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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도라의 상자 '평화협정'… 셈법 복잡한 북·중·한·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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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04-05 20:58:59 수정 : 2016-06-24 15:38: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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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로벌 리포트] 북·중 “논의 하자” 한·미 “비핵화 먼저”… 대북제재 국면중 수면 위 부상
북한의 4차 핵실험과 장거리 로켓(미사일) 발사에 따른 대북 제재 국면에서 평화협정 문제가 수면 위로 부상했다. 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이 북핵 문제 해법으로 비핵화·평화협정 논의 병행론을 들고 나온 데 이어 북한의 4차 핵실험 직전인 지난해 말 북·미 사이에 평화협정과 관련해 비공식 의견 교환을 한 사실이 드러나면서다. 한·미는 선 북한 비핵화·후 평화협정 논의 원칙을 공유한다는 입장을 강조하고 있으나 한반도에 미묘한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는 것이다.


북한의 4차 핵실험·장거리미사일(로켓) 발사에 따른 대북 제재 국면에서 1953년 이후 정전체제를 평화체제로 전환하는 평화협정 논의 문제가 수면 위로 떠올라 국제사회의 주목을 받고 있다. 사진은 2012년 3월 비무장지대(DMZ) 판문점 공동경비구역(JSA) 내 오울렛 초소(OP)를 방문한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왼쪽)이 망원경으로 북한 지역을 살펴보는 모습.
세계일보 자료사진
◆판도라의 상자, 평화협정

북한은 대북 제재 국면에서 평화협정 공세를 강화하고 있다. 서세평 제네바 주재 북한대사는 지난 1일(현지시간)에도 외신과의 인터뷰에서 평화협정 체결을 주장했다. 북핵 6자회담 재개에 대한 질문을 받자 한반도 비핵화 문제는 더 이상 협상 테이블 위에 있지 않다면서 “만약 미국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DPRK)에 대한 적대 정책(hostile policy)을 중단하고 평화협정(the peace treaty)을 논의하면 그땐 뭔가 달라질 수도 있다”고 밝힌 것이다. 북한은 과거부터 평화협정 체결을 통해 미국의 대북 정책을 종식함으로써 체제 안정을 보증받으려는 의도가 있는 것으로 분석돼왔다. 

평화협정은 전쟁을 치르며 군사적으로 대립한 양측이 전쟁을 종결하고 평화를 회복하기 위해 맺는 협정을 말한다. 현재 한반도는 정전 또는 휴전 체제로 불린다. 1950년 시작된 6·25전쟁이 1953년 7월27일 정전협정에 따라 종식된 것이 아니라 잠시 정지된 상태라는 의미다. 정전협정은 유엔군 총사령관(마크 클라크),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김일성), 중국인민지원(志願)군 사령관(펑더화이·彭德懷) 3인이 최종 서명했다.

전쟁을 종식하고 평화체제를 구축하자는 데 논란이 있는 것이 언뜻 이해가 안 될 수 있다. 그런데 평화협정은 단순히 협정 하나를 체결하는 게 아니다. 60여 년간 지속돼온 한반도의 냉전체제를 해체하는 작업이고, 이 과정에서 각국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상충할 수 있다. 동북아 역학관계와 한반도 운명의 변곡점이 될 수 있는 모든 이슈가 튀어나올 수 있다는 점에서 판도라의 상자라는 말이 나온다. 대표적으로 정전협정 제4조의 모든 외국군 철수 규정은 여전히 뜨거운 감자다. 정전협정 체결 당시부터 불씨가 된 이 조항에 따라 평화협정 체결 시 주한미군의 주둔 근거가 사라질 수도 있다. 중국인민지원군은 1958년 북한에서 완전 철수했다.

평화협정은 북·미, 북·일 관계 정상화, 동북아 군비감축 문제와도 연계돼 있다. 특히 이제는 국제사회의 핵심 현안이 된 북한 비핵화 문제도 결합돼 더욱 풀기 어려운 고차방정식이 된 상태다.

