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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알파고와 시인이 시를 겨룬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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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03-25 20:20:12 수정 : 2016-03-25 20: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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똑똑한 어린애 같은 AI
감성과 상상, 언어로 담아내는 시심을 과연 따라갈 수 있을까
진정한 시야말로 인간존엄 지키는 마지막 보루
최근 이세돌과 알파고의 ‘반상 대결’ 이후 인공지능(AI)이 모든 매체와 모임 등의 화두가 되고 있다. AI AI 하길래, 조류독감까지 쌍나발인가 싶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Avian Influenza(조류인플루엔자)’가 아니라 ‘Artificial Intelligence(인공지능)’의 약자였다. AI시대, AI시장, AI시스템, AI정책, AI연구, AI미래, AI개발 등 AI바람을 인플루엔자처럼 퍼져가게 한, 알파고와 이세돌의 얼마 전 대국을 지켜보면서 나는 엉뚱하게도 알파고와 시인의 시작(詩作) 대국을 상상했다. 알파고는 어떻게 시작할까. AI와 시심(詩心), 누가 최후의 승자일까.

당시의 내 상상과 물음을 회식자리에 펼쳐놓자 분위기는 순식간에 핫(hot)해졌다. 말이 빠른 선배가 말했다. 세상 좋은 시와 그 시에 대한 평가가 데이터베이스화되고 상황, 감정이나 정서, 욕망에 맞는 시적 표현을 찾아낼 수 있도록 알고리즘화돼 백발백중 알파고가 이길 수밖에 없다고. 간명한 다른 선배가 말했다, 알파고가 99명의 시인을 이길 수는 있겠지만 가장 뛰어난 단 한 명의 시인을 이길 수는 없을 거라고. 느릿느릿 후배가 말했다. 시가 창작되는 동안의 인간 마음과 그 마음에 의해 선택될 언어에는 수천수만의 변수요인이 작용하는 바 그 경우와 조합의 수란 알고리즘으로 처리하기 불가능하므로 시인이 이길 것이라고. 시니컬한 동료가 찬물을 끼얹으며 말했다. 돈이 안 되는 대결이기에 구글의 관심 밖이라고.

정끝별 이화여대 교수·시인
순식간의 썰렁함을 떨쳐내며 나는 말했다. 시인이 이긴다에 내 전부를 건다고. AI로 대체불가능하고 AI와 대치불가능한 것이 바로 시심이라고. AI가 인과적이고 선후적이고 귀납적인 데 반해, 시는 우발적이고 자발적이고 미래적이다. AI가 입력값에 따른 조합과 결과에 의해 답을 찾는 데 반해, 시심은 호기심과 사랑과 부정에 의해 물음을 찾는다. 미래와 물음이 전위(前衛)인 법이다. 게다가 AI는 ‘아’와 ‘어’, ‘은’(는)과 ‘이’(가), ‘ㅅ’과 ‘ㅇ’ 사이에 존재하는 그 무수한 뉘앙스와 어조와 느낌까지 감별할 수 없다. 또한 시의 세계에는 정답이 없고 승패가 없지 않던가.

뇌의 영역 안에서는 AI의 역할과 기능은 무한할 법도 하다. 그러나 마음 혹은 가슴의 영역에 있는 시심 앞에서 AI는 참으로 머리가 좋은 똑똑한 아이와도 같지 않을까. 김수영 시인의 말마따나 “시작(詩作)은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고, ‘심장’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몸’으로 하는 것”이고, “육화(肉化)된 온몸으로 동시에 밀고 나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온몸’ 그 자체가 시고 사랑이다.

‘그녀(Her)’라는 영화가 있었다. 인간관계로부터 소원해진 중년의 대필작가와 AI 운영체계의 로맨스를 다룬 영화였다. 주인공 직업이 고객의 편지를 대신 써주는 대필작가라는 점은 주목을 요한다. AI가 인간의 감정까지를 공유할 정도로 발달된 미래사회에서도 AI 대필작가가 아닌 인간 대필작가가 더 감동적인 편지를 쓸 수 있었다.

영화의 메시지처럼 ‘인간은 단순한 운영체계가 아닌 하나의 인격체’이다. 시 또한 인격체로서의 감각과 감정과 정서와 상상과 언어를 기반으로, 삶과 시대와 역사와 연대하면서 그 맥락 속에서 생성된다. 사변적 대화와 몇 편의 시편과 비장한 미장센을 흑백으로 담아낸 영화 ‘동주’가 100만 관객을 돌파하게 한 힘이 여기에 있다 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온몸으로 ‘하는’ 아니 ‘밀고 나가는’ 진정한 시야말로 AI시대에 인간 최후의 보루가 아니겠는가.

시인 윌리엄 버틀러 예이츠의 죽음에 바쳤던 위스턴 휴 오든의 추모시 한 구절이 떠오른다. “시는 아무것도 일어나게 하지 않기에 살아남는다/ 관리들이 참견하기를 절대 원치 않는/ 창조의 계곡에서 시는/ 고독의 농장과 분주한 슬픔으로부터 남쪽으로 흐른다/ 우리가 믿고 그 안에서 죽어가는 자연 그대로의 마을에서/ 시는 오래 살아남는다/우연 발생적인 말에 의해.”

정끝별 이화여대 교수·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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