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조용호의문학노트] 왕의 사랑법

관련이슈 조용호의 문학노트

입력 : 2015-10-30 21:12:18 수정 : 2015-10-30 21:17:50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어린왕자’가 겪은 이상한 혼란처럼… 두 쪽난 우리의 현실… ‘이성적 명령’이라면 존중받을 테지만… 이 분열을 어찌할까 장미꽃과 다투고 소행성 B612를 떠난 ‘어린 왕자’가 도착한 첫 별에는 왕이 홀로 살고 있었다. 왕들에게 세계는 아주 단순하다는 사실을 어린 왕자는 몰랐다. 왕에겐 모든 사람이 다 신민이었다. 홀로 사는 별에서 스스로 왕인 그는 어린 왕자가 면전에서 하품을 하자 “어전에서 하품을 함은 예의에 어긋나는 일”이라고 점잖게 꾸짖는다. 왕자가 먼 길을 여행하느라 잠을 못 자서 하품을 참을 수 없다고 하자 왕은 “그럼 하품을 명하노라”고 은전을 베푼다. 다시 왕자가 “이젠 하품이 나지 않는다”고 하자 “그렇다면, 짐은… 짐은 그대에게 명하노라, 어떤 때는 하품을 하고 어떤 때는…”이라고 명령을 시정한다. 불복종을 용서하지 않는 절대군주이지만 다행히 그는 착한 사람이었다. 왕은 어찌 됐든 권위가 존중되기를 바랐다. 왕이 물었다.

“짐이 만일 어느 장군에게 이 꽃 저 꽃으로 나비처럼 날아다니라든지, 비극을 한 편 쓰라든지, 바닷새로 변하라고 명령을 하여, 그 장군이 하달된 명령을 수행하지 못했다면, 짐과 장군 가운데 누가 잘못이겠는가?”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어린 왕자가 단호하게 “전하의 잘못”이라고 응답하자 왕은 “권위는 무엇보다 이성에 근거를 두는 법”이라면서 “네가 만일 내 백성들에게 바다에 빠져 죽으라고 명령을 한다면 그들은 혁명을 일으킬 것”이라고 말한다. 그는 “짐이 복종을 요구할 권리가 있음은 짐의 명령이 지당하기 때문”이라고 친절하게 설명해 준다. 타인이 반드시 자신의 말에 복종해야만 된다고 생각하는 타성은 어찌할 수 없는 타고난 그 시대의 숙명이지만 그 왕이 자신의 명령을 신민의 입장에서 끊임없이 고민한다는 사실은 이 시대에 보아도 갸륵하다. 왕은 어린 왕자가 그 별을 떠나려고 하자 가지 말라고 명령한다. 기어이 왕자가 명을 어기고 떠나자 뒤에서 다급하게 소리친다.

“짐은 그대를 대사로 임명하노라!”

연민이 느껴지는 미워할 수 없는 왕이다. 프랑스 작가 생텍쥐페리(1900∼1944)의 ‘어린 왕자’는 1943년 뉴욕에서 처음 출판된 이래 지금까지 전 세계 250개 언어로 번역돼 1억4500만부 넘게 팔렸다고 한다. 아이와 어른을 막론하고 독자들은 끊임없이 재생산되고 있다.

한국에만 100종 넘는 책들이 번역돼 있는데 최근에도 불문학자 황현산 번역으로 새롭게 출간됐다. 지난해에는 ‘어린 왕자’ 초판본 삽화 한 장이 파리에서 경매에 붙여져 5억원 넘는 호가를 기록했다. 올해는 ‘쿵푸 팬더’의 감독 마크 오스본이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 북미보다 앞서 중국에서 개봉해 흥행가도를 달리고 있고 한국에도 12월 개봉될 예정이다. 현재진행형 베스트셀러 고전이다.

오랫동안 식지 않는 ‘어린 왕자’의 인기 요인은 다양하게 찾을 수 있다. 대표적으로는 수많은 꽃 중에서도 자신에게 길들여진, 혹은 서로 길들인 하나의 꽃을 향한 순애를 먼저 떠올리겠지만 어린 왕자가 자신의 소행성을 떠나 차례로 경험한 왕과 허영쟁이, 사업가와 지리학자, 술주정꾼이 공존하는 지구별의 현실에 대한 성찰도 만만치 않은 울림이다. 어린 독자는 보아뱀과 양을, 청년 독자는 꽃과 여우와 관계와 사랑에 대한 성찰에 더 쏠리겠지만, 장년의 독자라면 왕의 우화가 새삼스럽게 다가올지 모르겠다.

작금 두 갈래로 찢어진 한국 구성원들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이성에 근거를 둔 ‘명령’이야말로 권위를 존중받을 대목이라는데 이 분열을 어찌할까. 어린 왕자는 자신의 별을 떠나 이런 국면을 맞을 때마다 “어른들은 참 이상하다”고 되뇌었다. 금빛 머리칼 날리며 사막에서 외로운 여우와 사랑에 대해 말하던 어린 왕자는 자신의 별로 떠났다. 지구에 올 때는 철새들의 도움을 받았지만 갈 때는 몸뚱이가 무거워 껍질을 벗어놓고 갔다. 이상한 별의 이상한 사람들을 뒤로한 채, 우주에 하나밖에 없는 자신의 꽃을 책임지기 위해.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비웨이브 아인 '미소 천사'
  • 비웨이브 아인 '미소 천사'
  • 비웨이브 제나 '깜찍하게'
  • 정은지 '해맑은 미소'
  • 에스파 카리나 '여신 미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