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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먼 광어를 낚아채는 미늘처럼
현대인을 유혹하는 인생의 미늘을 피해갈 수 있을까
모처럼 바다로 간다. 서해바다에서 벗이 부른다. 한때는 한 달이면 두어 번은 바다 가운데로 나아가 물고기들과 씨름한 적도 있지만 근년 들어서는 이런저런 이유로 거의 나가지 못했다. 바야흐로 광어에 살이 듬뿍 올랐을 계절이다. 가을 서해바다 선상낚시는 광어가 인기 어종이다. 광어 사촌격인 도다리는 봄철이 제격이고 광어는 가을 광어를 최고로 친다. 바다 밑바닥에 납작 엎드려 있다가 미끼가 다가오면 잽싸게 낚아 채는 습성을 가진 녀석이다. 그래서 물살이 비교적 세게 흐르는 사리 무렵이 광어 낚시에는 오히려 좋다. 배가 흘러줘야 게으르게 가만히 제자리에 머무르며 먹이를 기다리는 녀석들에게 다가갈 확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녀석이 뱃전에 올라오면 바로 아가미에 칼을 꽂아 피를 빼주고 아이스박스로 옮겨야 신선하게 보관할 수 있다. 일견 잔인한 일이지만, 어차피 인간의 손에 잡힌 이상 피치 못할 숙명이다. 먹이사슬의 상층부에 속한 인간도 살생의 업을 피해가기는 힘들다. 피할 수만 있다면 물론 살생은 피하는 게 좋다. 소설가 박경리(1926∼2008) 선생은 통영 바닷가 출신이다. 그분이 생존해 계실 때 원주 토지문화관에 가서 신세를 진 적이 있다. 겨울에 멀리 서해 공해상까지 침선낚시를 다녀와 잡은 우럭을 같이 머물던 작가들끼리만 먹기가 죄송해 선생의 자택으로 일부를 올려보냈다. 정초 세배를 드리러 올라갔더니 우럭 선물에 대한 공치사 끝에 따끔한 일침도 잊지 않으셨다. 어부들이야 생업이니 어쩔 수 없지만, 유희 삼아 생명이 붙어 있는 것들을 희롱하는 낚시꾼들은 싫다는 말씀이셨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내심 뜨끔했지만, 살아 있는 것들과 겨루는 스릴이야말로 낚시의 매력이니 어쩔 것인가. 헤밍웨이의 낚시 사랑은 소문난 것이었다. 직접 요트를 구입해 두 번째 아내 폴린의 닉네임을 딴 ‘필라’라는 이름을 붙이고 플로리다해협의 키웨스트섬 인근과 쿠바 해안에서 낚시를 즐겼다. 아바나 바닷가에서 자신의 이름을 딴 낚시대회도 열었는데 이 대회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고 한다. 1938년에는 하루에 청새치 7마리를 잡는 대기록을 세웠다. 그의 취미생활은 뛰어난 단편 ‘노인과 바다’로 승화되기도 했다.

‘미국의 송어낚시’라는 장편소설은 서점 점원이 낚시에 관한 책으로 착각해 레저 코너에 꽂아놓았다는 이야기가 있다. 미국 작가 리처드 브라우티건(1935∼1984)이 1967년 발표한 소설로 생태문학의 수작으로 꼽힌다. 개발 바람에 휩쓸려 미국의 하천에서 흔히 발견되던 송어가 사라지는 현장을 비관적으로 탐색한 이 작품으로 작가는 미국을 대표하는 유명작가로 부각됐다. 브라우티건도 헤밍웨이처럼 생의 마지막을 권총 자살로 끝낸 사실은 안타깝다.

1990년대 한국문학의 새로운 흐름을 열었던 윤대녕의 소설집 ‘은어낚시통신’도 서점 일꾼들을 헷갈리게 한 소설 제목이다. ‘은어’라는 매개를 통해 존재의 시원을 찾아가려는 관념적인 사색이 저류에 흐르는 작품이다. 대표적인 낚시꾼 작가로 꼽히는 소설가 안정효도 ‘미늘’이라는 장편을 쓴 적이 있다. ‘미늘’이란 물고기가 물면 빠지지 않도록 낚시 바늘 끝의 안쪽에 거스러미 모양으로 만든 작은 갈고리를 말한다. 한 번 물면 스스로 힘으로는 빼낼 수 없는 치명적인 장치다. 안정효는 이 소설에서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방어하고 지탱하지 못하는 한 사내가 ‘인생의 미늘’을 물고 깊은 수렁으로 빠져드는 이야기를 다루었다.

현대인을 유혹하는 미늘은 무엇일까. 한번 물면 뱉지 못하고 죽음에 이르는 비통한 그것 말이다. 사실 너울거리는 미늘은 인간들 주변 도처에 있다. 고층아파트 베란다 너머로 투신한 아내를 그리워하며 낚시를 하는 사내에게 그 사내의 분신이 외치던 어느 단편소설의 이런 대사는 어떤가. “하늘 위쪽 어딘가에 우리처럼 낚시질하는 양반이 계시는 모양인데, 당신의 아내는 어떤 미끼를 물었기에 그리 쉽게 떠난 거요?” 모든 소재가 다 문학이 될 수 있지만 낚시야말로 만만치 않은 문학의 미늘이다. 이번 주말에는 어느 눈먼 광어가 올라올까.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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