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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산책] 정신적 가치 무너진 사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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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04-01 22:02:46 수정 : 2016-04-01 22:05: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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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육성 요란하더니
이젠 실용성과 취업률에 매몰
공공윤리와 도덕성 무너지는데
현실과 정신문화의 균형점은
찾을 수 없는 어려운 일일까
필자는 새 학기가 시작되면 강의실에서 만나는 학생들의 진지한 표정을 좋아한다. 그리고 입시와 방학을 끝낸 후 좀 더 여유 있어 보이는 모습도 좋아한다. 지적으로 성숙해져가고 외모가 세련돼 가는 우리 학생들의 모습이 좋다. 재충전의 시간을 보낸 후의 한 단계 뛰어오르기쯤이라고 할까. 새롭게 또는 오랜만에 만나는 학생끼리 반가워하고, 자기와 다른 모습을 보면서 서로 칭찬하는 소리도 들린다. 은연중에 질투심과 경쟁심도 일어난다. 어떻게 해결해야 할까. 모방하는 것이다. 자기와 다른 부분, 자기보다 나은 부분이 모방의 대상이다. 그럼 그저 모방만 해야 할까. 그렇진 않다. 자기보다 나은 점을 모방하다 보면 친구보다 더 성숙해지고 세련돼 진다.

누군가를 또는 무엇인가를 모방한다는 것은 인간에게 자연스러운 일이다. 잘 모방된 그림을 보고 즐거워하는 것이나 어떤 것을 모방하면서 배움을 시작한다는 것은 이런 이치이다. 인간이 모방 본능을 갖고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하기도 한다. 예술이 현실세계로부터 떨어져 나오면서 예술가들은 현실세계를 모방하기 시작했다. 예술이 사람들의 삶에 직접 필요한 것은 아니지만, 보고 듣고 즐기면서 삶을 풍요롭게 해주는 것이라는 생각에서 예술가들은 미술작품을 만들었다. 현실의 흉내 내기 이상의 것을 만들고, 아름답게 보이기 위해서 작품에 이상적으로 생각한 비례와 조화도 담았다. 

박일호 이화여대 교수·미학
유럽 여행을 가면 많은 사람이 보고 오는 미술작품인 ‘밀로의 비너스’는 예술이란 현실의 모방이라는 생각이 탄생된 고대 그리스 시대의 작품이다. 몸을 약간 비틀고 곡선의 흐름을 덧붙인 우아한 자태로 돼 있고, 대리석으로 만들었다고 믿기지 않을 정도의 사실적인 측면도 갖추었다. 그런데 이 비너스상의 크기는 2m가 넘는다. 가장 아름답게 보이는 어떤 사람의 얼굴, 다른 어떤 사람의 다리, 또 다른 어떤 사람의 가슴 등을 모방해서 이상적인 아름다움을 만들어냈기 때문이다. 얼굴을 기준으로 몸 전체 길이가 8배가 되는 8등신의 인체비례로 돼 있고, 배꼽을 기준으로 머리 끝까지의 길이와 다리 끝까지의 길이 비례가 대략 4대 6이 되는 황금 분할 비례로 돼 있다.

태양과 이성의 신 아폴론의 자신만만한 모습을 담고 있는 조각상인 ‘벨베데레의 아폴론’도 고대 그리스 시대 작품이다. 역시 사실적인 묘사와 2m를 넘는 크기, 8등신의 인체비례와 황금 분할 비례 등을 적용해서 당당하게 호령하는 군주의 위용을 느끼게 했다. 두 작품 모두 현실 속 대상을 모방했지만, 정신적 미의 이념을 덧붙여 더 아름답고 세련되게 나타냈다. 그래서 2000년도 더 지난 이 작품들이 많은 사람 앞에서 빛을 발하는 것이다.

이 조각상들이 만들어진 고대 그리스 시대는 정치적 안정과 더불어 철학과 자연과학이 발달한 시기였다.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 같은 철학자들이 있었고, 유클리드나 아르키메데스 같은 수학자와 자연과학자도 있었다. 예술에서 현실을 넘어선 정신적 아름다움을 나타내려 했던 것은 사실을 중요시하는 자연과학의 영향과 정신적인 것을 강조하는 철학의 영향에서였다. 현실적인 묘사와 정신적 가치의 균형을 이루려 했던 것이다.

예술이건 인간의 삶이건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은 없다. 무언가를 모방하고 그것을 넘어서려 하면서 새로운 예술도 나타나고, 새로운 지식이나 보다 나은 삶의 모습도 이루어진다. 문제는 겉모습만을 중요시하고, 겉모습의 모방에만 그치면서 정신적 가치를 외면하는 데에 있다. 한동안 인문학 육성을 정부와 기업이 경쟁적으로 얘기하더니 몇 년도 지나지 않은 지금은 실용적 학문이나 취업률만을 앞세우고 있다. 공공윤리와 도덕적 가치가 힘을 잃어가는 현실이 문제인데, 현실적인 실용성과 정신문화의 균형점을 찾는 것은 어려운 일일까.

박일호 이화여대 교수·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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