미국 금리 인상이 코앞인데 한은이 기준금리를 더 내리기는 쉽지 않다. 상대적으로 건전한 정부 재정도 ‘증세 없는 복지’에 발목이 잡혀 갈수록 악화할 수밖에 없다. 이제 어찌해야 하는가. 공직을 맡고 있는 한 경제학자는 “정부에 큰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없다”면서 발상의 대전환을 역설했다. “예컨대 500조원에 달하는 국민연금기금을 주택임대시장 투자로 연결만 시켜도 주거부담과 가계부채 문제를 동시에 해결할 수 있는데 왜 그런 생각은 못하는지 모르겠다”는 것이다.
창의적 발상의 부재 이전에 불신은 보다 근본적인 문제다. 아무리 좋은 정책도 신뢰를 잃으면 좌초하고, 그런 환경에서 각자도생의 의식은 더욱 또렷해질 것이다. 각자 살 길을 찾겠다는 생각이 굳어지는 것은 우리가 신뢰가 무너진 시대를 살고 있다는, 서글픈 증거다.
류순열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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