◆제재 국면에서 부상한 평화협정 문제


북한이 1960년대 제기한 평화협정 체결 주체는 의외로 남북이었다. 노동신문 1965년 1월9일자 보도에 따르면 당시 김일성 수상은 “남북 조선 당국이 호상(상호) 상대방을 무력으로 공격하지 않을 데 대한 평화협정을 체결하며, 남북 조선 군대를 각각 10만 또는 그 이하로 축소할 것을 남조선 당국에 루차(누차) 제의하였던 사실을 상기하려고 합니다”라고 밝혔다. 북한은 70년대 들어서는 평화협정 체제의 주체를 북·미로 바꿨다가, 90년대 말 한국 위상이 높아진 국제환경 변화에 맞춰 남·북·미·중 4자로 변경했다. 미국도 평화협정 논의 시 한국을 포함한 남·북·미·중 4자가 논의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실제 1997∼1999년 평화협정을 논의하는 4자회담이 진행됐지만 이어 밀어닥친 제2차 핵위기로 구체적 성과를 내지 못했다. 그러다가 2005년 9·19 공동성명에 북한의 비핵화와 함께 한반도의 영구적 평화체제 협상이 주요 내용으로 포함됐다. 평화협정 논의는 2007년 2·13 합의에 따라 급물살을 타는 분위기였으나 다시 북핵 위기가 대두하자 물속으로 가라앉았다. 특이한 점은 과거엔 평화협정 문제가 6자회담이 잘 풀리는 등의 대화 국면에서 부각됐다면, 이번에는 대북 제재 국면에서 부상했다는 점이다.

◆서로 다른 비핵화·평화협정 셈법

현재 평화협정 문제는 주한미군 철수 등의 과거 이슈보다는 주로 북한의 비핵화 문제와 연계돼 거론되고 있다. 평화협정과 북한 비핵화의 상관관계에 대해 4주체(남·북·미·중)의 입장은 다르다. 평화협정 공세를 펴는 북한은 평화협정 논의를 우선시하고 비핵화는 거부한다. 김정은 국방위 제1위원장 체제 출범 후 북한은 핵·경제 병진 노선을 적극 추진하며 핵보유국 지위를 국제사회에서 인정받겠다는 의도를 분명히 하고 있다. 반면 한·미는 선 비핵화·후 평화협정 논의 원칙을 고수하고 있다. 중국이 이번에 들고 나온 비핵화·평화협정 병행추진론은 대립하는 한·미와 북한 입장을 절충한 측면이 있는 것이다.

한·미가 선비핵화 입장을 고수하는 배경에는 평화협정 문제가 판도라의 상자인 동시에 블랙홀이라는 판단이 작용하고 있다.

일단 평화협정 논의가 시작되면 모든 이슈를 빨아들여 북한 비핵화라는 국제사회의 목표는 사실상 물 건너갈 수 있다는 우려가 깔려있는 것이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평화협정 논의 부각은) 국제사회의 압박을 통해 북한 핵을 포기시키자는 논의를 분산시킬 수 있다”며 “분명한 비핵화를 하기 전까지 이 이야기를 꺼낼 단계가 아니다”고 잘라 말했다.

주목되는 점은 왕 부장의 비핵화·평화협정 논의 병행론 제기 후 미·중 외교장관 회담, 미·중 정상회담 등 미·중의 고위급 소통이 반복되면서 미국과 우리 정부 입장에 미묘한 온도차가 감지되고 있다는 것이다. 존 커비 미국 국무부 대변인은 지난달 “우리는 6자회담과 평화협정의 병행 논의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는다”고 언급해 파장을 일으켰다. 장용석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선임연구원은 “미국의 입장은 비핵화 우선이나 평화협정도 논의할 수 있다는 것이고, 우리는 사실상 비핵화만 이야기하고 있다는 점에서 한·미 간에 이견이 있다”며 “박근혜 대통령이 대화무용론만 이야기하는 것은 헛다리를 짚는 것일 수 있다”고 지적했다.

김청중·염유섭 기자 c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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