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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신춘문예] 혹한 속 열리는 첫 아침… 모든 이가 웅비할 새 세상 오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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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5-12-31 20:24:55 수정 : 2015-12-31 20:24: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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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자 2016 년 새 하늘이 열렸다
그림=김선두 화가.
밥이 하늘이다. 검푸른 숲의 산은 아리고 시린 삶을 씹어대기이고, 푸른 하늘은 그 삶을 승화시키는 시공이고, 광활한 바다는 포용과 화해의 표상이고, 동녘 하늘에서 솟는 해는 새로이 열리는 세상에 대한 희망을 중생들에게 안겨주는 신의 얼굴이다.

2016 병신년 새해의 첫 새벽이다. 어둠과 매서운 바람을 헤치고 솟아오르는 해를 보기 위해 바다로 나간다. 모래밭 한가운데서 동녘 하늘을 향해 서서 가슴 두근거리며 해가 솟아오르기를 기다린다. 먼동이 트자, 진한 수묵으로 그려놓은 듯싶던 섬들이 어둠의 너울을 벗어던지고, 바다는 은색으로 물든다. 동녘 하늘이 붉게 변하자, 바다는 주황빛 공단을 깔아놓은 듯싶다. 어둠 세상에서 은색과 주황색과 황금색의 세상으로 오버랩 되는 동녘 하늘과 바다는 총천연색 영화 속의 장면들처럼 황홀하다.

해는 섬의 잘록한 산허리에서 얼굴을 내민다. 잘 익은 홍시처럼 새빨갛다. 바다의 물너울은 빨갛게 변하고, 붉은빛의 기둥 하나가 해로부터 줄기차게 뻗어 나와 일렁거리면서 나의 앙가슴으로 파고든다. 허공으로 둥실 솟아오른 해의 새 얼굴에 나는 넋을 잃는다.

뒤돌아보면 만감이 교차한다. 이미 걸어왔던 과거의 삶들은 아리고 쓰라려서 다시 돌아갈 수 없는 역정이다. 아프고 슬프기는 했지만, 그것들을 깊이 기억한 채 앞만 보고 목말라하면서 달려온 세월 아니던가. 어제오늘의 정글 같은 자본주의의 세상 속에서 울퉁불퉁 굴곡진 삶의 격차는 힘없고 가난한 자들을 거듭 절망하게 했다.

정부는 무수한 이웃나라들과 자유무역협정을 맺었고, 주변국들의 상품들은 물밀 듯이 들어온다. 관세 철폐의 덕을 보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그것으로 인해 손해를 보고 아픔을 당하는 사람들이 있다. 덕을 보는 사람들과 손해를 보는 사람들 한가운데에 정치가 있는데, 정치는 덕을 보는 사람들과 손해를 보는 사람들이 다 잘살 수 있는 화해와 화합의 교통정리를 해야 하는 책무가 있다. 그 당국자들은 과연 잘하고 있는가.

새해에는 모든 사람들이 거침없이 푸른 하늘을 웅비할 수 있는 새 세상이 열렸으면 좋겠다.

인도 델리에 갔을 때 한 남자가 들판 한가운데서 가부좌를 한 채 바야흐로 떠오르는 아침 해를 향해 조용히 묵도하고 있었다. 태양신을 숭배하는 신도였다. 태양은 지구에 존재하는 모든 살아 있는 것들에게 활력과 희망을 넣어주는 신적인 존재이다.

언제인가부터 나도 떠오르는 아침 해를 향해 기도하는 버릇이 생겼다. 새해 첫날 아침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해변과 산등성이로 해맞이를 하러 가는 풍습이 있다. 모두들 새해 새 아침에는 희망에 들떠 일 년 열두 달을 헌걸차게 살아갈 새로운 각오를 하고 결의를 다진다.

대밭에 가면 땅바닥에 떨어진 황갈색의 댓잎들이 수북하게 쌓여 있고, 그것은 썩어 거름이 되는데, 그 거름 속에서 죽순은 솟아나온다. 희망이란 희망 없음으로부터 죽순처럼 솟는다. 우리도 새해에는 꿈을 가지자. 수출은 더욱 잘 되어야 하는 것이고, 가진 자들은 더 많이 가져야 하되 그것을 못 가진 자들에게 나누어 주어야 하는 것이고, 못 가진 자들은 일자리를 얻어 배부르게 먹을 수 있는 양식들을 넉넉히 얻을 수 있어야 하는 것이고, 그리하여 이 땅은 지상천국이라는 소문이 자자해져야 하는 것이다.

엄혹한 전 지구적인 자본주의의 정글 속에 사는 모든 우리들은, 부디 스스로를 행복하게 할 따뜻한 밥에 대한 희망을 가져야 한다. 이 해에는 우리들의 참하고 부지런한 선량을 뽑아야 하고, 시쳇말로 똑 소리 나는 민주주의를 실천하는 원년이 되어야 하는 해이다. 착한 선량의 얼굴을 한 야바위꾼을 뽑지 않도록 모두들 정신 바짝 차리지 않으면 안 된다.

이 해의 새 아침도 여느 해나 다름없이 겨울의 혹한 속에서 열리고 있다. 신은 얼음을 지치듯이 민주와 자유와 통일과 화엄 세상을 지치라고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우리 앞에는 새 푸른 하늘이 있고, 화사한 봄꽃과 여름의 풍성한 열매와 가을의 황금수확이 기다리고 있다.

■한승원 소설가


▲1939년 전남 장흥 출생 ▲1968년 대한일보 신춘문예로 등단 ▲이상문학상, 김동리문학상, 한국문학작가상, 대한민국문학상, 한국불교문학상 등 수상 ▲소설집 ‘앞산도 첩첩하고’ ‘새터말 사람들’ ‘해변의 길손’, 장편소설 ‘아제아제 바라아제’ ‘해산 가는 길’ ‘동학제’ 등

■김선두 화백


▲1958년 전남 장흥 출생 ▲1982년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한국화과 졸업 ▲1984년 제7회 중앙미술대전 대상 수상▲1992년 제12회 석남미술상 수상 ▲2004년 제3회 부일미술대상 수상 ▲현 중앙대학교 예술대학 한국화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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