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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호의문학노트] 에코의 농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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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02-26 20:56:22 수정 : 2016-02-26 21:22: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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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기 최고의 지성조차도 장편 하나 쓰기 위해 수년 준비
틀에서 찍어내듯 작품 내놓고 안 팔린다고 독자 탓하는 우리의 현실 되돌아볼 때
‘살아 있는 백과사전’이요 ‘20세기 최고의 지성’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다니는 기호학자, 미학자, 언어학자, 철학자, 역사학자, 그리고 소설가였던 움베르토 에코(1932~2016)가 지난주 타계했다. 2년 동안 암과 투병하다 향년 84세로 ‘눈물의 골짜기’를 떠났다. 그는 과연 자신의 농담처럼 담담하게 떠났을까.

그가 쓴 ‘죽음에 담담하게 대비하는 법’에 따르면 담담하게 죽음을 맞는 유일한 방법은 “모든 사람들이 다 바보라는 것을 확신하는 것”이었다. 그리 생각한다면 ‘바보들의 골짜기’를 떠나는 그 순간이 얼마나 행복하겠느냐고, 스승에게 죽음으로부터 도망칠 것을 권유한 소크라테스의 제자 크리톤을 불러내 말한다. 너무 일찍 그런 생각을 하면 안 되고 우선은 남들이 자기보다 낫다는 생각으로 시작하되 마흔 살쯤에는 미심쩍다는 생각을, 쉰에서 예순 살 사이에는 이제까지의 생각을 수정하고, 백 살에 이르러 하늘의 부름을 받고 떠날 때가 되었을 때 그 확신에 도달하면 된다는 것이다. 다만 명심할 것은 우리 주위의 모든 사람들이 바보라는 확신을 얻기까지에는 치열한 공부와 사려 깊은 노력이 수반돼야 한다니 이는 에코의 도저한 농담인 셈이다. 이 말을 들은 크리톤이 “선생님께서 혹시 바보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고 하자 에코는 “자네 벌써 죽을 때가 되어가는구먼”이라고 받아친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에코의 농담은 썰렁한 개그로 끝나지 않는다. 40개국에서 출간돼 5000만부 넘게 팔렸다는 ‘장미의 이름’ 다음으로 국내에서 베스트셀러를 구가한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에서 그는 “악의나 잔혹함에 분개하는 것이라면 그럴 수 없지만 어리석음에 분노하는 것이라면 웃으면서 화를 낼 수 있다”면서 “세상 사람들이 가장 공평하게 나눠 가진 것은 양식(良識)이 아니라 어리석음”이라고 부연한다. 한국 전통에서 풍자는 지배계층을 향한 비수이고, 해학은 수평적인 관계에 놓인 이들의 애환을 웃음으로 승화시키는 것이라고 일찍이 김지하 시인이 ‘풍자냐 자살이냐’에서 설파한 적도 있거니와 위선을 까발리는 에코의 솜씨는 날카로운 풍자에 가깝다.

그는 ‘텔레비전에서 교수형 생중계를 보는 법’에서 사형 집행 장면을 텔레비전에서 식사 시간대에 생중계를 하되 사형 찬성론자들은 “마땅히 사형수가 버둥거리고 껄떡거리고 지지직 타들어가고 소스라치고 움찔거리고 콜록거리다가 저의 더러운 영혼을 하느님께 되돌리며 숨을 거두는 장면을 보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사형이라는 최고의 정의를 지지한다면 먹고 마시면서도 죽어가는 사형수를 보고 중세의 구경꾼들처럼 미친 듯이 좋아라 해야 한다는 것이다. 눈앞의 죽임은 외면하면서 관념적으로만 사형을 외친다는 것은 이율배반적인 위선일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이만큼 날카로운 역설로 드러내기도 쉽지 않다.

에코의 소설은 에세이처럼 만만하지 않다. 그는 “문학의 목적이 오로지 사람들을 즐겁게 하고 위로하는 것에만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고급 독자들과는 지적인 게임을 벌이고 그 내용을 이해하지 못하더라도 일반 독자들도 ‘성배’를 찾는 게임에서 흥미를 느낄 수 있다면 성공한 소설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이중코드의 성공적 적용이야말로 “독자들의 지성과 소설에 대한 애정에 경의를 표하는 한 방식”이라고 했다. 그가 48세까지 연구한 중세에 관한 해박한 지식은 ‘장미의 이름’을 쓰는 중요한 바탕이 되었다. 그러한 자산이 있었기 때문에 ‘불과 2년’ 만에 장편을 완성했노라고 그는 말한다. 그렇지만 ‘푸코의 진자’를 쓸 때는 8년이 걸렸고, ‘전날의 섬’과 ‘바우돌리노’는 6년이 걸렸다고 한다.

이즈음 작가들, 잊힐까 두려워 서둘러 작품을 내놓고 독자들만 탓하는 건 아닌지 돌아볼 일이다. 새삼스러운 얘기지만 독자들이 활자를 외면한다는 풍문이 들릴수록, 작가들의 책임은 더 무거울 수밖에 없다. 20세기 최고의 지성이라는 에코조차 장편 하나를 완성하기 위해 짧게는 6년씩이나 온갖 정성을 기울이는데 빈약한 지식과 경험으로 쉽게 축조한 서사로 어찌 이 험한 독서 환경을 극복할 수 있을까. 작가의 생계를 고려하지 않는 무책임한 언사로 비칠 수 있지만 독자는 작가들의 호구까지 감안해 작품을 평가하지는 않는다. 에코(Eco)가 남기고 간 에코(Echo)의 여운이 길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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