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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완식의미술살롱] 깨달음은 서로 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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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10-16 22:27:05 수정 : 2015-10-17 01:0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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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불교 교서 ‘대종경’
판화로 새긴 농부작가
생명의 가치 깨우기
종교와 예술 이심전심… 권위의 무게 덜어내니… 진정한 道가 깨어나
판화가 이철수씨가 원불교 8대 교서 중에 하나인 ‘대종경’의 뜻을 판화로 새겼다. 대종경은 100년 전 원불교를 연 소태산 박중빈(1891∼1943) 대종사의 언행이 수록되어 있는 경전이다. 이 화백은 원불교의 요청으로 3년간의 작업을 마치고 세종문화회관 미술관에서 21일부터 11월3일까지 전시를 연다. 203점의 판화를 담은 책 ‘네가 그 봄꽃 소식 해라’(문학동네)도 함께 펴냈다. 종교적 메시지를 예술적 서사로 풀어냈다는 점에서 신선하게 받아들여지고 있다. 종교와 예술의 융합이라 하겠다. 보수적일 수밖에 없는 종교가 예술에 손을 내밀었다는 점에서 원불교의 열린 자세도 높게 평가받을 만하다. 원불교는 대종경 판화를 교단 박물관에 소장을 추진하고 있다.

어느 종교에도 걸림이 없는 이 화백에게 원불교 측은 대종경을 자유롭게 해석토록 일임했다. 간섭도 특정 의도도 배제시켰다. 작가와 교단은 정신적 유산을 우리 사회가 함께 공유해야 한다는 점에서 의기투합했을 뿐이다. 이 화백은 “안 믿지만 다 믿는다”고 했다. 다 관심을 갖고, 다 한 지혜일 거라 생각한다는 얘기다. 사실 대종사는 불교를 통해 깨달음을 얻은 것이 아니다. 먼저 깨달음을 얻고, 금강경을 접했다고 한다. 금강경의 많은 지혜가 그의 깨달음과 일치하자 연원을 부처로 정했다는 이야기다. 이집 저집 다른 찹쌀떡 반죽이라도 한데 뭉치면 잘 버무려지듯, 진짜들끼리는 한데 어우러지게 되는 이치다. 이 대목에서 그는 한국정치판이 진영 논리에 매몰돼 벼랑끝으로 치닫는 것은 ‘가짜들의 행진’만이 난무하기에 그런 것이 아닐까 질문을 던져본다.

편완식 미술전문기자
한글로 쓰여진 대종경은 소태산 대종사가 어려운 문장과 화려한 수식어를 버리고 쉽게 이해되도록 편찬하라고 누누이 당부했다고 알려진 경전이다. 그동안 선불교의 가르침을 대중에게 쉽게 전달하려 해 온 이 화백의 작업과 통하는 부분이다. 예술은 궁극의 경지에서 단순해지게 마련이다. 그리고 분명해진다. 그 중심엔 생명이 있다. 충북 제천 ‘울고 넘는 박달재’ 너머 농촌마을에서 1700평의 논밭을 일구며 자연 속에 사는 것에서 이 화백은 그 경지를 일궈왔다. 농사로 온갖 생명과 함께한 덕에 대종경과 인연의 끈이 만들어진 것이다. 모든 말씀이 예수와 부처 등의 입을 빌리기는 하지만, 모든 생명의 소리가 한 근원에서 나온다는 것을 그는 믿는다.

하지만 그는 선불교의 공안은 심오하고 날카롭기에, 평범한 사람들은 도를 깨닫는 게 불가능하다고 느껴지게 한다고 했다. 그런 점에서 그는 대중성과 일상성을 원불교의 장점으로 꼽았다. ‘세상 모든 사람들이 행할 수 있는 건 큰 도(道)이고, 소수만이 행할 수 있는 건 작은 도’라는 가르침이 그에게 가장 마음에 와 닿았다. 그러나 사람들은 같은 이야기라도 경전의 권위에 기대 어렵게 해야 귀를 기울이는 속물근성이 있다. 그가 ‘팔만대장경을 번뇌 바다로 삼지 말아라’고 작품 속에 자신의 생각을 일갈한 것은 이런 맥락에서 나왔다. 그는 밑그림을 그리는 동안 선가의 스님과 영성 깊은 목사님, 천주교 신부님, 원불교 원로 교무들과 대화를 나눈 것이 큰 보탬이 됐다.

마음공부, 힐링 프로그램이 넘쳐나고 형식적이고 고귀한 말의 성찬이 난무하는 시대다. 그래도 우리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무너져가고 있다. 그는 우리가 이들을 벼랑끝으로 몰지 않았나 스스로 성찰해 볼 것을 권한다. 우리의 깊은 속마음을 들여다보자는 얘기에 진보가 어디 있고 보수가 어디 있겠냐고 반문한다.

‘금강경을 읽는 즐거움’에서 일감 스님은 “행복하게 존재하고자 하는 모든 생명의 가치에 늘 깨어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래야 그 자리에서, 그 생명을 위한 자비도 나오고 지혜도 나온다는 것이다. 삶의 가치는 무엇인가에 늘 깨어 있어야 하고 그 종착역은 늘 사람이어야 하고 생명이어야 한다. 종교도 예술도 모두 그 길 위에 있다.

편완식 미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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