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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진짜 꽃은 삶의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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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03-18 19:51:52 수정 : 2016-03-18 19:51: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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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아요’ 아무리 눌러도 세상이 좋아지는 게 아니듯
TV속 꽃은 진짜가 아니다
봄꽃 핀 대지로 나가 보고 느끼는 시간을 갖길…
내 고향 춘천은 추운 도시다. 삼한사온이란 말이 겨울날씨를 설명하던 때, 그 도시에서 춥고 따뜻함을 가르는 기준은 영하 10도 정도였다. 그래서인지 따뜻한 기후에서 자라는 대나무나 감나무를 본 적이 없었다. 도시 전체에 도지사 관사처럼 가장 따뜻하고 바람 없는 곳에 세 그루 감나무가 자란다는 말이 전설처럼 떠돌았다. 대학 진학을 위해 고향을 떠나기까지 그래서 대나무와 감나무는 내게 상상 속의 식물이었다. 스무 살 넘어 강릉에 가서 본, 오죽헌의 검은 대나무와 가로수에 달린 붉은 감의 풍경이 얼마나 신기했던지, 가을만 되면 강릉 경포대 병이 도지기도 했다.

내가 태어나 자란 집은 야산 언덕의 정남향에 위치해 볕이 잘 들었다. 아버지가 지은 집은 턱없이 넓은 창 탓에 한겨울에는 방에 둔 자리끼가 얼 정도였지만, 마당에는 종일 햇살이 머물며 놀다 갔다. 그래서인지 어머니는 그 귀하다는 감나무를 꼭 기르고 싶어 했다. 몇 번의 실패에도 겨울이면 짚으로 나무를 덮어주는 노력 끝에 드디어 작은 감나무가 싹을 틔웠을 때, 어머니의 고단한 얼굴에 번지던 미소를 잊을 수가 없다. 하지만 그 행복은 오래 가지 않았다. 마당을 뛰놀던 개가 그 싹을 정말 싹둑 꺾어버린 것이다. 비록 잡종이었지만 영리한 덕에 어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은 녀석이었음에도 그 일에 대해서만큼은 용서받지 못했다. 미련한 놈이라며 한동안 심한 구박을 당했다. 어머니의 부드러운 성정에 기르던 개를 때리기까지 했다는 것은 그 일이 정말 안타깝고 화가 나는 사건이었다는 뜻이다. 어머니는 정말 간절하게 감나무를 길러보고 싶었던 것이다. 그 감나무는 더 이상 새순을 내밀지 않았고 결국 말라 죽었다.

박철화 문학평론가
요즘은 아파트가 대세여서인지 꽃과 나무에 대한 감각이 예전만 못하다. 물론 실내서 자라는 식물이 있고, 화분에다 그것을 기르는 분도 많다. 그런데 아쉽게도 대부분 외래식물이다. 글로벌 시대에 외래종과 토종을 가르는 것이 큰 의미가 없을 수도 있지만, 집 주변에 자생하는 꽃과 나무에 둔감해지는 부작용을 부인할 수는 없다. 특히 겨우내 움츠렸던 대지가 기지개를 켜는 요즘 남녘에서부터 올라오는 꽃소식은 자칫 권태로울 수 있는 무채색의 일상을 수놓는 축제다. 겨울에 오히려 그 매력을 더하는 붉은 동백에서부터, 선비들이 사랑한 매화의 희고 푸르고 붉은 기운, 봄맞이하는 처녀아이처럼 소박한 노오란 산수유 등 우리 삶을 수놓는 자생 식물의 아름다움은 다채롭고 끝이 없다. 그런데 그 꽃과 나무의 정체를 모르다니 안타까운 일이다.

그래서인지 요즘 젊은 작가들조차 봄꽃이 피었다고 쓴다. 산수유와 개나리의 노랑을 구별하지 못하는 것이다. 근대문학의 개성적인 작가 김유정은 내 고향에 이웃한 신남 출신인데, 그의 작품 가운데 ‘동백꽃’이 있다. 작가 생전에만 하더라도 강원도에서 동백꽃을 구경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런데 그는 태연히 고향 무대에 그 꽃을 피워 올리고 있다. 나도 처음 읽으며 그게 의문스러웠다. 그런데 사실 그 꽃은 남쪽의 붉은 동백이 아니라, 중부지방의 생강나무 꽃을 이르는 이름이다. 이 무렵 북한산 양지 바른 곳에서 볼 수 있는 그 꽃은 나뭇가지를 살피기 전에는 산수유의 그것과 거의 구별이 되지 않는다. 산수유와 달리 매끈한 가지를 꺾으면 생강향이 번지는 것으로 구별할 수 있을 뿐이다.

그리스 작가 니코스 카잔차키스는 사람을 두고 이렇게 적었다. “이 한심한 영혼아! 배가 고프면 먹어야지, 너는 종이에다 양이라고 쓰고 그걸 우적우적 씹어 먹는구나.” 그렇다. 스마트폰으로 아무리 좋아요를 눌러도 세상이 좋아지는 것은 아니듯, TV 화면에서 전해주는 꽃소식은 진짜 꽃이 아니다. 밖으로 나가 대지를 밟으며 바람을 맞으며 내 눈으로 보고 코로 그 향기를 들이마신 꽃이 바로 우리 삶의 꽃이다. 이번 주말 감나무 묘목을 사들고 어머니를 뵈러 가야겠다.

박철화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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