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짐이 만일 어느 장군에게 이 꽃 저 꽃으로 나비처럼 날아다니라든지, 비극을 한 편 쓰라든지, 바닷새로 변하라고 명령을 하여, 그 장군이 하달된 명령을 수행하지 못했다면, 짐과 장군 가운데 누가 잘못이겠는가?”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
“짐은 그대를 대사로 임명하노라!”
연민이 느껴지는 미워할 수 없는 왕이다. 프랑스 작가 생텍쥐페리(1900∼1944)의 ‘어린 왕자’는 1943년 뉴욕에서 처음 출판된 이래 지금까지 전 세계 250개 언어로 번역돼 1억4500만부 넘게 팔렸다고 한다. 아이와 어른을 막론하고 독자들은 끊임없이 재생산되고 있다.
한국에만 100종 넘는 책들이 번역돼 있는데 최근에도 불문학자 황현산 번역으로 새롭게 출간됐다. 지난해에는 ‘어린 왕자’ 초판본 삽화 한 장이 파리에서 경매에 붙여져 5억원 넘는 호가를 기록했다. 올해는 ‘쿵푸 팬더’의 감독 마크 오스본이 애니메이션으로 만들어 북미보다 앞서 중국에서 개봉해 흥행가도를 달리고 있고 한국에도 12월 개봉될 예정이다. 현재진행형 베스트셀러 고전이다.
오랫동안 식지 않는 ‘어린 왕자’의 인기 요인은 다양하게 찾을 수 있다. 대표적으로는 수많은 꽃 중에서도 자신에게 길들여진, 혹은 서로 길들인 하나의 꽃을 향한 순애를 먼저 떠올리겠지만 어린 왕자가 자신의 소행성을 떠나 차례로 경험한 왕과 허영쟁이, 사업가와 지리학자, 술주정꾼이 공존하는 지구별의 현실에 대한 성찰도 만만치 않은 울림이다. 어린 독자는 보아뱀과 양을, 청년 독자는 꽃과 여우와 관계와 사랑에 대한 성찰에 더 쏠리겠지만, 장년의 독자라면 왕의 우화가 새삼스럽게 다가올지 모르겠다.
작금 두 갈래로 찢어진 한국 구성원들을 생각하면 더욱 그렇다. 이성에 근거를 둔 ‘명령’이야말로 권위를 존중받을 대목이라는데 이 분열을 어찌할까. 어린 왕자는 자신의 별을 떠나 이런 국면을 맞을 때마다 “어른들은 참 이상하다”고 되뇌었다. 금빛 머리칼 날리며 사막에서 외로운 여우와 사랑에 대해 말하던 어린 왕자는 자신의 별로 떠났다. 지구에 올 때는 철새들의 도움을 받았지만 갈 때는 몸뚱이가 무거워 껍질을 벗어놓고 갔다. 이상한 별의 이상한 사람들을 뒤로한 채, 우주에 하나밖에 없는 자신의 꽃을 책임지기 위해.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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