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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순열의경제수첩] 기구한 운명, 경제민주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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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02-05 19:33:37 수정 : 2016-02-05 19:3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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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 바꿔탄 김종인의 아이러니
박대통령 경제멘토였지만
현 정부 성적표는 기대이하
사분오열 야당 둥지서
어젠다 추진동력 살려낼까
기구한 운명이다. 대통령을 만들고 팽당하더니 이젠 야당 품에 안겼다. 경제민주화 얘기다. 실종상태였는데 4월 총선을 앞두고 진영을 바꿔 컴백했다. 정권 창출 일등공신이 스스로 만든 정권과 싸우는 진풍경이 펼쳐지게 된 것이다. 경제민주화 저작권자인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장은 설이 지나고 ‘더불어성장론’의 경제정책 등 총선 공약을 발표한다. 당연히 경제민주화가 근간일 것이다. 김 위원장은 최근 비공개 회의에서 “샌더스 열풍에 주목해야 한다. 이것이 바로 경제민주화”라고 말했다고 한다. 버니 샌더스(버몬트주 상원의원)는 미국 대선가도에서 불평등 문제를 정면으로 제기하며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인물이다.

경제민주화는 박근혜 정권을 탄생시킨 일등공신이다. 대선이 치러진 2012년 내내 박근혜 후보는 경제민주화를 약속했다. 야당에게 더 어울릴 법한 진보적 어젠다를 그렇게 선점했다. 김 위원장의 작품이었다. 둘의 인연은 김 위원장의 ‘러브콜’로 시작됐다. 김 위원장은 2011년 9월 세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대선 후보군에서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인 것 같아 내가 먼저 보자고 했다”고 소개했다. 자신의 경제민주화, 복지국가 구상을 실현할 적임자로 박 대통령을 낙점한 것이다. 이후 김 위원장은 박근혜 캠프 책사로서 경제민주화 공약을 무기로 대선 승리를 이끌었다.

류순열 경제부 선임기자
예상치 못한 반전이다. 그랬던 그가 야당으로 갔다. 박근혜정부가 경제민주화 공약을 전혀 지키지 않은 것도 아니고, 안종범 청와대 경제수석은 “역대 어느 정부도 하지 못한 경제민주화를 실천했다”고 자랑하는 터다. 안 수석의 자평이 진실이라면 김 위원장의 야당행은 자기부정이자 배신이다.

결별의 낌새는 정권 출범 전에 이미 나타났다. 그가 “대통령직 인수위에 경제민주화 개념을 아는 사람이 없다”고 불만을 토로할 때 이미 험난한 여정은 예고됐다. 그래도 정권이 막 출범한 3월까지는 분위기가 괜찮았다. 그는 “박 대통령이 경제민주화를 제대로 이해하고 있으며 국민과 약속한 만큼 반드시 지킬 것”이라고 다짐하듯 말했다. 이걸로 끝이었다. 이후 그에게서 믿음과 기대를 품은 얘기는 더 이상 들을 수 없었다. 넉 달 뒤인 7월 그는 “더 이상 얘기 안 하려 한다”며 함구했고, 12월엔 “이제 관심도 없다”며 싸늘하게 답하고는 이듬해 3월 훌쩍 독일로 떠나버렸다.

저작권자의 눈에 경제민주화는 뒷걸음질치고 있었던 게 분명했다. 3년이 흐른 지금 이렇다할 성과는 찾아보기 어려운 게 사실이다. 정권 출범 채 다섯 달이 지나기 전 박 대통령이 “경제민주화가 거의 끝에 오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말하면서 추진동력은 일찌감치 떨어졌다. 현오석 당시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재벌 일감몰아주기 과세 완화 방침을 밝히고 기업인 업어주기 퍼포먼스를 연출하며 장단을 맞췄다.

가계 살림살이만 봐도 경제민주화의 행방을 알 수 있다. 가계는 경제민주화 성과를 측정할 리트머스 시험지다. 경제민주화와 복지 공약이 제대로 이행됐다면 가계 살림살이는 나아졌어야 하는데 오히려 쪼그라들었다. 성장 과실의 분배에서 가계가 소외되는 흐름이 지속되는 터에 “빚 내서 집 사라”는 정부 단기부양책으로 가계부채는 폭증한 탓이다. 2014년 기준으로 성장과실의 총합인 국민총소득(GNI)중 가계몫(가계 가처분소득)으로 돌아가는 비율을 보면 한국이 56.0%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58.5%보다 2.5%포인트 낮은 정도다. 그러나 여기에 교육, 의료, 복지 등 사회적 현물이전을 반영한 궁극의 가계 실질소득(가계 조정처분가능소득)을 기준으로 보면 한국 63.8%, OECD 71.5%로 격차가 확 벌어진다. 정부의 소득재분배 효과를 반영하면 가계 빈혈이 개선되는 게 아니라 오히려 악화하는 것이다. 경제 불균형을 완화하는 정부 실력이 OECD 평균보다 한참 뒤떨어지고 있음을 이 수치는 말해주고 있다.

이런 흐름에서 경제민주화의 컴백은 자연스럽다. 그러나 여건은 더 나빠졌다. 경제 체력은 3년 전보다 더 떨어졌고 경제주체들의 인내심은 바닥나고 있다. 더욱이 분열로 상처입은 야당의 품에서 추진동력을 찾을 수 있을까. 길은 한층 멀고 험해졌다.

류순열 경제부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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