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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알파고 쇼크’는 시작에 불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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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03-15 22:46:34 수정 : 2016-03-16 04:52: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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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위력 체험한 우리 사회
미래 대비할 소중한 기회 얻어
원천기술 장기 투자 필요
향후 연구의 핵심은 인간지성
인간두뇌 메커니즘 접목해야
인공지능(AI) 알파고가 이세돌 9단과 가진 바둑대결에서 마지막 판을 이기며 4승1패로 ‘세기 대결’의 막을 내렸다. 지난 일주일, 대한민국은 21세기 AI의 실체를 충격과 경악, 안도와 우려, 연민과 감동으로 지켜보았다. AI가 편리한 미래사회를 가져다줄 것이라는 장밋빛 비전은 종종 들어봤겠지만, 이렇게 직접 온 국민이 그 민낯을 경험하게 된 것은 그 자체로 각별한 의미가 있다. AI 미래사회를 미리 준비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됐으니 말이다.

이세돌-알파고 대국에서 가장 큰 의미는 가르쳐 주지 않은 것을 배울 수 있는 능력을 가진 AI가 우리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가늠해 볼 수 있었다는 데 있다. IBM 딥 블루로 상징되는 20세기 AI는 빠른 연산을 통해 가르쳐 준 것을 정교하게 구현해내는 기계였다. 하지만 21세기 AI는 인간의 직관과 추상화 과정을 흉내 낸 알고리즘이 빅 데이터를 분석해 예상치 못한 결과값을 만들어낸다. 때로는 그것이 인간의 직관을 능가할 수 있음을 목도한 것이다.

정재승 KAIST 교수·바이오및뇌공학
이제 바둑은 시작에 불과하다. AI가 다양하게 적용될 미래사회, 우리는 온갖 영역에서 인간보다 우수한 AI가 우리를 압도하는 상황을 경험할 것이다. 이세돌처럼 AI에 맞서 힘겨운 싸움을 하는 것을 넘어 아자 황(이세돌 앞에서 바둑돌을 옮겼던 구글 엔지니어)의 처지로 전락할지 모른다. 가장 중요한 의사결정은 AI가 맡고, 인간은 마지막 도장만 찍는 역할 말이다. 다섯 번의 대국은 ‘AI가 미래사회에서 어떤 위협이 될 수 있는가’를 가르쳐 주었다. ‘알파고가 실수를 한 건가요, 사람이라면 이렇게 두지 않았을 텐데요’라는 해설을 첫 대국부터 마지막 대국까지 들었다. 의료분야에까지 적용될 AI의 위험성을 보여주는 대목으로 읽히기도 했다.

그러나 정말 위협적인 것은 AI의 실수가 아니다. 실수는 인간이 더 많이 한다. 문제는 AI가 1200개가 넘는 중앙처리장치와 딥 러닝, 강화이론 등 다양한 알고리즘을 접목해 복잡한 연산을 통해 얻어낸 결과가 이상하면 어디서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알아낼 방도가 없다는 데 있다. 이것이 알파고의 실기인지, 20∼30수 앞을 내다본 묘수인지를 판단할 능력이 우리에게 없다는 데 오히려 큰 심각성이 있다.

더글러스 애덤스가 쓴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키하이커를 위한 안내서’의 한 대목이 떠오른다. 우주에서 가장 뛰어난 컴퓨터 ‘깊은 생각(Deep Thought)’에게 ‘삶, 우주, 그리고 모든 것’에 대한 궁극적인 해답을 찾으라는 질문을 던지자 750만년 동안 계산한 컴퓨터가 내놓은 답은 ‘42’다. 우리는 해답을 얻었지만 이것이 무슨 의미인지 모르는 상황에 놓인다. 21세기 우리의 모습일지 모른다.

구글만이 아니라 IBM, 페이스북, 마이크로소프트 등 세계는 지금 AI 전쟁을 치르고 있다. AI가 사물 인터넷과 빅 데이터를 만나면 완전히 새로운 상업적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 우리나라도 정부와 기업이 젊은이들에게 AI 원천기술에 대한 장기적 투자가 필요하다.

이세돌이 보여주었듯이 AI 연구의 핵심은 역설적이게도 인간지성에 대한 연구다. 20세기 AI는 1970, 80년대 두 번의 혹독한 겨울을 맞았다. 과도한 기대가 실망으로 이어져 국민적 무관심과 정부의 외면을 초래했다. 직관과 추론, 이해와 공감, 감정과 사회성 등 좀 더 고등한 AI로 나아가기 위해서는 인간 뇌에서 그 실마리를 얻어야 한다. 인간 뇌가 어떻게 그런 것들을 잘 처리하는지 그 생물학적인 메커니즘을 이해하면 AI에게 인간의 지성을 불어넣는 일은 충분히 가능하다. 이세돌을 이기는 AI를 만든 건 대단한 성취이지만, 이세돌처럼 지는 AI를 만드는 건 아직 요원하다는 것을 이세돌은 멋지게 보여주었다. AI가 인간 지성을 따라오기에는 아직 역부족이었다.

정재승 KAIST 교수·바이오및뇌공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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